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art :: <페르소나>를 빛낸 명장면 베스트3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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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를 빛낸 명장면 베스트3 !

영화사에 교과서로 남아있으면서도 모방 불가능한

베리만 연출의 정수

 

잉마르 베리만 감독 서거 6주기에 즈음하여 개봉을 앞두고 있는 그의 일생의 역작 <페르소나>는 영화라는 예술장르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담긴 자기반영적 영화의 정수이면서, 연극, 사진, 심리학, 철학 등 동시대의 인문사회학계, 예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작품이다. 베리만 감독 자신이 스스로의 최고작으로 꼽은 작품이기도 하다. 관객들에게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영화적 추억을 선사할 명장면이 가득한, 명실공히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다.

 

“영화사상 가장 숭배된 이미지의 우상,

황홀하게 아름다운 영화예술의 표본”

- 더 뉴요커

 

85분 러닝타임의 매분 매초가 전설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작품에서 가장 훌륭한 명장면을 꼽는다는 것은, 이 영화를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수없이 다른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페르소나>의 명장면들 중, 두 주인공 엘리자벳과 알마의 관계를 나타내는 장면 중 인상적인 세 장면을 선정해 보았다

 

 

엘리자벳 vs 알마 # 1 정신분석학자의 진료실처럼

 

극단적인 멜로드라마, 외설에 이르는 에로티시즘

 

 

 

심리학적 통찰이 돋보이는 연출을 통해 베리만이 창조하는 긴장과 상상의 극치는 알마가 자신이 겪은 해변에서의 난교의 경험을 엘리자벳에게 털어놓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시각적으로 성적인 정보는 전혀 없다. 알마가 독백으로 내뱉는 말만으로 베리만 특유의 극단적인 멜로드라마, 외설에 이르는 에로티시즘이 관객을 꼼짝없이 긴장으로 몰아넣는 명장면. 알마는 이미 상당히 취한 상태이고, 알마가 느슨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저만치 침대 위에 앉은 엘리자벳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황은 마치 정신분석학자의 진료실 같은 구도를 이룬다. 평소 배우-관객, 환자-간호사의 가면을 쓰고 있게 되는 엘리자벳과 알마의 구도가 역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엘리자벳 vs 알마 # 2  뱀파이어와 그의 희생물처럼

 

타자의 생명력을 탐하는 예술가의 이기적 자아

 

 

 

<페르소나>를 둘러싼 여러 겹의 감상의 층위 중 현대적 호러물로 읽는 시선이 빠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엘리자벳과 알마의 관계가 마치 뱀파이어와 그의 희생물과도 같은 구도를 이루는 장면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취해서 잠든 알마의 방에는 온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가 가득 차있고 역시 근원을 알수 없는 뱃고동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가운데 유령처럼 엘리자벳이 나타난다.  잠든 알마를 살피며 방을 거니는 엘리자벳. 알마가 기척을 느끼고 일어나 엘리자벳의 어깨에 기대는 가벼운 포옹을 한 후, 영화사에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두 여인의 정면 응시 장면으로 이어진다. 어깨를 감싸고 머리칼을 쓰다듬는 두 여인의 모습은 서로 목을 교차하는 컷으로 끝나는데, 에로틱한 교감과 함께 기꺼이 목을 드러내는 알마의 모습은 뱀파이어와 그 희생물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서는 알마가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고 엘리자벳이 마치 탐하듯 그 피를 빨아들이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엘리자벳 vs 알마 # 3  영혼의 샴쌍둥이처럼

 

나는 엘리자벳 보글러가 아니에요,

당신이 엘리자벳 보글러에요

 

 

 

영화가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베리만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내러티브를 파괴하면서 두 주인공 마음 속의 어두운 심연 더욱 가까운 곳에 카메라를 고정시킨다. 엘리자벳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아들을 버렸는가를 말하는 내용의 같은 대사가 알마의 목소리로 두 번 반복되는데, 베리만의 카메라는 한 번은 엘리자벳의 얼굴을, 두번째는 알마를 클로즈업한다. 알마는 더 이상 이 말이 누구의 말인지 알 수 없다. 급기야는, ‘나는 엘리자벳 보글러가 아니에요, 당신이 엘리자벳 보글러에요!’하고 마치 가위눌린 꿈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처럼 몸부림치게 된다. 눈썰미 좋은 관객들은 이미 두 여배우의 얼굴에 각각 반대쪽에 음영이 드리워지는 연출을 눈치챘을 것이다. 마치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한 장치이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두 여인의 얼굴(자아)은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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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수잔 손탁은 이 영화에서 엘리자벳과 알마는 둘다 각자의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엘리자벳의 가면은 그녀의 침묵이며, 알마의 가면은 그녀의 건강’, ‘낙관적인 성격’, 약혼과 안정된 직업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정상적인 인생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며 그 두 가면은 모두 금이 가고 만다.

 

“<페르소나>의 엔딩에서 가면과 인간, 말과 침묵, 배우와 영혼(알마-alma는 라틴어로 soul, 영혼의 의미)’은 여전히 둘로 나눠져 있다. 그러나 어떤 기생관계에 의해, 혹은 뱀파이어와도 같은 관계에 의해, 그녀들은 서로 얽혀 있다

- 수잔 손탁

 

최근 <비포 미드나잇>에 출연한 줄리 델피는 “나는 베리만의 영화를 세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 휴머니티, 복잡함, 마술. 내가 가장 이끌리는 것은 그가 그려내는 여성의 초상이다.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듯한 감동을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페르소나>는 지금도 계속해서 영화인과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현재진행형의 레퍼런스, 움직이지 않는 기준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Posted by cineart / 영화 @ theater / 2013.07.2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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