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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허트로커] 전쟁에 중독된 이들


 영화는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 (The rush of battle is often a potent and lethal addiction, for war is a drug)" 라는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그 이후부터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임무 수행중인 폭발물 제거반 EOD의 모습이다. 이들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팀장을 잃게 되었는데, 이들 팀에 제임스라는 팀장이 새롭게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독단적이고 제멋대로인 행동은 팀원들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들고, 때로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제멋대로인 성격과는 달리 제임스는 폭탄 837개를 해체한 베테랑이었고, 영화는 이들이 폭탄 해제 임무를 맡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간들의 모습에 집중 조명한다.

 영화 속에서 전쟁을 조명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전쟁 속에서 그것을 겪어야만 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고,  총을 쏴야만 하는 군인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서 영화를 그려낼 수도 있다. 누구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달라지게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전쟁에 피해받는 민간인들'의 모습을 그려내기에 효과적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전쟁 속에 싹트는 전우애'라든지 '전쟁 속에서 함몰되어 가는 인간성과 회복'등을 그려내기에 효과적이다. 또한 이러한 방법 외에도 전쟁을 조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로 들어서, 앞서 말했던 '전쟁을 통한 이권 싸움'을 그려낼 수도 있고, 이라크 전쟁을 다룬 이전의 영화들이 많이 사용했던 '전쟁을 통한 정치적인 욕망'을  그려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것이 포함된 것이 바로 '전쟁'인 것이다.


여기서 전쟁 영화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부분이 결정된다. 그것은 바로 관객들이 '전쟁의 피해자인 주인공(민간인이든 피해자이든 상관 없이)'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해주거나, 영화의 메세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허트 로커>는 상당한 효과를 거둔다. 그 이유는 바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척이나 단순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오프닝에 등장했던 '전쟁 중독'에 대해서 다룬다. 영화의 주인공인 제임스는 전쟁에 중독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는 베테랑임과 동시에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낸다. 그 과정이 비록 과격하거나 무모할지라도 그는 직접 전쟁터로 들어가서 자신의 손으로 폭탄 해체를 해낸다. 이미 그에게 전쟁은 일상이 되어버림과 동시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해체해야 하는 폭탄이 터질 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더이상 제임스에게 '위기 상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렇게 일종의 괴물이 된 제임스는 전쟁에 중독된 가운데에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디비디를 팔던 이라크 소년 베컴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바로 그것인데, 인간 폭탄으로 인해 죽은 베컴의 모습에서 분노하는 제임스의 모습은 전쟁 속에서 보아왔던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를 폭탄 충격으로부터 지켜주었던 방탄복을 집어 던진 채 맨몸으로 총을 든 채 이라크의 가정집으로 향하게 되는 제임스의 모습에는 '분노와 휴머니즘'아 서려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임스가 이 사건을 계기로 감상적인 인간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에게 베컴이라는 소년의 죽음은 그에게도 약간 인간성이 존재함을 알려주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제임스가 그 집에 도착해서 만난 사람은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서 분노하는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이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명령을 받고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채 오랫동안 살아온 제임스는 이미 전쟁에 중독되어 버려서 정작 편안한 곳인 집으로 돌아가서도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예로 제임스가 돌아온 후 마트에 가서 시리얼을 고르는 장면을 들 수 있는데, 그는 극히 평범한 일들 중 하나인 '시리얼 고르기'라는 일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너무나도 많은 시리얼들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하는 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습이다. 전쟁터에서는 언제나 '주어지는 음식'을 먹으면 되었는데, 정작 자신이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잘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제임스는 결국 전쟁터로 다시 돌아간다. 전쟁터만이 그는 심리적인 안정을 느낄 수 있고 삶의 진정한 쾌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들, 또는 정상적인 인물인 샌본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영화 <허트 로커>는 제임스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라크 전쟁이 아닌 인간과 전쟁 그 자체에 대해서 조명한다. 전쟁 속에서의 불안한 내면 감정이 핸드 헬딩 기법을 통해서 펼쳐지고, 전쟁 속에서 안정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관찰자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준다. 아직까지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저편에서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전쟁은 우리와 함께 생존해나갈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말 안해도 다들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