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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대부 (The Godfather, 1972)

코폴라 감독의 대부 시리즈는 비디오를 통해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화질 개선을 한 점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 명작의 감동을 체험할 보기 드문 기회라는 점에 이끌려 영화를 보게 되었다. 디지털 작업을 통해 개선된 화면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에 전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작품 자체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3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명불허전의 작품답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며, 비디오를 보면서 느끼지 못했던 사운드 효과를 통해 인물의 내면 갈등을 보다 깊게 체험할 수 있었다.

'대부'의 첫 장면 시퀀스에서 점점 줌아웃 되면서 드러나는 돈 꼴레오네의 실루엣의 모습은 지금 봐도 놀라운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적 가치를 믿고 살아가던 장의사가 개인적 복수를 위해 결국 이탈리아 마피아를 찾아가 대부에게 충성의 맹세를 하는 장면은 암흑의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권력의 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오후에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어두운 방 안에서 대부에게 충성의 맹세를 하는 남성들의 모습은 대칭적인 효과를 드러낸다. 시끌벅적한 결혼식에 등장해 가족적 가치로 이루어진 거대한 패밀리의 중심인물인 아버지의 밝은 모습을 보이지만 내부에선 의뢰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위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제시할 것을 명령하는 보스의 냉혹한 모습을 보이는 말론 브랜도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이후 영화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들을 통해 마피아의 냉혹하고 잔인한 힘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어떤 요구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고집스런 영화 제작자에게 벌어진 아침 날의 충격은 소름이 끼친다.

이처럼 꼴레오네 패밀리의 거대한 힘을 보여주던 영화는 새로운 사업 분야를 두고 갈등하는 마피아 세계를 묘사한다. 마피아 패밀리들에게 마약이란 새로운 돈줄이 등장하면서 균형을 이루던 마피아의 세계는 깨지고 폭력과 살육으로 넘치는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터키계 미국인 솔론조가 마약을 통해 사업 제의를 해오자 돈 꼴레오네는 자신만의 사업 철학을 들어 사업 제안을 거절한다. 순간의 이익에 눈이 멀기보다는 합법적인 조직화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려던 돈 꼴레오네의 사업 철학은 자연히 다른 패밀리들과 물리적 충돌을 초래하고 만다. '대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 조직의 주요 인물을 처리하려는 마피아들의 모습을 통해 끔찍한 폭력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상대방을 안심시킨 후 기습적으로 핵심인물을 공격해 고통스럽게 살해하는 마피아들의 냉혹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돈 꼴레오네의 암살 계획이 실패한 후 꼴레오네 패밀리는 커다란 위기를 겪지만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후계자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대부'는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던 참전 군인 출신 청년 마이클이 점점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점점 폭력의 중심인 대부의 승계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 나간다. 돈 꼴레오네 옆에서 그의 장남 소니와 전임 변호사 톰이 보좌하는 동안 셋째 아들 마이클은 그의 애인 케이와 함께 사랑을 속삭이며 여동생의 결혼식을 지켜본다. 하지만 아버지의 총격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된 마이클은 그의 형 소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전화 부스에 들어가 안부를 묻는다. 이 장면에서 마이클과 케이는 잠시 안과 밖 사이로 갈라지게 되는데, 이 장면 이후 그들은 점점 물리적인 거리감이 생기면서 점점 멀어져 간다. 아버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병원 입구에서 총 한 자루 없이 기지를 발휘해 서 있던 마이클의 대범한 모습은 그가 마피아 보스로서의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소니와 톰이 향후 계획을 두고 갈등하는 동안 중간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이클은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점점 패밀리의 사업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평범한 청년이었던 마이클은 스스로 총을 뽑아들어 폭력으로 얼룩진 마피아의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된다. 아버지를 살해하려던 솔론조 그리고 자신을 폭행한 부패 경찰 맥클루스키를 직접 살해한 마이클은 이 사건을 계기로 케이와 완전히 멀어진다. 이탈리아에서의 망명 생활 그리고 그 곳에서 겪은 사랑이 비극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마이클의 파란만장한 삶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끝없는 마피아 간의 갈등은 자식을 잃는 비극으로 연결된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홀로 차를 몰다가 상대편 마피아의 함정에 걸려 살해당하는 소니의 죽음 장면은 마피아들의 잔인한 처형을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돈 꼴레오네가 자식의 죽음을 맞이한 후 장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달라는 부분은 그에 대한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마피아 간의 회합을 통해 극적인 타결을 맺은 돈 꼴레오네의 모습은 더 이상 피를 보기 싫어하는 아버지의 인간적인 심정이 드러나지만 차를 타고 난 뒤 사건의 배후를 눈치채는 모습은 산전수전 겪은 마피아의 냉혹한 판단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점점 격변해가는 어둠의 사회에서 퇴장하는 쓸쓸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후계자가 될 마이클에게 너만은 정치인같은 사람이 되길 바랬다는 돈 꼴레오네의 고백은 자신의 책임과 고뇌를 물려받아야 할 마이클에 대한 안타까움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돈 꼴레오네의 죽음으로 그의 자리를 계승하게 된 마이클은 상대방이 방심한 틈을 타 대대적인 복수와 숙청을 감행한다. 마이클이 조카의 대부가 되기로 결심한 날, 엄숙한 성당에서 벌어지는 세례식 사이에 교차 편집된 복수의 과정은 엄숙한 음악에 맞게 전율을 느끼게 한다. 꼴레오네 파 부하들의 인정사정없는 총격에 잔인하게 살해되는 반대파 마피아들의 모습도 충격적이지만 배신자를 처벌하는 과정 역시 냉혹하기 그지 없다. 특히 코니의 남편인 카를로를 안심시킨 뒤 벌어지는 숙청 장면은 마이클의 냉혹한 심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남편을 잃은 코니의 울부짖음을 무시하는 마이클에게 진상을 알고 싶어하는 케이는 점점 냉혈해진 그의 모습에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충성을 맹세하는 부하들의 키스를 받는 마이클의 모습을 바라보는 케이의 당혹스런 표정을 담아낸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 사이에 회복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암울한 엔딩을 묘사한다.

오랫만에 다시 본 영화였지만 여전히 '대부'는 내게 엄청난 충격과 전율을 안겨주는 작품이었다. 가정적인 아버지이지만 자신의 권력을 위해 상대방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냉혹한 대부를 연기한 말론 브랜도의 디테일한 연기, 다혈질적이고 마초적인 남성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 인간적인 결점이 매력적인 큰 형 소니를 연기한 제임스 칸과 냉혈하고 침착한 변호사 톰 하겐 역의 로버트 듀발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알 파치노의 카리스마틱한 모습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순진하고 착해 보이는 참전 군인이었던 한 남자가 점점 폭력과 살육을 체험하며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는 순간 미소는 사라지고 냉정함과 침묵이 자리잡은 모습은 '대부'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알 파치노의 모습을 보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스크린 속에서 점점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각인시키는 그의 연기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