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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천국의 가장자리 (Auf Der Anderen Seit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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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씨네휴 프로그램 상영작들 가운데 가장 먼저 <천국의 가장자리>를 봤습니다. <미치고 싶을 때>(2004)를 만들었던 파티 아킨(Fatih Akin) 감독의 최신작이 지난 깐느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볼 수 있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씨네휴 프로그램이 올해로 벌써 4년째더군요. 작품성과 완성도가 훌륭한 영화들인데 인지도가 낮아서 기껏해야 단관 개봉이나 소규모로 밖에는 상영할 수가 없는 작은 영화들을 모아 일정 기간 동안 '집단 프리미어 상영'을 하는 기획전입니다. 이 가운데 관객 호응도가 좋은 영화는 프린트를 몇 벌 더 만들어서 정식 개봉을 하기도 하는 것이죠. 상영관은 적은데 보여주고 또 보고 싶은 영화들이 많은 상황에서 개발해낸 정말 좋은 상영 방식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란 영화제 형식이 또 있기는 하지만 상영 횟수가 워낙 적어서 알면서도 가볼 수가 없는 경우가 많은 반면 씨네휴 프로그램은 마음만 먹으면 보고 싶은 작품을 다 찾아볼 수 있도록 여유있게 상영 시간표를 운영하고 있어서 참 좋습니다. <천국의 가장자리>는 감독의 전작도 개봉한 바가 있고 깐느에서의 수상 이력도 있으니 씨네휴 프로그램이 끝나면 조만간 정식 개봉을 할 수 있게될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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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이 터키계 독일인인 파티 아킨 감독은 <미치고 싶을 때>에서 독일 내 터키 이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천국의 가장자리>에서는 좀 더 많은 등장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터키 사람인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그리고 독일인 어머니와 딸. 어떤 이들은 꼭 만나고 싶어하지만 만나지 못하고 또 어떤 이들은 불의의 사고로 죽기도 하고, 그리고 남겨진 이들은 새로운 가족을 이루기도 합니다.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분되어 각 에피소드마다 소제목까지 붙여져 있으나 각 에피소드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련성은 다른 영화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곤잘레스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구성 방식은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각자의 에피소드를 진행시키다가 영화 마지막에 하나로 묶여지며 삶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그 자체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된 것인 반면 <천국의 가장자리>는 시간 순서를 잠시 되돌아 가는 정도라서 느낌상 하나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서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천국의 가장자리>는 부모와 자식 세대의 차이, 그리고 독일과 터키 민족 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작품입니다. 그 차이를 형상화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또 서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6명의 등장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의 7 ~ 80년대 상황(또는 최근의 상황)을 보는 듯한 오랜 독재 체제와 무장 저항 단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파티 아킨 감독의 입장은 어느 한쪽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지지하거나 비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현재의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각 인물들과 서로 간의 관계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미치고 싶을 때>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내용을 선보이다가도 영화 마지막에는 인물들의 성장과 변화에 방점을 찍었던 파티 아킨 감독은 <천국의 가장자리>에서는 좀 더 희망적이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약간 보수적으로까지 보여지는 결말을 제시합니다. 터키계 이민 2세로 함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가르치는 네예트 악수(바키 바브렉)가 강의실에서 인용했던 괴테의 구절들도 그렇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고 먼 바닷가로 찾아가 기다리는 마지막 뒷모습에서 관계의 단절 보다는 화해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중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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