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theater

존 레논 컨피덴셜 (The U.S. vs. John Lennon, 2006)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8. 11. 10:15


저는 원래 존 레논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숭배해왔던 편은 아닙니다. 그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도 했지만 오히려 약간의 부정적인 느낌마저 가지고 있어서 이번 한 주 간의 새로운 블로그 메인 이미지로 <존 레논 컨피덴셜> 포스터를 사용할까 말까 망설일 정도였어요. 평화와 승리를 상징하는 V자를 그리고 있는 얼굴 모양의 손 위에 존 레논이 사용했던 동그란 안경가 얹혀져 있고 그 위로 성조기가 비춰지고 있는 바로 저 포스터 말입니다. 성조기는 그림자만 봐도 싫고 존 레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영화는 제목부터 '컨피덴셜'인 것이 분위기가 빤히 보이는 듯 한 데다가 목적만을 앞세운 선동적인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져서 그리 흔쾌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존 레논에 대해 제가 갖고 있던 부정적 이미지는 꽤 어릴 적에 형성된 것입니다. 마이클 잭슨을 좋아했고 마이클 잭슨은 폴 매카트니와 듀엣 앨범을 냈는데, 그 폴 매카트니가 과거에 활동하던 비틀즈를 해체시킨 장본인이 바로 존 레논이었으니까요. 비틀즈의 음악은 오아시스에서 발매된 베스트 앨범 하나를 열심히 들었던 정도였는데 제가 좋아했던 곡들은 전부 폴 매카트니가 부른 것들이었습니다. 폴 매카트니가 노래도 잘 부르고 얼굴도 잘 생겼는데 목소리도 이상하고 안경을 쓴 딱딱한 표정의 존 레논은 무슨 일 때문인지 오노 요코라는 귀신 같이 생긴 일본 여자와 결혼을 해서 그룹을 탈퇴해 버린 것이었죠. 사람들은 일찍 죽은 존 레논을 좀 더 떠받들어 주는 분위기인데 저는 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이후로 존 레논과 특히 오노 요코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더이상 갖지 않게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Imagine을 듣거나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사진을 볼 때 특별한 감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존 레논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존 레논 컨피덴셜>은 사실상 존 레논이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라 해도 무방하리라 생각됩니다. 미국 정부와 존 레논 간의 대립 관계를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70년대 초반에 그런 불편한 관계가 표면화되기까지 남다른 가치를 지향했던 예술가이자 참여하는 정치 시민이었던 존 레논의 삶의 궤적을 충실하게 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존 레논의 성장 배경과 비틀즈의 멤버 시절 구설수에 올랐던 일화를 빠르게 짚은 이후에 영화는 본격적으로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만남과 그것을 통해 존 레논이 어떻게 변모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때는 바야흐로 육말칠초(60년대 말, 70년대 초) 베트남 전쟁 시기였고 영국에서부터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앞장을 서왔던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뉴욕으로 건너가게 되는데요, 그때부터 본격적인 닉슨 정부와 존 레논 간의 불화가 시작됩니다. 전쟁을 추구하는 정부가 평화를 주장하는 유력 인사를 어떻게 다루는지, 그리고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그런 미국 정부에게 어떻게 저항했는지가 당시의 과정에 관련되어 있었던 많은 인물들의 증언과 영상 기록을 통해 보여집니다.

이 영화를 통해 제가 비로소 알게 된 또 한 가지 역사적 사실은 1974년 닉슨 대통령의 사임이 바로 존 레논의 대정부 소송을 통한 결과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 특히 후버 국장 재임 시절의 CIA는 존 레논을 비롯한 반정부 인사들을 감청하면서 공작을 해왔었고 당시 외국인 신분이었던 존 레논과 오노 요코를 국외로 추방하려 했습니다. 두 사람은 무려 2년 반 동안 법적 대응을 하며 베트남 전쟁과 닉슨의 재선을 반대하는 활동을 지속했는데요, 닉슨이 재선에 성공함으로 인해 엄청난 패배감이 몰려왔을 때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선택한 것은 자신들을 불법 도청해온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그 꼭대기에는 불법 감청을 지시한 닉슨 대통령이 있었고 닉슨은 그 사실을 부인하다가 결국 사임을 하게 되었던 거죠. 그리고 75년 마침내 베트남전이 끝나고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게 됩니다. 존 레논이 암살을 당한 것은 그로부터 5년 뒤인 1980년이었습니다.




<존 레논 컨피덴셜>이 다루고 있는 내용을 말로 요약하자니 무척 딱딱하게만 느껴지는데 실제 영화는 다큐멘터리치고는 굉장히 핫(Hot)한 편입니다. 가치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고 한발 물러서있는 제 3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고 관객들을 설득하기 위해 증거 자료들을 극적으로 구성해서 들이미는 작품입니다. 시종일관 존 레논의 음악을 요소요소에 사용하면서 자료 화면과 인터뷰 장면들을 순발력있게 편집해 놓았으니 지루한 감을 느낄 겨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존 레논 컨피덴셜>이 '뜨거운 작품'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다른 무엇 보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존 레논의 일생 자체가 그 만큼 뜨거웠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베트남 전쟁을 중단시킨 것은 존 레논 한 사람의 공로라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존 레논 컨피덴셜>은 전형적인 1인 영웅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함으로써 한 인물의 삶과 역사의 한 장면을 재조명하고(그리하여 저와 같이 잘 몰랐던 사람에게는 가르쳐주고) 나아가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아임 낫 데어>(2007)와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2005) 을 인상 깊게 보았는데요, 1941년 생인 밥 딜런이 갓 스무 살의 나이에 인권 운동과 저항 음악의 아이콘으로 유명해진 이후 포크 음악을 버리고 대중적인 록 음악으로 달아나 버렸던 것과는 반대로 그 보다 1년 먼저 태어났던 존 레논은 비틀즈와 함께 록앤롤 음악으로 대중적인 유명인이 된 이후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든 정반대의 경우라 할 수 있어 좋은 비교가 됩니다. 어느 쪽이 올바른 삶인지를 논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 정하기 어려운 일이나 밥 딜런의 삶이 개인의 자유를 지지하며 타인의 규정에 의해 상처 받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반면 존 레논은 불의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보여준 삶의 궤적은 모두 그리 멀지 않은 역사의 한 장면들이라는 점에서, 특히 존 레논의 삶과 당시의 풍경은 그 만큼이나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훌륭한 이정표의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