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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학교 가는 길 / 아프가니스탄이 잃어버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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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같은 볼을 가진 여섯살의 소녀 박타이는 동굴 앞에서 큰 목소리로 알파벳을 외우는 소년 압바스가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소녀의 학교 가는 길이 황량하면서도 압도적인 풍경을 가진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미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바미안 불상의 파괴 장면이 나오는데, 바미안 불상은 2세기경 만들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마애석불이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었으나 2001년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에 대해 <칸다하르> 등을 만든 이란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무력한 현실에 대한 치욕감을 호소한 바 있다. 그의 막내딸 하나 마흐말바프는 열일곱이라는 나이로 첫 장편인 <학교 가는 길>을 찍었는데, <학교 가는 길>의 원제가 <불상은 수치심 때문에 붕괴되었다>인 것에서 그녀 또한 아버지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타이는 우선 학용품을 사기 위해 엄마를 찾아 바미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결국 엄마는 찾지 못한다. 압바스의 말을 듣고 달걀 네 개를 사람들에게 팔아 돈을 구하려고 하나 그것 또한 쉽지 않다. 달걀을 빵과 바꾸고, 빵을 다시 돈과 바꿔서 겨우 공책은 샀지만 연필까지는 살 돈이 없어 엄마의 립스틱을 들고 박타이는 학교로 향한다. 그러나 그 학교는 남자들만 받아주는 곳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꼭 듣고 싶은 마음에 강 너머로 찾아간 학교에서도 선생님과 아이들은 우리 반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박타이를 받아주지 않는다. 박타이는 학교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압바스가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를 혼자 앉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이들의 진짜 학교는 그들의 부모나 주변의 어른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영화에서 박타이가 만나는 모든 어른들은 모범적이지도 않고 아이에게 관심도 없는 타인들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거부당한 박타이는 학교 가는 길에서 소년들의 전쟁 놀이를 만나게 된다. 소년들은 나무로 된 무기를 들고 소녀를 포로로 만들어 위협한다. 이러한 그들의 놀이에는 박타이가 원하던 재미있는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탈레반과 미군과의 대결이라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만이 나타난다. 게다가 그들의 놀이는 미디어를 통해서 접한 게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전쟁의 참상에서 배운 것이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보인다. 그들의 전쟁 놀이가 바미안 불상이 있었던 비어 있는 공간 앞에서 진행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은 물질만이 아니라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자산을 완전히 파괴시키기 때문에 더욱 비극적이다.

다른 아이들이 소년들의 전쟁 놀이에 바로 굴복한 것과 다르게 홀로 씩씩하고 귀엽게 행동하던 소녀는 죽은 척 하면 살 수 있다는 압바스의 외침대로 결국 죽음이라는 전쟁의 논리를 받아들이며 쓰러진다. 영화 내내 계속되던 소녀의 클로즈업과는 달리 마지막 부분에서는 프레임 내에서 소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은 부서지는 영혼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학교 가는 길>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했던 소녀가 현실을 마주하면서 겪게 되는 진짜 이야기들을 통해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상처받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들의 미래가 지금처럼 반복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