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영화란 무엇보다 얼굴의 예술인 것 같다... 사실 우리 앞에 제시되는 이야기들의 복잡성과 서스펜스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주된 존재 이유는 단지 하나의 얼굴에 있는지도 모른다."

- 르 클레지오 <발라시네>


영문 제목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에는 세 명의 얼굴이 나온다.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단계적으로 클로즈업되는 이 세 명의 얼굴은 영화 전반에 걸쳐서 구축된, 세 명이 각기 대표하는 이미지를 상징하며, 그들의 표정에 담긴 각기 다른 인간의 본성은 5분이 넘는 대치 장면의 서스펜스를 팽팽하게 유지시킨다. 물론, 그 사이에서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는 것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엄청난 음악이기도 하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려 40년도 더 된 이 영화가 요즘 다시금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당연히 <놈놈놈>이 차용한 제목 때문일 것이고, 마침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대표작들을 상영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언제 어느때라도 다시 볼 가치가 충분하고도 남는 걸작이다. 어렸을 때 어렴풋이 봤다고 생각했던 <석양의 무법자>를 최근에 다시 보고 나서 꽤나 충격을 받았는데, 이 정도로 인간의 본질과 역사의 핵심과 욕망의 공허함을 꿰뚫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미국 영화 위주의 IMDb 순위에서 당당히 5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로튼 토마토에서는 신선도 100%라는 놀라운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 안에 담아내는 심오한 메세지, 황량함과 쓸쓸함을 담아내는 비장한 영상, 그리고 개인적으로 엔니오 모리꼬네의 재발견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 등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것이 없다.


너무나도 유명한 메인 테마는 같은 테마를 각기 플룻, 오카리나, 성악으로 바꿔가면서 세 캐릭터의 테마로 삼고 있다. 또 하나의 명곡은 메탈리카가 라이브 인트로로 항상 사용한다는 "The Ecstacy of Gold"인데 엔니오 모리꼬네가 직접 지휘한 버전도 좋지만, 다소 부담스러운 소프라노가 빠진 <S & M> 앨범의 의 첫번째 트랙도 괜찮은 편이다.



대단한 줄거리 없이도 이 영화가 줄곧 흥미로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의 힘인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엘리 왈라치, 리 반 클리프는 완벽한 개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악인조차 매력적으로, 추한 역할조차 인간적으로 그려낸다.

사실 영화 초반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왜 the good (선한 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으나,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별로 착하지 않은 블론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the good 이 된 이유는 영화의 무대가 "서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웨스턴 무비의 시대에서, 즉 선한 사람들은 약탈당하고 희생당하는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이것은 남북전쟁에 휘말린 착한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세 명의 무법자 중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직 남아 있는 블론디는 상대적으로 선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 결투 장면을 비롯하여 영화 안에 담긴 수많은 명장면들은 웨스턴 장르에서의 전설적인 장면들이며,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날카롭게 담긴 명장면도 많이 나온다. (다리를 두고 대치한 남군과 북군 간의 전투 장면이나 "슬픈 언덕" 묘지에 다다랐을 때의 장면은 반전 영화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명장면 뿐 아니라 대사들도 하나하나가 다 멋진 말들 뿐인데, "When you have to shoot, shoot, don't talk." 같은 투코의 대사는 그 유머 감각이 요즘 영화들보다도 한 수 위로 여겨진다.


영화사의 고전들을 보면 볼수록 영화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대가 그만큼 바뀌어서일까. Good은 점점 사라지고 bad 와 ugly 가 세상을 채우고 있는 것만 같아 왠지 슬퍼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투코로 열연한 엘리 왈라치는 나이들어서는 점잖은 외모로 변해서 적잖이 놀랐다.
주로 거대재벌 회장이나 마피아계 거물로 출연하곤 하는데 연기력은 물론 여전하다.


2. 마침내 <놈놈놈>을 보았는데, 나의 감상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사로 대신하고 싶다.
"I've never seen so many men wasted so badly." 
(위 문장에서 "men"을 "인력과 자본"으로 대체하면 된다.)


3. 그나저나 IMDb 랭킹을 보다가 갑자기 1위로 등극해버린 <The Dark Knight> 를 보고 깜짝 놀라버렸다.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평점 9,2로 1위라니 좀 오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 (그렇게 따지면 <쇼섕크 탈출>도 IMDb에서 과대평가된 건 마찬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