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퀴즈쇼와 한 사람의 인생을 조합한 독특한 구성이 흥미로웠던 작품이었지만 영화 속에 묘사된 운명적인 사랑과 성공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보고 나서 과연 원작은 어떤 내용을 취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들곤 했었다. 영화와 책의 내용이 다른 점이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 왔지만, 막상 책을 읽고 나니 많은 점이 영화와 다른 특색을 보이고 있었다. 퀴즈쇼의 정답이 한 청년의 인생에서 도출된다는 기본적인 과정과 몇몇 에피소드들만 영화에서 묘사되었을 뿐, 인물의 성격이나 퀴즈쇼의 과정 및 심지어는 주제마저도 영화와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리얼리티의 측면에서 본다면 영화에 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묘사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로선 책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책은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 경찰에게 붙잡힌 람 모하마드 토마스의 독백을 통해 진행된다. 정규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웨이터인 람이 퀴즈쇼에서 우승하자 퀴즈쇼의 관계자들이 그를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람을 경찰에 고발한 이유는 퀴즈쇼에 숨겨진 비밀 때문이기도 하다. 'W3B(누가 십억의 주인이 될 것인가?)'라는 퀴즈쇼는 사실 십억 루피를 준비조차 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제작비를 회수할 때까지 그들은 각본에 쓰인 대로 퀴즈쇼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을 탈락시키기로 정해놓았던 것이다. 람을 탈락시키기 위해 퀴즈쇼의 사회자인 프렘 쿠마르는 제작진의 사인에 맞춰 퀴즈의 문제들을 교묘하게 바꿔치기 한다. 프렘은 시작 단계에서 일부러 람이 아는 지식 내에서 퀴즈를 냄으로써 방청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다음, 단계가 지속될수록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람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그는 도중에 포기하려는 람을 설득해 퀴즈를 계속 진행하도록 유도하며, 퀴즈 문제와 정답을 가르쳐준 뒤 정작 방송이 시작될 때에는 다른 문제를 바꿔 내는 편법을 동원한다. 이처럼 사기에 가까운 퀴즈쇼에서 람은 모든 문제를 맞히게 되었고, 십억을 잃을 위기에 처한 방송국은 그를 협박함으로써 강제로 약속을 무효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람을 변호하기 위해 찾아온 한 여자 변호사의 도움으로 그는 경찰에게서 풀려난다. 람을 찾아온 변호사는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승의 비결을 이해하게 된다.
퀴즈쇼의 문제 속에서 드러나는 람의 인생 이야기 속에는 인도 하류층의 비참한 현실과 종교 갈등을 묘사되어 있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이름은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식의 이름이 혼합되어 있다. 어릴 적부터 외국인 선교사에게 길러진 소년은 토머스라는 이름으로 인해 다른 종교 세력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인도인들의 충고로 힌두교와 이슬람교 식 이름이 합쳐진 '람 모하마드 토머스'라는 기이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람이 만난 이슬람 계 소년인 살림이 힌두교와 이슬람교 신도들의 갈등으로 가족을 잃은 사례 등은 인도의 종교 갈등이 빚어낸 비극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영화에서도 묘사되었지만 어린 두 소년이 어린 아이들을 불구로 만들어 앵벌이를 시키는 조직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나 돈이 없는 가난한 현실에서 좌절하고 분노하여 자신의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당장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범죄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인도 하류층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다.
책에서 묘사된 람의 이야기에는 단순히 그의 인생 경험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구한 인생에 관한 사연도 존재한다. 에피소드 중 일부분은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없지 않지만 인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테일러 대령의 에피소드를 통해 저자는 인도에서 사는 백인 외교관의 이중성을 풍자하며, 인도의 사업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프라카슈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을 희생하며 얻은 자신의 부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내면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전쟁에 참여했다는 한 상이군인의 에피소드를 통해 명예에 집착하는 한 인간을 묘사하며, 한 여배우의 삶을 통해 화려한 명성을 가졌던 외면의 모습과 달리 사랑을 얻고자 스스로를 고통으로 내몬 한 여인의 안타까운 삶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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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제를 맞추게 된 람의 사연을 통해 책은 퀴즈쇼에 참가한 그의 숨겨진 목적을 드러낸다. 퀴즈의 사회자인 프렘 쿠마르에게 원한이 있던 람은 퀴즈쇼에서 그를 죽일 기회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람의 여주인이었던 닐리마 쿠마리를 등쳐먹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람이 사랑하던 니타를 가혹하게 괴롭힌 프렘을 용서할 수 없었던 람은 휴식시간 동안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사이를 틈타 그를 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겁을 먹은 프렘을 바라본 람은 사람을 죽인다는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그에 대한 복수를 포기한다. 목숨을 구원받은 프렘은 그에게 문제의 결정적인 힌트를 남겨준다. 결국 람은 피의 복수를 포기한 댓가로 거액의 돈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은 영화와 달리 람이 퀴즈쇼에서 정답을 맞히는 과정이 단지 운명이 아닌 그가 살아온 인생의 선택에 대한 정당한 댓가였음을 묘사한다. 총 13문제 중 대다수는 인생에서 배운 경험을 통해 정답을 맞추지만, 일부 문제는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리볼버를 발명한 사람의 이름을 맞추는 퀴즈를 맞출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차에서 다른 가족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세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을 맞추는 문제는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문제였지만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한 남자에게 돈을 준 과거의 선의 덕분에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게 된다. 비록 사랑하는 연인을 구출하지 못한 람에게 있어 그 때의 기억은 자신에게 가장 비참한 순간이었지만, 그의 선의는 퀴즈쇼를 통해 보상을 받은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변호사의 정체이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람을 도와주러 온 것이 기적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으로 고통받는 구디야를 도와주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를 계단에서 밀어버린 람은 그 때부터 범죄자처럼 방랑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때의 행동은 람과 구디야 모두를 구원한다. 더 이상 가정 폭력에 시달리지 않은 덕택에 그녀는 변호사가 될 수 있었으며, 곤경에 처한 람을 도와주기 위해 그를 찾아온 것이다. 어린 시절의 행동으로 람은 평생을 방랑자로서 살게 되었지만 결국 그 행동은 곤경에 처한 자신을 구원하는 보은으로 돌아온다.
람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갈림길이 있을 때마다 마치 운명을 기대듯이 자신이 평소에 들고 있던 행운의 동전을 던져 한 가지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행운의 동전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람은 여태껏 살아온 자신의 행동이 운명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낸다. 결국 작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비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비록 자신이 힘겨운 처지에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베푼다면 그 댓가로 커다란 성공을 보상받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책은 영화와 달리 람이 퀴즈쇼에서 정답을 맞히는 과정이 단지 운명이 아닌 그가 살아온 인생의 선택에 대한 정당한 댓가였음을 묘사한다. 총 13문제 중 대다수는 인생에서 배운 경험을 통해 정답을 맞추지만, 일부 문제는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리볼버를 발명한 사람의 이름을 맞추는 퀴즈를 맞출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차에서 다른 가족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세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을 맞추는 문제는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문제였지만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한 남자에게 돈을 준 과거의 선의 덕분에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게 된다. 비록 사랑하는 연인을 구출하지 못한 람에게 있어 그 때의 기억은 자신에게 가장 비참한 순간이었지만, 그의 선의는 퀴즈쇼를 통해 보상을 받은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변호사의 정체이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람을 도와주러 온 것이 기적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으로 고통받는 구디야를 도와주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를 계단에서 밀어버린 람은 그 때부터 범죄자처럼 방랑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때의 행동은 람과 구디야 모두를 구원한다. 더 이상 가정 폭력에 시달리지 않은 덕택에 그녀는 변호사가 될 수 있었으며, 곤경에 처한 람을 도와주기 위해 그를 찾아온 것이다. 어린 시절의 행동으로 람은 평생을 방랑자로서 살게 되었지만 결국 그 행동은 곤경에 처한 자신을 구원하는 보은으로 돌아온다.
람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갈림길이 있을 때마다 마치 운명을 기대듯이 자신이 평소에 들고 있던 행운의 동전을 던져 한 가지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행운의 동전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람은 여태껏 살아온 자신의 행동이 운명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낸다. 결국 작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비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비록 자신이 힘겨운 처지에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베푼다면 그 댓가로 커다란 성공을 보상받을 것이라고 말이다.
"동전이 운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이 동전을 보십시오"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일 루피짜리 동전을 꺼내 스미타에게 건네줬다.
스미타는 동전을 받아들고 살짝 위로 튕겼다가 다시 한번 튕겼다.
"아니... 양쪽 모두 앞면이군요!"
"그렇습니다. 그게 내 행운의 동전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말했듯이 운은 그 동전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스미타에게 동전을 받아 하늘 높이 던졌다. 동전이 위로, 위로 올라가 푸른 하늘에서 반짝거렸다. 그리고 바다에 떨어져 깊이, 깊이 가라앉았다.
"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
"이젠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p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