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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세련되거나 혹은 유쾌하거나-공감되거나 혹은 파격적이거나-생각대로 보면 되고!


예고편으로 먼저 접한 <마음의 속삭임>은 왠지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으며 별 말 아닌 대화들 속에서 키득키득 웃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400번의 구타>, <네 멋대로 해라!>등의 영화가 자막으로 등장하는 중간중간의 카피들은 아련한 프랑스 영화의 낭만을 떠올리게 했지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의 매혹적인 잔느 모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없는 놀라운 내공의 루이 말 연출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극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루이 말 감독 특별전의 첫 번째 작품인 <마음의 속삭임>루이 말이 내 생애 최초의 영화라고 말 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표시했던 작품이라고 하지요. 영화는 미친 듯이 대기 중에 울리는 비 밥과 함께 카메라가 거리를 걷는 두 소년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됩니다. 루이 말은 자신의 소년 시절의 경험을 로랑에게 투영했다고 하네요. 사실 영화를 보다 보면 로랑과 루이 말이 겹쳐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로랑은 재즈에 미쳐 있습니다. 그는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의 음반을 들으며 조숙한 애늙은이 같은 말을 하고 다닙니다. 실제 영화를 보고 나면 시종 bgm으로 사용된 찰리 파커의 비 밥이 귓가에 이명을 남기기도 합니다. 영화의 세련된 분위기에 영화 음악이 톡톡히 한 몫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로랑의 특별한 취미는 다름 아닌 루이 말 본인 스스로의 취미이기도 하지요. 루이 말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를 영화 음악으로 사용한 일화는 사실 재즈 팬들에게는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 전까지는 영화 음악으로 재즈를 사용한 예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지요.




영화는 로랑이 머무는 공간과 그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혹은 유쾌하게 풀어냅니다. 처음 등장하는 공간은 로랑의 가정입니다. 아버지가 의사인 로랑은 부유한 프랑스 중산층 가정에서 부모님과 두 명의 형 아래서 막내로 자랍니다. 로랑의 두 형은 장난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놀라운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엄마가 보는 앞에서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훔치고 14살인 동생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주어 동정을 떼게 하기도 합니다. 귀엽고 앳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장난의 수준이 거의 악마의 경지에 이른다고 할 수 있지요. 귀여운 얼굴에 급호감을 갖던 저도 서서히 비호로 돌아섰으니, 그들의 완소 외모에 혹하지 마시길- 그러니, 자연 엄마의 사랑은 똑똑하고 예민한 로랑에게로 향하고 두 모자의 모습은 절친이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로랑의 캐릭터가 영화의 중심이기는 하지만, 저는 로랑의 엄마인 클라라의 모습이 더눈에 들어오고 생각을 여지를 준 것 같습니다. 클라라는 로랑의 아빠와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고, 심지어 프랑스 국적이 아닌 이탈리아 국적의 여성입니다. 로랑과의 대화에서 마구 웃으며 얘기하는 그녀의 과거는 어찌 생각하면 조금은 심각할 수도 있는 종류의 것입니다.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의 집에서는 돈을 보고 어린 여자가 들러 붙었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웃어넘길 수 있는 과거는 아닌 거지요. 그리고 왠지 남편과 함께 있을 때는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기도 합니다. 물론 이 광경을 엿보게 되는 로랑은 엄마를 향해 질투 어린 시선을 날리기도 하지요. 그녀가 진정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는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마음이 왜 이리저리 방황하고 흔들리는지, 그리고 아들을 향한 깊은 애정은 그것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 다양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가 아픈 아들을 위해 악기를 연주하며 고향의 노래를 하는 장면은 색다른 감흥을 주기도 합니다. 늘 웃고 명랑하며 단순해 보이기도 하는 그녀의 깊은 속 마음에는 왠지 모를 슬픔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
아래는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약간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시종 유쾌하게 풀어냄으로써 관객의 동의를 얻어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클라라가 쉽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을 웃으며 아들과 나누는 것처럼, 그렇게 모든 갈등이 술술 풀려나가지요.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엄마와 아들이 한 침대에서 자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 있습니다. 로랑은 심장에서 이상한 잡음이 들리는 신기한 병에 걸려 요양을 가게 됩니다. 리조트 같아 보이는 공간으로 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는 온천치료를 해주지요. 환자들이 옷을 벗고 서 있으면 벗은 몸에 호수로 물을 뿌리는 장면은 좀 우습기도 했지만, 대략 력셔리한 프랑스 중산층의 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실재 이런 공간이 있었나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때부터가 루이 말이 왜 훌륭한 감독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랑은 엄마에게 복잡한 심경을 가지게 되는데, 그저 친한 친구처럼 지내던 가정에서와는 달리 엄마와 단 둘이 지내게 되는 이 곳에서는 자신의 감정이 파도 위의 돛단배 마냥 넘실넘실 춤을 추며 이리저리 부유하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루이 말은 프랑스 영화 특유의 세련된 영상에 소년의 감정을 예리하게 담아냅니다. 엄마와 테니스를 치는 장면에서는 흐뭇한 모자 사이 같다가도, 엄마가 바람을 피는 것을 알게 된 후 언젠간 진짜 사랑이 나타날 거라는 조언을 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동성의 친한 친구 같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남편처럼 질투를 하기도 하지만, 우연히 엄마의 벗을 몸을 보았을 때는 남자의 농익은 눈빛을 비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나라 정서상 좀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소재이지만, 영화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게 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영화가 감정의 파고를 세심하게 잡아 낸 탓인지, 두 인물에게 동화되어 동조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험한 밤이 지나고, 민망한 아침이 왔을 때, 관객은 자연 긴장하게 됩니다. 소년과 소년의 엄마는 서로를 어떻게 대할까로랑과 엄마가 각각 따로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오자 그 곳에 갑자기 찾아온 온 가족이 앉아서 그들을 응시하는 장면은 긴장감이 흐르다 못해 순간 호흡을 잠시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자연스러운 결말로 향하며 이미 영화의 앞부분에 준비된 결말에 대한 카드를 꺼내어 보여줍니다.


 


영화 평론가 황진미는 이 영화를 보고 오이디푸스를 아예 관통하여 극복했다는 평을 남기며 혁명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평에 공감합니다. 30년도 더 된 루이 말의 영화에서 혁명을 느꼈다는 황진미님의 평이 더 신선하기도 했습니다만, 정확하게 표현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개봉할 <라콤 루시앙> <굿바이 칠드런>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