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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아쉬람 Water> _ 인도 영화의 힘, 빛나는 배우들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하는 '아카데미 필름 페스티벌'. 일반 개봉관에서는 보기 어려운 영화를 특별한 기획으로 마련하는 영화제는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뭔가 다른 것, 좀 발칙한 것, 뭔가 문제의식을 던지는 영화를 만날 것 같은 기대 때문이다.
대체로 포스터만 보고 영화를 고르는 내게<아쉬람> 포스터가 끌렸다. 왠지 몽환적이면서도 도발적일 것 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포스터와 달라서 더 좋은 영화

영화는 포스터의 분위기와 달랐다. 달라서 좋았다. 포스터에서 눈치 채지 못한 이야기들이 영화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첫 장면부터 가슴을 '쿵' 하고 건드리는 강 위의 풍경, 건드려진 가슴을 흔드는 인도의 음악. 저리게 아픈 이야기를 감독은 오버 하지 않고 그려나갔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받아야 할 존중. 허나 아주 기본적인 것 마저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은 '아쉬람'이라 불리는 곳에 모여 산다. 고통스럽다고 말하기에도 부족한 상실과 좌절, 그 사이를 별스럽지 않게 통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순간 순간 아름답게 번득인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사는 사람들이 <아쉬람> 안에 있었다. 사는 모습 자체로 보는 사람을 뭉클하게 했다.



아쉬람을 유지하는 3가지 그늘

아쉬람(ashram)의 본 뜻은 힌두교도들이 머물며 수행하는 사원을 뜻하는 말이지만, 영화 속 실체는 20세기 인도에서 과부를 수용하는 시설을 말한다. 종교와 율법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아쉬람에 수용된 과부들에게는 어떤 경제,사회,정치, 인권, 공동체적 권리도 용납되지 않는다. 사회 안에 있으나 사회에는 속하지 않는 버림 받은 사람들의 거주지다.
찬란한 역사에 숨어서 이어져 온 빌어먹을 역사가 탄생시킨 아쉬람은 완강한 힘을 바탕으로 유지된다. 날 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사람까지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던 권력, 권력이 만든 엄혹한 규율을 유지할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절대 공포의 종교, 그리고 먹을 입 하나 덜기 위해서 몸뚱이를 굴려도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가난 이렇게 세가지 그늘이다.
때문에 아쉬람은 힌두교에 바탕을 둔 인도와 같은 나라에만 고유한 것이지만, 아쉬람을 만들고 유지하는 그늘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아쉬람의 모습과 우리가 사는 현재를 비교하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한 사회인 우리 사회 안에도 상대적인 아쉬람이 있을 수 있다. 무언가 선택할 겨를도 없이
사회에서 규정되고 내몰려진 사람들이 소수라도 있는 한 아쉬람을 끌어안고 사는 사회를 맘껏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쉬람을 무너뜨리는 힘


영화 <아쉬람>은 배경 그대로 무겁지만, 동시에 희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왜?" 하며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적은 수의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질문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돌보게 하고, 내리는 비와 공기와 기도를 새삼스런 시선으로 보게 한다.


하루 하루 다를 것 없는 생활이지만, 눈에 띄지 않게 달라져가는 사람들은 달팽이 만큼이나 느린 속도로 생활 안에서 변화된 교감을 나눈다. 음식을 하고, 빨래를 하고, 걸레질을 하고, 물을 긷는 일상에 자그마한 파동이 일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민이 시작된다. 다른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눈길, 작은 노동으로 표현되는 연민은 끈끈한 우정과 의리를 만든다. 당장의 해법은 없어 보이지만 물 깊은 곳에서 조금씩 일렁이며 올라오는 희망을 영화는 충실하게 보여준다.


인도 영화의 힘, 빛나는 배우들

영화를 만드는 힘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미디어의 기술력이 영화의 완성도와 흥행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된지 오래다. 돌발적인 상상력, 기습적인 장면 전개가 있어줘야 볼만한 영화로 인정 받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러티브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센세이션한 영화일지라도 매력이 없다. <아쉬람>은 센세이션 하지는 않지만 힘이 있는 영화다. 그 이유를 작가 정신에서 찾는다. 작가가 반드시 말하려는 것이 보이는 영화다.
예민한 종교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촬영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작가가 말하려는 바는 빈 곳 없이 채워진 듯 하다. 특히 쭈이야를 연기한 배우들과 처음부터 아쉬람에 살고 있었던 것처럼 사실적인 배우들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진한 삶의 냄새를 풍겼다. 나라도 문화도 다르지만 내 언니들, 내 이모, 내 할머니를 보는듯 가슴 저리게 했다.
잘 짜여진 내러티브와 빼어난 배우들, 가사는 알 수 없지만, 영상처럼 흐르는 음악들. 영화의 구성요소 어느 하나 소홀히 다루지 않으면서 빼어난 작품을 만들어내는 감독을 보면서 인도 영화의 힘을 새삼 느낀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어린 배우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계속될 어린 배우가 연기한 쭈이야의 삶을 생각해본다. 아직도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겹쳐진다. 자신의 존재를 부끄럽게 여기며 살아갈 장애인, 성소수자, 절망한 실업자, 버려진 아이들과 어른들,... 명확하게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실제 사회 속에는 이름도 존재감도 없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 안에도 <아쉬람>은 있다.
영화 <아쉬람>이 조명하듯 존재 안에 갇힌 아름다움을 우리도 꺼내어 보면 좋겠다. 2005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아쉬람>은 계속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