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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큐레이터매거진 창간준비호

[씨네토크 후기] <산딸기> 난상토론 현장을가다: 우리를 비추는 거울_김보민


지난 516일 아트하우스모모에서는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의 <산딸기>(1957) 개봉에 맞춰 생명의 기쁨과 따뜻한 화해를 주제로 한 씨네토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반가워요 베리만 감독님의 저자이기도 한 이병창 동아대학교 철학과 명예 교수와 강익모 교수(서울디지털대학교 엔터테인먼트 경영학부), 박영숙 교수(이화여대 교육대학원) 등이 주축이 된 <잉마르 베리만 포럼>의 주최로 기획되었다.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진 이 포럼은 지난 18개월 동안 베리만의 작품들을 감상, 연구 및 토론을 진행해왔다.

  

잉마르 베리만은 흔히 철학적이고 연극적인 면이 부각되는 감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산딸기>에서는 영화적 기법이 탁월하게 사용되었고, 그 내용도 인간의 삶 자체를 다루고 있어 영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_ 이병창 교수

 

  빅터 소스트롬(Victor Sjostrom), 잉그리드 툴린(Ingrid Thulin), 비비 앤더슨(Bibi Andersson)이 주연을 맡은 영화 <산딸기>는 노교수 이삭 보리의 꿈과 회상, 그리고 여행 중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삶의 재발견과 성찰을 이야기한다. 이날 씨네토크에서는 작품의 주제와 메시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으며, ‘, 거울, 산딸기등의 주요 키워드뿐만 아니라 바늘이 없는 시계, 구르는 수레바퀴, 장례식 마차, 현미경, 부러진 하이힐과 같은 초현실적 상징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 또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겼던 베리만의 작품이 가지는 형식적 특징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베리만의 영화에 대한 토론과 연구가 이 시대에도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씨네토크의 패널들은 포럼에서 축적된 내용을 활용하여 다각적인 면에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들은 이 고전을 지금-여기로 옮겨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내었으며, 계속해서 이어진 질문과 대화의 과정은 상징으로 가득한 작품의 의미를 풀어가는 단초를 마련해주었다. 패널들은 당시 스칸디나비아의 철학과 사회적 분위기를 설명하며 <산딸기>에서 다뤄지는 실존과 고독의 문제를 논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토론은 비단 영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철학, 종교, 심리학, 사회학, 연극, 문학, 미술 등으로 확대되었고, 작품에 대한 공감각적 체험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베리만의 삶과 철학을 <산딸기>의 내용을 비교한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다. 베리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 영화가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은 베리만의 아버지와 자신이 투영된 것으로서, 그의 아버지는 극우 보수파 목사였으며 그 때문에 베리만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부모와 아들간의 다툼과 오해는 종교에 대한 회의감으로 귀결되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인간관계에서는 고립되어있는 보리 교수는 그 당시의 베리만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를 찍을 무렵 그와 부모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고, 그는 인생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베리만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동시에 주변인들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자전적 경험이 반영된 감성적이며 우아한 영화를 완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대한 흥미로운 캐스팅 비화도 엿보았다. 영화 평론가 툴린은 베리만 감독의 영화를 언제나 혹평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산딸기>에 대한 그의 혹평을 염려했던 베리만 감독은 톨린의 부인이었던 잉그리드를 자신의 영화에 며느리 마리안 역으로 캐스팅했고, 이후엔 비평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그의 연인이었던 비비 안데르손은 <산딸기>를 포함한 13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그리고 씨네토크 후반부에서는 현대 영화에 끼친 베리만의 영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산딸기>에 등장하는, 시간과 공간, 꿈과 현실을 자유롭게 오가는 독특한 형식은 여러 영화에서 오마주된다. 우디 앨런(Woody Allen)은 자신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감독으로 베리만을 꼽는다. 대표적으로 <애니홀>(1977)에서 앨비가 유년시절의 자신과 대면하는 장면은 <산딸기>를 오마주 한 것이다. 앨런은 이후 <사랑과 죽음>(1975), <인테리어>(1978), <또 다른 여인>(1988) 등의 작품에서 베리만에게 경의를 표했다. 로버트 알트먼(Robert Altman)<내쉬빌>(1975)의 한 장면을 <산딸기>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고 말하며 베리만의 이름을 언급한다. , 베리만의 작품으로 예술영화에 입문했다는 이안(Ang Lee)그의 문제제기 정신과 두려운 존재에 대한 도전, 내면의 성찰 등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 박찬욱의 작품을 통해 그의 영화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았다.

  

영화는 한 노인의 하루를 따라가면서 그의 꿈과 상처, 고독, 후회, 용서, 구원을 보여준다. 이번 씨네토크는 베리만의 예술 세계를 친절한 해설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알레고리와 상징들을 풀어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사라가 이삭에게 비춰주는 거울은 냉정하게 주인공과 스크린 밖의 우리 모두를 비춘다.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관객들을 찾아온 이 아름다운 걸작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영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베리만의 질문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