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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 (ワンダフルライ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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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 되면 ‘이곳’은 매우 바빠진다. 새로운 손님들을 맞이해야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나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1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골라야만 한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고른 기억을 영상으로 만들어준다. 토요일이 되면 손님들은 그들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재현된 영상을 본다.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만을 간직한 채 영원한 안식을 찾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의 삶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어떤 추억을 골라야 할 지 고민한다. 어릴 적 빨간 옷을 입고 춤을 추었던 기억을 고르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태어난 지 5개월 째 되던 날 이불 위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는 남자도 있다. 디즈니랜드에 간 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 기억을 골랐다는 말에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을 행복한 순간으로 고른 여고생도 있으며, 그 동안 만났던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에는 딸의 결혼식을 선택한 할아버지도 있다.

한 젊은이는 “기억이란 결국 내 마음에 비친 이미지일 뿐이에요”라며 행복했던 순간을 고르는 것을 거부한다. 자신의 기억이 현실감을 잃었다면 행복했던 기억이란 거짓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년의 남성은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찾고자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봐도 그것을 찾을 수가 없다. 결국 그는 자신의 삶을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되돌아본다.

‘이곳’에는 손님들이 행복했던 기억을 고르는 일을 돕는 이들이 있다. 그들도 한 때는 ‘이곳’에서 행복한 순간을 고르고자 했지만, 결국 고르지 못해 ‘이곳’에 머물게 된 사람들이다. 모치즈키(아라타) 역시 자신이 ‘이 곳’에 왔을 때는 필사적으로 행복했던 기억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해 ‘이 곳’에서 머물게 되었다.

모치즈키는 중년의 남성과 함께 그의 삶을 보다가, 그 중년의 남성이 자신이 죽기 전 약혼을 하였던 여인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년의 남성은 결국 아내와의 마지막 추억을 선택한다. 그리고 모치즈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는 영원한 안식을 찾아 떠난다. “당신이 제 아내의 약혼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내는 당신의 기일 때마다 당신의 묘를 찾아갔지요. 그래서 질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나와 아내는 정말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와의 추억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고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제 아내의 약혼자임에도 제가 상처받을까봐 이야기하지 않은 것,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 모치즈키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모치즈키를 좋아하는 시오리(오다 에리카)는, 고민하는 모치즈키를 위해 그의 약혼자였으며, 중년 남성의 아내였던 여인이 선택한 행복했던 순간이 담긴 영상을 찾아준다. 모치즈키와 헤어지기 전의 순간을 찍은 영상. 그 영상을 보는 순간 모치즈키는 깨닫는다. 자신이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 있음을.

모치즈키는 이제 행복했던 순간을 골라 영원한 안식을 찾고자 한다. 시오리는 그러면 이곳에서의 모든 기억이, 자신과 함께 했던 모든 기억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며 그를 말린다. 하지만 모치즈키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행복했던 순간을 찾는 것을 도와주면서 그들이 영원한 안식을 향해 떠날 수 있도록 해준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함께했던 ‘이곳’의 사람들. 자신이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원더풀 라이프>를 통해 질문한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답한다. “(달은) 항상 똑같은 모습인 것 같은데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행복했던 순간을 고르기를 거부했던 젊은이의 말처럼 우리가 겪는 삶은 ‘현실’ 그대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의해 기억되는 것이다.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달처럼, 우리의 인생도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행복할 수도,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 너무나도 당연해서 별로 와 닿지 않는 사실이지만 <원더풀 라이프>는 그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만든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답게,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행복했던 순간을 찾기 위해 진심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장면들이 <원더풀 라이프>를 깊은 울림이 있는 영화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삶을 긍정적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원더풀 라이프>를 보고나면, 비록 지긋지긋한 삶이라도 그 속에서 조그마한 행복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가슴이 찡한 영화.

200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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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쓴 글이라 지금 보면 참 부끄럽습니다만, 씨네큐브와의 추억이 있는 영화라 올려봅니다. <원더풀 라이프>를 처음 만난 것이 바로 씨네큐브였거든요. 어쩌면 그 이후부터 씨네큐브를 더 자주 찾아가게 된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