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린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인도로 가는 길'을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품인 '인도에서 생긴 일 (Heat and Dust)'이 연상되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작품을 비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임스 아이보리가 E.M. 포스터의 저서들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많아서 그런지 '인도에서 생긴 일'도 처음엔 포스터의 작품이 원작인 줄 알고 있었다.) 특이한 건 두 작품이 유사한 부분이 많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인도 사회에 배타적인 영국인들 사이에 인도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가진 여인이 등장한다는 점과 한 영국 여인과 인도인의 기묘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두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 생긴 일'이 금지된 로맨스 영화의 측면이 많다면, '인도로 가는 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영화이다. 전반부에서 두 영국여인과 한 인도인의 만남을 통해 인도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려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후반부는 기묘한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인도인과 영국인의 대립을 통해 영국의 인도 식민통치 시기의 갈등을 드러낸다.
영화의 초반부는 인도에서 근무하는 약혼자인 로니를 만나기 위해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두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로니의 어머니인 무어 부인과 로니의 약혼녀인 아델라는 처음으로 접해보는 인도라는 곳을 인종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문화를 신기한 태도로 받아들인다. 인도에 도착한 뒤 로니를 비롯한 터틀 부부 등의 영국인들을 만나 일상을 보내지만 두 여인은 인도 사람들과 거리를 둔 체 그들만의 문화 생활을 즐기는 영국인들의 태도를 불편하게 느낀다. 아델라와 무어 부인은 인도 안에서 영국 사회의 틀을 지키는 영국인들과 만나기 보다는 인도인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인도의 참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한편 영화는 영국이 지배하는 인도 지역인 찬드라포어의 의사인 아지즈란 남자를 등장시킨다. 그의 첫 등장은 인도 식민정부의 관리인 터틀 부부의 자동차가 그의 자전거를 부딪치고도 아무런 사과없이 지나가는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한 뒤 아지즈와 그의 친구가 영국인들의 태도를 비난하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인도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은 체 무시하는 영국인들의 오만을 비판한다. 자전거 사고 이후 아지즈의 계속된 봉변은 현지인들을 깔보는 영국인들의 안하무인한 태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아지즈의 시련은 뜻하지 않은 만남을 갖게 된다. 우연히 사원에 들어온 무어 부인과 만나게 된 아지즈는 다른 영국인들과 달리 타문화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지키는 무어 부인의 태도에 감명을 받는다. 인도인들을 만남으로써 그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했던 무어 부인 역시 아지즈라는 선량한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인도인들을 만남으로써 인도의 참모습을 경험하고 싶어하던 무어 부인과 아델라는 인도의 대학의 학과장인 필딩이란 남자를 통해 인도인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인도인의 집을 보고 싶어하던 두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아지즈는 지나칠 정도로 그들의 호의에 응하기 위해 마라바 동굴 여행을 제안한다. 인도의 명소를 관광할 수 있겠다는 호기심이 생긴 두 여인은 기쁘게 호의를 받아들이지만, 누추한 자신의 집을 보여주기 싫어 충동적으로 여행을 제안한 아지즈는 그들을 어떻게 대접할지 고민하게 된다. 아지즈의 고민을 알고 있는 하딩은 그의 집을 방문해 그의 계획을 재고할 것을 충고하지만 순진한 아지즈는 계획을 관철한다. 영화는 하딩이 아지즈의 집을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하딩의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데, 아지즈의 집을 몸소 찾아가 허물없이 인도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을 통해 인도 문화와 사회에 대해 포용력을 갖춘 그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반면 자신의 집을 찾아온 하딩에게 지나칠 정도로 친절을 대하는 아지즈의 모습은 자신의 지배자인 영국인들에게 스스로 굽신거리는 나약한 태도를 보여준다. 비록 하딩이란 인물이 인도인들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력을 갖춘 사람이지만 누추한 집을 찾아왔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옛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는 아지즈의 태도는 너무나 공손하고 소극적인 느낌이다. 흥미로운 건 바로 아지즈의 소극적인 모습인데, 영국인들에게 공손한 그의 태도가 후에 있을 사건을 통해 변화된다는 점이다.
마라바 동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새벽에 두 여인을 기차역에서 기다린 아지즈는 만반의 준비를 한 뒤 두 여인과 함께 기차 여행을 떠난다. 항상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고 형식을 중시하는 인도인 교수인 고드볼리 때문에 기차역에 늦게 도착한 하딩을 두고 온 체 세 사람은 마라바 동굴을 향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는 마라바 동굴로 가는 기차의 풍경을 통해 광활한 인도의 자연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산을 향해 올라가는 기찻길의 풍경과 그 아래로 펼쳐진 자연의 모습, 그리고 바위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코끼리의 모습을 롱쇼트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마라바 동굴에 도착한 일행은 소리를 내면 기묘한 환청이 들린다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직접 체험을 해보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동굴의 소리의 정체이다. 사람의 메아리가 울려퍼지면서 들려오는 환청은 다름아닌 두 영국 여인에게 커다란 정서적인 충격을 안겨준다. 마치 숨기고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불러 일으키는 듯한 환청은 무어 부인을 괴롭혀댄다. 동굴을 빠져나와 간신히 숨을 돌린 무어 부인은 수행원들을 모두 떼어내고 아지즈와 아델라 따로 동굴을 탐험할 것을 제안한다. 그녀의 제안은 두 사람의 운명을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더보기
약혼남인 로니를 만나기 위해 인도에 온 아델라는 사실 그에 대한 정확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 여인이다. 그래서 인도에서 생활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로니를 사랑하는지 확인하려고 한다. 아델라는 그에게 솔직하게 자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면서 좋은 사이로 남길 원한다. 하지만 우연히 자전거를 타다 발견한 고대의 유적인 그녀에게 사라의 감정을 다시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아델라의 혼란스런 감정은 아지즈와의 여행을 통해 더욱 증폭된다. 더위에 지친 아델라의 손을 맞잡고 동굴을 향해 걸어가는 아지즈의 모습은 서로 다른 인종인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유발한다. 자신의 약혼자인 로니에 대한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된 아델라는 두 번의 결혼 경험이 있는 아지즈에게 그가 느꼈던 사랑의 감정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한다. 어색한 두 남녀의 대화 후 아지즈는 담배를 핀다는 핑계를 대고 그 곳을 서둘러 벗어난다. 아지즈가 잠시 사라진 뒤 홀로 동굴에 들어간 아델라는 자신을 찾는 아지즈의 환청을 듣고 당황하기 시작한다. 마치 무어 부인이 환청에 놀라 가슴을 쓸어내린 것처럼 그녀 역시 아지즈의 목소리를 들은 뒤 혼란스런 표정을 지은 체 동굴 입구에 서 있는 아지즈를 바라본다. 이후 영화는 서둘러 동굴을 내려가는 아델라의 모습과 그녀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 하는 아지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후 있을 사건의 미스테리를 제공한다. 영화는 왜 아델라가 놀란 듯이 아지즈를 피해 동굴에서 벗어나려고 했을까에 대한 묘사를 하지 않지만 무어 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아델라 역시 환청을 통해 마음 속에 담고 있었던 그녀의 복합적인 감정이 공포로 돌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아델라가 동굴에서 내려와 캘린더 부인의 차를 타고 사라진 것을 목격한 아지즈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체 동굴 입구로 돌아온다. 뒤늦게 동굴에 도착한 하딩을 만난 아지즈는 무어 부인과 함께 찬드라포어로 되돌아가지만, 기차역에 대기한 수많은 경찰과 군중들이 그들을 맞이한다. 영문을 모른 체 그들을 보던 아지즈는 경찰이 자신을 강간 미수 혐의로 체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경악하게 된다. 하딩과 무어 부인은 아지즈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돌아온 아델라의 모습을 목격한 로니를 비롯한 영국인들은 의식을 헤매는 아델라의 진술은 들어보지 않은 체 그저 아지즈를 흉악한 범죄자로 간주한 체 그저 그를 체포할 뿐이다. 전반부가 마치 제임스 아이보리의 '인도에서 생긴 일(Heat and Dust)'처럼 인도인 남성과 영국인 여성과의 사랑으로 발전할 것 같았던 영화는 억울하게 강간 미수 혐의로 체포된 아지즈가 법정에 서게 된 과정을 통해 영화의 성격이 전환된다. 영국인들은 로니의 아내가 될 여인인 아델라의 모습만 본 체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려 한다. 하딩만이 아지즈를 옹호하면서 그를 도우려 하지만 영국인들은 인도인 편을 드는 그를 배신자로 간주하며 그를 따돌림한다. 아지즈를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편협한 태도는 마치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속의 백인들이 연상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진상을 조사하지 않은 체 성폭행범으로 몰던 백인들처럼, '인도로 가는 길' 속의 영국인들 역시 아무런 근거 없이 아지즈를 성폭행범으로 처벌하려 한다.
아지즈의 재판은 그동안 영국인에게 억눌려 있던 인도인들의 분노를 사게 된다. 아지즈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인도인들의 모습과 사건의 당사자인 아델라를 태운 차들을 향해 보이는 인도인들의 적의는 백인들에 대한 증오를 여실히 보여준다. 재판 과정에서 보여지는 판결의 방식 역시 영국인들의 의도대로 진행될 뿐이다. 변호 측은 아지즈의 무죄를 유일하게 증명할 만한 참고인인 무어 부인을 참석하도록 요구하지만, 무어 부인은 아들의 태도에 실망한 후 배를 타던 중 죽음을 맞이한 뒤였다. 결국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아델라가 법정에 서게 되면서 판결의 방향이 결정된다. 아델라는 그 날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떠올리려고 기억을 되살리지만 그 때 들었던 환청을 떨쳐내지 못한 체 어지럼증을 느낀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린 아델라는 솔직하게 자신의 진실을 청중에게 드러낸다. 아델라가 그 날 있었던 사건의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아지즈는 무죄로 풀려나게 된다. 마치 정의의 승리를 기뻐하듯이 법정 주변에 모여있던 인도인들은 법정에 뛰쳐 들어와 그들의 영웅인 아지즈를 끌고 나와 그를 칭송한다.
아델라가 진실을 고백한 순간,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머릿 속에 남아있던 환청이 사라졌다고 고백한다. 결국 아델라를 괴롭혔던 환청은 진실을 고백하지 못한 체 마음 속에 삭혀두었던 그녀의 내면의 목소리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아델라는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심적인 고통을 벗어나게 되었지만 이제 그녀는 인도 사회 내의 영국인들에게 배척받는 신세가 된다. 재판이 끝난 후 진실을 솔직하게 고백한 아델라를 향해 욕설을 내뱉으며 서둘러 재판장을 떠나는 영국인들의 모습은 편협하고 오만에 가득찬 영국인들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아델라에 대한 악의적인 시선이 영국인들만이 아닌 인도인들에게도 남게 된다는 점이다. 비내리는 거리를 힘없이 홀로 걸어가는 아델라를 유일하게 보살펴주던 영국인인 하딩은 그녀에게 막대한 청구료를 요구하는 변호측을 설득하기 위해 아지즈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하딩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아지즈의 모습은 더 이상 영국인에게 선량한 인도인의 태도가 아니다. 깔끔한 옷차림으로 등장한 아지즈는 아델라에 대한 청구를 거두어달라는 하딩의 요청을 거부한다. 아델라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던 아지즈는 이제 영국이 지배하는 인도가 아닌 인도인들이 다스리는 인도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한때 영국인들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과 친절함을 보여주었던 아지즈는 재판을 계기로 이제 다른 인도인들처럼 영국인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가진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지즈와 하딩의 어색한 헤어짐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영국과 인도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이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재판 이후 아지즈와 하딩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아지즈는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 카슈미르 지역으로 이동해 그 곳에서 살아가지만 하딩이 보낸 편지들을 무시하면서 그와의 대화를 거부한다. 하지만 한 여인과 결혼을 결심한 하딩이 이 곳을 찾아갈 것이라는 고드볼리 교수의 이야기를 들은 아지즈는 자신의 집을 찾아올 하딩을 맞이하기로 결심한다. 하딩과 어색한 만남을 가진 아지즈는 그가 아델라와 결혼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모함한 아델라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며 하딩을 비난한다. 하지만 하딩은 자신이 결혼할 여인이 아델라가 아닌 무어 부인의 딸인 스텔라임을 고백한다. 비록 재판을 계기로 영국인들에 대한 적의를 가지게 된 아지즈이지만 무어 부인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는 인도인들에 대해 호의와 애정을 잃지 않았던 무어 부인을 떠올리며 영국인들에 대한 적의를 지워 버린다. 아지즈는 스텔라와 하딩 부부를 보며 영국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씻게 되며, 자신을 범죄인으로 만들 뻔했던 아델라에 대한 적의마저 스스로 청산하며 그녀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편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 아지즈의 글과 그의 글을 읽으며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아델라의 모습은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풀어내려고 노력하는 두 국가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ps. 영화에서 알렉 기네스가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알렉 기네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을 본 순간 인도인 교수인 고드볼리가 다름아닌 알렉 기네스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고 말았다. 인도인 복장을 하고 인도인처럼 거무스름한 얼굴로 분장을 해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냥 인도인 배우라는 생각만 했지, 그가 알렉 기네스라는 점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