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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숨은 요새의 세 악인 (隠し砦の三悪人, 1958)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이란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다른 영화인 '7인의 사무라이'처럼 특정 숫자의 인물을 언급한 제목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특히 사무라이와 대립되는 악인이란 존재를 제목에 등장시킴으로써 과연 악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함이 절로 생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세 명의 인물은 악인이라기 보다는 도망자라고 보는게 더 가깝다. '좋은 놈, 나쁜 놈, 추악한 놈'이란 영화의 세 주인공이 제목과 달리 이득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하는 인물인 것처럼, '숨은 요새의 세 악인'도 두 명의 친구와 한 명의 무사가 각자의 목적에 따라 협력하고 배신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나가면서 이들의 여정을 코믹하면서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한다.

영화는 패전 후 정처없는 방랑을 하는 두 병사의 뒷모습을 등장시키며 시작한다. 점점 카메라가 멀어지면서 그들의 윤곽이 등장하면서 두 인물을 묘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인데, 그야말로 힘없는 몰골로 방랑하면서도 서로의 잘못이라고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타헤이와 마타시치는 말다툼 후 서로 갈라져 살 길을 찾게 되는데, 운도 지지리 없는 두 병사는 야마나 가문의 병사들에게 포로 신세가 되어 해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한다. 패망한 아키즈키 성주가 숨겨둔 금괴를 찾기 위해 강제 노동에 동원된 두 병사는 반란으로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정처없는 방랑을 하게 된다. 삼엄한 경계를 피하기 위해 두 사람은 야마나를 가로질러 하야카와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산에서 불을 피우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타헤이와 마타시치는 나뭇가지에 숨겨진 금을 발견하면서 그것이 아키즈키 가문이 숨겨둔 군자금임을 알게 된다. 금괴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산을 수색하던 두 사람은 자신들이 발견한 금을 두고 다시 티격태격 한다. 이 때 산 위로 그들을 지켜보는 의문의 남자가 등장하면서 두 사람은 말다툼을 멈추고 남자를 경계한다. 덥수룩한 수염과 강렬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노려보는 미후네 도시로의 카리스마있는 외모는 왜소하고 힘없어 보이는 두 인물의 모습과 대비되어 자연히 그에게 굴복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두 남자의 계획을 들은 의문의 남자는 껄껄 웃더니 그들이 그토록 찾던 군자금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들을 자신이 살고 있는 요새로 데리고 간다.

사실 아키즈키 성주의 신하인 마카베는 유일한 후계자인 유키 공주를 요새로 피신시켜 재기를 노리던 도중 어리버리한 두 병사를 이용해 국경을 넘기로 결심한다. 마카베의 이름을 들은 두 사람은 실제 장군의 이름을 사칭한다고 그를 비웃는다. 이런 두 병사의 어리숙함을 이용해 마카베는 유키 공주를 벙어리 행새를 하도록 함으로써 그녀를 두 악인으로부터 보호한다. 타헤이와 마타시치는 황금 때문에 마카베에 의존하지만 한편으론 그의 안하무인한 태도에 분노를 터트리면서 황금을 빼돌릴 궁리를 짜낸다. 이처럼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적의 추격을 피하고 국경을 넘기 위해 협력하고 배신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나간다.

'7인의 사무라이'가 각각의 사무라이들의 개성있는 성격 때문에 흥미롭게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역시 개성어린 인물들 덕분에 영화의 흥미를 더해준다. 타헤이와 마타시치는 일이 안풀리면 서로의 탓을 하며 화를 내고 분노하지만 마카베가 방심한 틈이 있으면 어느새 함께 협력하면서 황금을 갈취할 궁리를 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두 인물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한다. 황금을 발견하면 서로 내 것이다라고 싸우지만 재수없게 적들에게 붙잡힐 때는 이제 우리 헤어지지 말자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정말 재미있다. 한편 미후네 도시로가 연기한 마카베라는 캐릭터는 보통 기존 체재에 대해 반항적인 이미지가 강한 기존 영화들과 달리 여성 주군에 대한 충성을 다하는 충직한 인물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강렬한 눈빛과 커다란 음성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고 창을 이용한 액션 장면에서 보여지는 카리스마가 인상적이다. 또한 유키 공주의 경우 공주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달리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며, 고성에 가까운 강렬한 목소리를 통해 공주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중 최초로 시네마스코프로 촬영된 작품답게 거대한 스케일의 촬영장면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으로 구성된 점도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의 매력이다. 장식된 깃발을 착용한 대규모의 무장 병사들이 일행들을 추적하는 장면들은 '카게무샤'나 '란'에서 병사들의 일사불란한 이동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특히 산에서 적들의 추격을 받을 때 양 방향에서 등장하는 엑스트라들의 기민한 움직임이 추적당하는 인물들의 압박감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한편 미후네 도시로가 말을 타고 적들을 추적하는 장면은 말을 타고 움직일 때 느낄 수 있는 속도감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정도로 박진감이 넘친다. 또한 적의 진영에서 만난 라이벌 타도코로 효에와 창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실제 결투를 연상시킬 정도로 힘있고 박력감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