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최근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들을 상영하고 있어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더 레슬러'를 서둘러 감상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작품은 '꿈을 위한 진혼곡'밖에 본 적이 없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실험적인 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인물들의 몰락의 과정이 너무나 현실감있게 다가와서 한동안 잊지 못할 정도였으며 후에 DVD를 구입했지만 아직까지도 꺼내 볼 용기가 생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더 레슬러'는 '레퀴엠'에 비하면 비교적 준수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사실 '더 레슬러'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기존의 스포츠 영화의 구성을 그대로 따른다. 신체적인 한계로 링을 떠나지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기 위해 링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록키'같은 스포츠 영화를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더 레슬러'는 범작으로 머무를 수 있는 내용을 효과적인 연출을 통해 현실감을 부여하고 미키 루크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랜디라는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공감하도록 함으로써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주로 헨드핼드 기법으로 촬영되었는데, 주인공 뒤를 따라다니면서 촬영한 장면들이 마치 실제 인물의 삶을 추적해가는 느낌을 주면서 현실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현실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영화의 주인공인 랜디가 가상의 인물 같지 않다는 점이다. 랜디라는 레슬러를 연기하는 미키 루크의 모습은 영화라는 창작된 매체 속에서 활동하는 캐릭터가 아닌 정말로 한 때 잘나갔지만 이제 은퇴 기로에 놓여있는 레슬러로 느껴진다. '록키 발보아' 속의 록키가 부진을 거듭했던 실베스타 스텔론 자신의 삶이 담겨져 있는 것처럼 '더 레슬러'도 랜디라는 인물을 통해 배우로서 생명력이 다해버렸다고 생각한 미크 루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영화는 링 안의 세계와 링 밖의 세계를 교차함으로서 랜디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링 안의 세계에서 랜디는 한물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관객과 동료 레슬러들에게 존경받는 스타이다. 전성기 때보다 많지는 않겠지만 그의 열광적인 팬들은 여전히 랜디 램을 환호하며 그의 승부를 지켜본다. 링 안에서 레슬러들의 격렬한 퍼포먼스가 진행되지만 대기실에서 상대방과 작전과 소품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교차함으로써 레슬링이란 스포츠가 두 사람의 진검승부가 아닌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레슬링이 아무리 짜고 치는 승부라고 하더라도 다른 종목에 비해 과격하고 위험이 따르는 스포츠이다. 2시간 동안 채찍을 맞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켜보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관객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선수들은 철제의자를 두들겨 맞고 심지어 면도날로 살을 찢고 스테플러 심을 살에 박는 과격한 퍼포먼스도 꺼리지 않는다. 경기가 끝난 후 피투성이가 된 랜디의 모습은 경기 후에 남겨진 후유증을 현실감있게 보여준다.
하지만 링 밖에서 생활하는 랜디의 모습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링 안의 모습보다 더 참혹하고 비참하다. 그는 집세를 낼 돈이 없어 차 속에서 잠을 청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형 마트의 관리자에게 굽신거리면서 파트타이머로 일한다. 링 안에서 강인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랜디의 모습과 대비해 사회 속에서 보여지는 랜디의 모습은 망가져가는 육체를 간신히 지탱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보청기를 귀에 달고 안경으로 책을 보는 랜디의 모습은 근육질의 레슬러가 아닌 나이 든 중년 남자의 초라한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랜디에게 재정적인 어려움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과 고독이다. 고요한 적막이 있는 낡은 집에서 홀로 여가를 보내는 랜디의 모습은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는 레슬링으로 번 얼마 되지 않는 돈을 가지고 스트립 댄서들이 춤을 추는 술집으로 찾아간다. 그 곳에서 랜디는 자신처럼 바에서 퇴물 취급받는 캐시디라는 여인을 만나 외로움을 해소한다. 사회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그에게 캐시디는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멘토이자 친구 이상의 존재이다. 하지만 영업시간 중 밖에 나올 수 없다는 등 규칙에 얽매여 있는 캐시디는 랜디가 접근할수록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를 제시하며 선을 긋는다. 결국 랜디와 캐시디는 술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관계인 것이다.
레슬링 시합을 마친 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랜디는 심장 질환으로 레슬링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삶의 가치를 있게 해준 링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에 빠진 랜디는 캐시디를 만나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한 후 자신의 딸인 스테파니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고백한다. 아버지가 딸을 찾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랜디에게 딸을 찾아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스테파니에게 메시지를 남기려다가 머뭇거리고 오랫만에 해후한 스테파니가 쌀쌀맞게 대하는 것조차 받아들이는 랜디의 모습은 부녀지간의 소원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랜디는 적극적으로 스테파니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캐시디의 충고를 듣고 스테파니의 옷을 고르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그의 구식 패션 감각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해변가에서 딸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모습은 눈물을 자아낸다. 주름진 얼굴 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촬영한 클로즈업 쇼트는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진실된 마음이 담겨져 있다.
딸과 극적인 화해를 한 랜디는 친구 이상인 존재인 캐시디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하지만 캐시디는 랜디와 손님 이상으로 친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그녀가 랜디에게 호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손님과 종업원으로 지켜야 할 선을 그어넣은 것은 미혼모로 살고 있으면서 겪은 남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캐시디에게 자신의 고백이 무시당하자 랜디는 참지 못하고 폭주해버리고 만다. 랜디는 캐시디를 창녀 취급하는 것도 모잘라 딸의 약속을 생각치 못한 체 낯선 여인과 충동적인 하룻밤을 지내 버린다. 결국 한 순간에 랜디는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해 줄 대상을 모두 잃어버린다. 삶의 유일한 희망을 잃어버린 랜디는 자신이 일하는 식료품 가게에서 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스타였던 자신이 수모를 감수하더라도 파트타이머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을 사는 원동력인 두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외면받은 후 그는 현실을 감내할 만한 자신감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 퇴물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을 수 있는 곳은 오직 링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한 그는 다시 전화를 걸어 한 때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아야톨라와의 재시합을 하기로 결심한다.
캐시디가 뒤늦게 찾아와 목숨을 건 레슬링 시합을 하려는 랜디를 말리려 하자 그는 이미 내 심장은 바깥 세상에서 찢어져 버렸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시합을 포기하고 캐시디와 함께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랜디는 그녀를 포기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관객을 선택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고 최후를 각오한 체 링을 선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일본 만화인 '내일의 죠'의 마지막 모습이 연상된다.) 랜디는 아야톨라와 시합을 하기 전 마이크를 들며 자신이 살아오던 인생에 대해 회고한다. 레슬링을 하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렸지만 여전히 나는 이 링 위에 서있다고 말하는 랜디의 모습은 미키 루크 자신의 다짐처럼 느껴진다. 그의 연설은 영화 속에서 맴돌지 않고 관객들 마음 속까지 새겨드는 묘한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랜디가 연설을 끝내는 순간 그는 신체의 고통이 전해지는 전투의 현장으로 돌아온다. 비록 서로의 협의 하에 이루어지는 레슬링이지만 라이벌 답게 (그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지 모른 탓도 있겠지만) 아야톨라는 행동이 필요할 땐 프로페셔널하게 공격해온다. 이란을 쳐부수는 미국을 연호하듯이 USA를 연발하는 관객들의 욕구에 맞추기 위해 랜디는 온갖 힘을 끌어내 전투에 임한다. 그가 조금씩 죽음의 경계에서 서있다는 것은 링에 서있는 아야톨라 만이 인식할 뿐이다. 하지만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랜디는 링 위로 올라가 그를 연호하는 관객을 향해 퍼포먼스를 한다. 쓸쓸한 배경음악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몸을 조금씩 움직여가는 랜디의 모습은 최후를 각오한 한 남자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가 젖먹던 힘을 다해 아야톨라를 향해 스플레쉬 기술을 쓰는 순간 관객의 환호성을 뒤로 한 체 영화는 링 위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 남자의 모습을 적절한 순간으로 끝맺음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더 레슬러'라는 작품은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영화인 '꿈을 위한 진혼곡'보다는 준수한 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키 루크 자신의 치열한 연기와 삶 덕분에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배우의 이름조차 잊혀질 정도로 쓸쓸히 사라져가는 순간 레슬러로 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그의 연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