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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카운터페이터 (Die Fälsche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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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지폐 만드는 사람들'을 뜻하는 제목의 영화 <카운터페이터>는 주인공 살로몬 소로비치(칼 마르코비치)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영웅담이기 보다는 그가 겪었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실화를 배경으로 처절한 생존 본능과 인간적인 양심 사이의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나치가 고갈되는 군자금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연합군의 국가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해 영국 파운드화와 미국 달러화의 위조 지폐를 비밀리에 만들었다는 일화 자체는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 참여했던 주인공이나 다른 인물들의 모습은 픽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위조 지폐의 제작에 참여했던 유태인들이 <카운터페이터>에서 보여진 것과 같은 내부 갈등을 실제로 얼마나 치뤄야 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아마도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어내기 위해 갈등과 비극적인 부분들을 좀 더 강조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지를 뻔히 알면서도 개인의 생존만을 이유로 그 책임을 외면했을 때 결국 남는 것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만 못한 삶 뿐이라는 교훈은 무척 의미심장합니다. 의로운 죽음을 무조건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살아남는 일만이 인생에 있어서 최선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카운터페이터>는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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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몬 소로비치는 위조 지폐 전문가였던 덕분에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게 되는 인물입니다. 소로비치의 회고 형태로 진행되는 <카운터페이터>의 핵심은 나치의 잔혹함을 평면적으로 고발하기만 하기 보다는 그런 와중에서 생존을 위해 나치의 위조 지폐 전술에 협조하는 유태인들과 차라리 자기 양심을 따라 의로운 죽음을 택하자는 주장 사이의 갈등에 있습니다. 살로몬 소로비치의 경우 차라리 죽자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동료의 의도적인 방해를 저지할 만큼 냉혹하게 굴지는 않는 쪽이었죠.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는 판국에 동료를 해쳐가며 나치에게 협조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달러 위조 지폐의 발행은 충분히 늦어졌고 그 덕분에 나치는 연합군에게 패배, 수용소를 버리고 철수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패해 철수하는 나치가 자신들을 죽일지 살릴지조차 알 수가 없었던 상황에서 죽음 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등장 인물들이 위조 지폐를 만들며 기거하던 곳 바깥의 다른 유태인 수형자들과 만나게 되는 장면입니다. 마침내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채 느끼기도 전에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양심의 가책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오는 것이죠.

살로몬 소로비치는 1930년대에 나치 독일과 유럽인들에게 미움을 샀던 전형적인 유태인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돈 밖에 모르는 쥐새끼 같은 종족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데에 칼 마르코비치의 캐스팅은 아주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비호감의 외모에 지폐와 공문서 위조 전문가인 살로몬 소로비치가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어서도 몇 년 간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뛰어난 그림 솜씨가 있기 이전에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나치의 군인들 앞에서 생명을 구걸하며 멸시를 받기도 하지만 그는 결국 타고난 승부사였고 그 덕분에 당시를 회고하는 최후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종전 이후 엄청난 현금(물론 수용소에서 만들어낸 위조 달러죠)을 들고 몬테 카를로의 카지노에 나타난 살로몬 소로비치는 뛰어난 솜씨로 쉽게 돈을 벌어들이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맙니다.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새겨진 아우슈비츠의 수형 번호처럼 이제는 지울 수 없는 과오가 된 기억 때문이었겠죠. 돈이야 만들면 되지만(또는 벌어들이면 되지만) 나치에 대한 자신의 협조가 결국 유태인 학살과 2차 대전을 장기화시켰다는 죄책감이 그의 남은 여생을 짓누르리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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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카운터페이터>는 실제로 작센하우젠 수용소의 위조 지폐 작전에 투입되었던 아돌프 버거의 회고록 <악마의 작업실>(The Devil's Workshop)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나토미>(2000)의 스테판 루조비츠키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는데 공포물을 찍었던 감독답게 화법 자체는 지극히 대중적이지만 그렇다고 메시지를 너무 들이밀지는 않는 편입니다. 포스터에는 "<타인의 삶>의 제작진이 선사"한다고 되어있는데 각본, 감독, 배우 심지어 수많은 제작자들까지 전부 다른 영화를 놓고 도대체 무슨 근거로 <타인의 삶>의 제작진이 또 한 편 만든 영화인양 홍보를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카운터페이터>가 형편없는 영화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무래도 '홀로코스트 영화의 일종'라는 점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고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