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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Kirschblüten, 2008)


평소 일본을 가고 싶어하던 트루디라는 노년의 여인은 자신의 남편인 루디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의사들로부터 듣게 된다. 남은 생애 동안 모험을 떠나볼 것을 제안하는 의사의 말에 트루디는 주저할 뿐이다. 왜냐하면 남편 루디는 규칙적인 삶에 익숙한 나머지 자신의 삶을 변화하는 모험을 떠나길 싫어하기 때문이다. 항상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반복적 생활에 익숙한 루디에게 일본이라는 생소한 나라를 향해 떠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남편을 사랑하고 그의 의견을 따르던 트루디는 남은 생애동안 자신의 자식들의 집을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루디와 트루디는 자신의 자식들이 살고 있는 가정을 찾아가기 위해 베를린에 도착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자식들의 모습은 반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노부부의 손자, 손녀들은 휴대용 게임기에 열중한 체 그들을 본체만체 하며 큰아들과 딸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노부모를 반가워 하기는 커녕 점점 길어지는 그들의 체류기간이 못마땅할 뿐이다. 오히려 노부부에게 시내를 관광시켜주고 그들을 도와주는 인물은 친자식이 아닌 딸의 동성 애인이다. 자식들과의 서먹한 관계를 견디지 못한 노부부는 그들에게서 벗어나 시내를 돌아다니려 하지만 복잡한 자동판매기에 적응하지 못한체 그저 떠나는 전철을 바라볼 뿐이다. 트루디와 루디는 자식들 집을 떠나 오랫동안 보지 못한 바다의 풍경을 보러 해안가에 숙박하게 된다. 트루디는 해안가의 모텔에서 숙박하는 동안 자신의 젊은 시절에 즐겨 춤추던 부토 춤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루디는 자신의 부인인 트루디의 심경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체 그녀를 공연장 바깥에서 바라본다. 이후 루디는 트루디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함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남편과의 생의 이별을 준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던 트루디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체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반려자를 한순간에 잃은 루디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트루디를 그리워한다. 아내의 유품을 찾아 보던 루디는 아내가 일본이라는 곳을 동경하고 그 곳에 있는 후지산의 절경을 구경하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그녀가 남긴 기모노와 옷가지들을 침대에 배열한 후 그 옷들을 통해 자신 곁에 없는 아내를 그리워하던 트루디는 큰 결심을 하고 일본이라는 나라로 홀로 떠나게 된다. 루디는 일본의 회사에서 근무하는 카를의 집에 머물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사무적이고 반복적인 삶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카를은 아버지가 자신의 집에 머물게 되자 싫은 기색을 내보인다. 친아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한 체 루디는 자신의 아내가 보고 싶어하던 일본의 모습을 바라본다. 아내의 유품인 옷과 목걸이를 자신의 몸에 착용한 후 그것들에게 말을 걸며 일본의 풍경을 바라보는 루디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당황스런 면이 있지만 아내가 보지 못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남편의 배려는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