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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arthouse모모

'죽음의 가시' 상영 후 오구리 코헤이 감독과의 대화 후기

일요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상영한 '죽음의 가시' 이후 오구리 코헤이 감독과 이창동 감독 그리고 김영진 평론가가 참석해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한국과 일본의 거장 감독 답게 두 분의 이야기는 정말 철학에 가까울 정도로 깊이있는 대화가 오고 갔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트에 메모를 쓰기는 했지만 집에 돌아와 이렇게 글로 쓸려니 그 때의 발언을 제대로 옮긴건지 의심스럽다. 괜히 잘못 쓴 글 때문에 두 분의 진심어린 대화가 왜곡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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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평론가께서 오구리 코헤이 감독에게 이창동 감독을 만난 인연에 대한 질문을 하자 오구리 감독은 박하사탕 제작 당시 일본 NHK의 특별 프로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창동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한편 이창동 감독은 오구리 코헤이 감독을 만나면서 자신이 만난 일본인 중 가장 친숙하고 반가운 느낌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오구리 코헤이 감독의 영화에 관해서는 일본의 정신을 구현한 가장 일본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 김영진 평론가는 영화가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이야기하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후 부부는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하였다. 감독은 영화가 논픽션은 아니고 당사자가 쓴 사소설 (감독의 설명에 의하면 사소설은 작가의 신변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소설이라고 한다) 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부부간의 갈등을 겪은 작가가 일기를 작성한 후 8년 후부터 소설을 쓰게 되었고 소설을 무려 18년 여년 동안 작성했다고 한다. 원작인 '죽음의 가시'는 성경에서 유래한 제목이라고 하는데 부활의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한편 이창동 감독은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의 부부의 욕망과 투쟁이 낯익으면서도 그것을 극도로 절제된 양식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이러한 양식 때문에 부부의 모습이 고통이 아닌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양식의 미학과 아름다움을 통해 예술의 치유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 오구리 코헤이 감독은 '죽음의 가시' 의 장면인 철로 씬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영화 속에서 제 3자가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장면이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이 자신의 영화와 한국 영화의 차이점 같다고 설명한 그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의 장면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영화와 다른 이창동 감독의 특성을 이야기했다. 오구리 감독은 자신의 영화인 '매목'과 '잠자는 남자'를 언급하면서 자신은 스토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인간의 절실한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둔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이창동 감독은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고 말한 플라톤의 말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영화가 모방이라면 오구리 감독의 영화는 창조라고 설명하였다. 오구리 감독의 다섯 작품 중 '가야꼬를 위하여'까지가 모방, '잠자는 남자' 이후가 창조라면 '죽음의 가시'는 그 중간에 해당될 것이라고 말한 이창동 감독은 오구리 감독의 영화를 꿈꾸는 삶과 과거와 미래의 순환,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를 다룬다고 평했다.

- 오구리 코헤이 감독의 다른 작품인 '매목'을 들면서 감독이 나무로부터 느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관객의 질문이 있었다. 감독은 후쿠오카 영화제에서 만난 임권택 감독과의 대담 당시를 회상하였는데, 임권택 감독님은 나무가 자란 토양에 머무르면서 그 곳에서 이동하지 않은 체 수명을 이어가는 것처럼 문화도 생겨난 토양을 바꾸기 못한 체 그 곳에서 꽃피울 운명이라고 말씀했다고 한다. 감독은 자신이 숲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영화라는 장르가 움직이는 것에 집착하면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해 잘 보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 영화의 원작인 사소설을 접했을 때 느낀 개인적 감정에 관해 물은 관객의 질문에 감독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원작을 처음 접했고 12번 정도를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사소설을 쓴 작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약함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또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라는 그늘에 가려 스스로의 자아를 성장시키지 못한 체 일그러진 자아를 계속 만들어낸 일본의 현실을 들면서 사소설은 근대화의 부정적인 단면을 표현한 작품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 영화 속에서 군인들이 일렬 종대를 한 모습을 담은 이미지나 시마오의 부인이 군대식 명령을 내리는 장면들은 일본의 외적의 역사를 고려한 장면이 아닌가라는 관객의 질문이 있었다. 오구리 코헤이 감독은 사소설이란 장르가 '나'라는 내면에 갇혀 있었다면 발전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면서 원작의 작가가 사소설의 틀을 이용해 보편적인 정신세계를 다룬 작품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에 이창동 감독님이 보충 설명을 해주셨는데 사소설의 사(私)라는 단어가 반드시 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후 '사'라는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한국 남자들이 군대를 다녀온 후 꾸는 꿈처럼 영화 속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해석할 필요없이 주인공을 억압하고 있는 정신적 요소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 김영진 평론가가 이창동 감독의 촬영방식에 관한 의견을 오구리 코헤이 감독에게 물었는데, 감독은 예전 NHK 프로그램에서 나눈 대화를 언급하였다. 소설과 영화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이창동 감독은 소설은 혼자서도 가능한 장르이지만 영화는 모든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작품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오구리 코헤이 감독은 두 장르가 다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면에서 비슷하다고 말하면서 촛불의 예를 들었는데 불이 꺼지지 않도록 두 손으로 고이 모으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런 방식이 이창동 감독님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라고 말씀하셨다.

- 마지막으로 이창동 감독께서 오구리 코헤이 감독에게 올림픽 시즌이 아닌 월드컵 개최 시작 즈음에 새 작품을 접했으면 좋겠다는 농담섞인 말씀을 하셨고 감독은 이에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로 감사함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