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타티는 '윌로 씨의 휴가'같은 작품의 감독으로 알고는 있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자크 타티 회고전을 상영한다는 글을 읽고 그의 작품들을 이번 기회에 접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가장 먼저 본 작품은 '플레이타임'이란 영화인데, 자크 타티가 만든 몇 편의 작품 중 그의 일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고 한다. 카탈로그에 의하면 자크 타티는 10년에 달하는 제작 기간을 거쳐 150여 분에 달하는 작품을 만들었지만 흥행에 참패하는 바람에 전 재산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고 한다. '플레이타임'이 왜 저주받은 걸작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인공적인 배경으로 이루어진 파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가 생소하게 느껴져 대중의 외면을 사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는 하늘의 정적인 모습을 담아낸 뒤 서서히 한 건물 안의 모습을 정적인 화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례적인 구도로 이루어진 칸막이들과 그 주변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공적으로 느껴지며 그 속에서 일상생활을 하듯이 분주히 움직이는 인간들의 모습은 생소한 느낌이 든다. 이처럼 영화는 자크 타티의 고유 캐릭터인 윌로 씨가 등장하기 전까진 공항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정적인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다. 이후 공항에서 단체로 파리를 관광하러 온 미국인들이 도착하면서 영화는 미국인 관광객인 바바라와 윌로 씨를 동시에 등장시킨다. 특이한 점은 두 사람이 산업화로 인해 모든 것이 정형화되고 비례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진 파리라는 도시를 처음 마주친 인간들이란 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파리의 모습은 계획화된 도시처럼 비례적이고 인공적인 느낌이 든다. 쇼트 안에 담겨진 건물들과 자동차들, 그리고 건물 안의 칸막이들의 비례적인 구도는 인간들이 그 속에 갇혀져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는 윌로 씨가 회사 내의 직원을 만나기 위해 건물 안에 들어간 후 방황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산업화된 문명 속에서 목적을 잃은 체 각자의 업무에 몰두하는 인간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윌로 씨(Mr. Hulot)란 인물은 마치 찰리 채플린 같은 무성영화의 캐릭터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중절모와 롱코트를 착용하고 항상 우산을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특이한 점은 이 영화가 유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윌로의 모습은 영락없는 무성영화의 캐릭터같다는 점이다. 그는 채플린처럼 과장되고 황당한 행동을 벌이면서 주변의 환경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보다는 마치 시골에서 대도시를 처음 접한 사람처럼 문명화된 환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행동에 당황하는 모습을 통해 웃음과 비판의식을 동시에 전달한다. 윌로가 회사의 직원을 만나기 위해 그를 쫓아가다 윗 층에서 사무실을 목격하는 모습과 그를 만나기 위해 사각형으로 된 방들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한편으론 사각형으로 된 칸막이 방 속에서 업무에 매진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정형화된 조직에 갇혀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처럼 파리의 인공적인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낮부터 밤까지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시간적 순서에 진행하고 있다. 낮동안 윌로씨는 직원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이동하지만 인파들에 섞이면서 엉뚱하게도 박람회가 열리는 건물 안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그 공간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른 체 인간들과 마주한다. 수많은 인파들에 섞여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체 박람회의 직원이 되었다가 다시 손님이 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윌로의 모습이 코믹하지만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비인간화되는 직원들의 모습이 바쁜 생활 속에서 정체성을 잃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 미국인 관광객인 바바라가 파리를 바라보는 모습도 이러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바바라는 다른 미국인 관광객과 달리 고층 건물 아래서 꽃을 파는 노인의 모습에서 인간미를 발견하고 그녀를 찍으려 하지만 계속해서 들어오는 인파들 때문에 끝내 사진을 찍지 못한다. 그녀 역시 도시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인파들을 만나 당황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낮이 지나 밤이 되어 건물의 문이 닫히자 윌로는 어쩔 수 없이 건물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만 그 곳에서도 윌로는 자기 뜻대로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아는 군대 동기를 만나 아파트로 초대받는데, 마치 개방형 아파트 같은 공간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른 체 두리번거리는 윌로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한편 인공적인 아파트의 내면 공간의 모습은 마치 현대의 가정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아무런 대화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체 TV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는 인간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영화는 하늘의 정적인 모습을 담아낸 뒤 서서히 한 건물 안의 모습을 정적인 화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례적인 구도로 이루어진 칸막이들과 그 주변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공적으로 느껴지며 그 속에서 일상생활을 하듯이 분주히 움직이는 인간들의 모습은 생소한 느낌이 든다. 이처럼 영화는 자크 타티의 고유 캐릭터인 윌로 씨가 등장하기 전까진 공항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정적인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다. 이후 공항에서 단체로 파리를 관광하러 온 미국인들이 도착하면서 영화는 미국인 관광객인 바바라와 윌로 씨를 동시에 등장시킨다. 특이한 점은 두 사람이 산업화로 인해 모든 것이 정형화되고 비례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진 파리라는 도시를 처음 마주친 인간들이란 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파리의 모습은 계획화된 도시처럼 비례적이고 인공적인 느낌이 든다. 쇼트 안에 담겨진 건물들과 자동차들, 그리고 건물 안의 칸막이들의 비례적인 구도는 인간들이 그 속에 갇혀져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는 윌로 씨가 회사 내의 직원을 만나기 위해 건물 안에 들어간 후 방황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산업화된 문명 속에서 목적을 잃은 체 각자의 업무에 몰두하는 인간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윌로 씨(Mr. Hulot)란 인물은 마치 찰리 채플린 같은 무성영화의 캐릭터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중절모와 롱코트를 착용하고 항상 우산을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특이한 점은 이 영화가 유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윌로의 모습은 영락없는 무성영화의 캐릭터같다는 점이다. 그는 채플린처럼 과장되고 황당한 행동을 벌이면서 주변의 환경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보다는 마치 시골에서 대도시를 처음 접한 사람처럼 문명화된 환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행동에 당황하는 모습을 통해 웃음과 비판의식을 동시에 전달한다. 윌로가 회사의 직원을 만나기 위해 그를 쫓아가다 윗 층에서 사무실을 목격하는 모습과 그를 만나기 위해 사각형으로 된 방들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한편으론 사각형으로 된 칸막이 방 속에서 업무에 매진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정형화된 조직에 갇혀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처럼 파리의 인공적인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낮부터 밤까지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시간적 순서에 진행하고 있다. 낮동안 윌로씨는 직원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이동하지만 인파들에 섞이면서 엉뚱하게도 박람회가 열리는 건물 안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그 공간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른 체 인간들과 마주한다. 수많은 인파들에 섞여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체 박람회의 직원이 되었다가 다시 손님이 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윌로의 모습이 코믹하지만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비인간화되는 직원들의 모습이 바쁜 생활 속에서 정체성을 잃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 미국인 관광객인 바바라가 파리를 바라보는 모습도 이러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바바라는 다른 미국인 관광객과 달리 고층 건물 아래서 꽃을 파는 노인의 모습에서 인간미를 발견하고 그녀를 찍으려 하지만 계속해서 들어오는 인파들 때문에 끝내 사진을 찍지 못한다. 그녀 역시 도시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인파들을 만나 당황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낮이 지나 밤이 되어 건물의 문이 닫히자 윌로는 어쩔 수 없이 건물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만 그 곳에서도 윌로는 자기 뜻대로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아는 군대 동기를 만나 아파트로 초대받는데, 마치 개방형 아파트 같은 공간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른 체 두리번거리는 윌로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한편 인공적인 아파트의 내면 공간의 모습은 마치 현대의 가정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아무런 대화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체 TV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는 인간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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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영화는 '로열 가든'이라는 한 레스토랑을 등장시킴으로써 전반부에 등장한 인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어울리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로열 가든이라는 음식점은 이제 막 개업을 준비하려 하지만,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체 손님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손님이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로열 가든의 문제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바닥에 깔아놓은 타일이 떨어져 구두 바닥에 붙는가 하면 입구 안에 기둥을 설치해 종중 부딪히는 우스꽝스런 모습들이 등장한다. 이처럼 손님을 받아들일 수록 로열 가든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식당의 지배인과 직원들은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코믹한 방식으로 대처한다. 종전까지 우연히 마주치던 바바라와 윌로 그리고 건물 안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로열가든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조용하던 식당은 사람들로 바글거리기 시작한다. 확실한 마무리를 마치지 않은 체 서둘러 건물을 완성하고 임시방편으로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지배인의 모습은 부작용은 생각치 않은 체 성과를 위해 우선 만들고 보자는 산업화의 속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듯 하지만, 영화는 전반부보다는 보다 포용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손님들의 모습을 통해 마치 다양한 인종들이 어울려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프랑스의 모습을 담아내려 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식당을 개업하는 순간부터 부를 과시하는 고위층 인사들이 식당에 들어가지만 점점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바글해지자 식당 안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술에 흠뻑 취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겉모습에 연연치 않은 체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며 밤을 보낸다. 건물의 장식물이 무너져 내리는 위기가 발생하면서 음악이 끊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히려 공간을 만들어 서로 연대하며 즐거워 한다. 밤에서 다음 날 아침까지 이르는 한바탕의 대소동은 가장 웃기면서도 인간적인 느낌이 드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침 해가 뜨면서 사람들은 레스토랑을 나와 거리를 지나간다. 아침 거리엔 자신의 일을 위해 현장에서 공사를 하는 사람들과 약국 주변의 식당에 모여 간단한 식사를 하는 하류층 사람들이 있지만 식당을 나온 사람들은 그 기분을 잊지 않고 그 사람들과 어울러 함께 즐거워 한다. 이런 소동극은 하나씩 사람들이 사라져 가면서 원래의 생활 방식으로 되돌아기기 시작하지만 새벽 동안의 모습을 통해 자크 타티는 산업화 된 공간 속의 사람들이 완전히 인간성을 상실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원으로 된 도로를 향해 이동하는 차들의 행렬은 마치 놀이 동산의 회전 목마같은 느낌을 주는데, 청소부가 닦는 창문이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동안 버스 안의 관광객들이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부분이 코믹하게 느껴진다. 혼잡한 차량이 얽혀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불평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산업화된 도시의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식당을 개업하는 순간부터 부를 과시하는 고위층 인사들이 식당에 들어가지만 점점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바글해지자 식당 안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술에 흠뻑 취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겉모습에 연연치 않은 체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며 밤을 보낸다. 건물의 장식물이 무너져 내리는 위기가 발생하면서 음악이 끊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히려 공간을 만들어 서로 연대하며 즐거워 한다. 밤에서 다음 날 아침까지 이르는 한바탕의 대소동은 가장 웃기면서도 인간적인 느낌이 드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침 해가 뜨면서 사람들은 레스토랑을 나와 거리를 지나간다. 아침 거리엔 자신의 일을 위해 현장에서 공사를 하는 사람들과 약국 주변의 식당에 모여 간단한 식사를 하는 하류층 사람들이 있지만 식당을 나온 사람들은 그 기분을 잊지 않고 그 사람들과 어울러 함께 즐거워 한다. 이런 소동극은 하나씩 사람들이 사라져 가면서 원래의 생활 방식으로 되돌아기기 시작하지만 새벽 동안의 모습을 통해 자크 타티는 산업화 된 공간 속의 사람들이 완전히 인간성을 상실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원으로 된 도로를 향해 이동하는 차들의 행렬은 마치 놀이 동산의 회전 목마같은 느낌을 주는데, 청소부가 닦는 창문이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동안 버스 안의 관광객들이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부분이 코믹하게 느껴진다. 혼잡한 차량이 얽혀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불평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산업화된 도시의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