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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CinDi 2008] 청계천의 개 (A Cheonggyecheon Dog,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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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기다려왔던 김경묵 감독의 영화 <청계천의 개>를 CinDi 2008(시네마디지털 서울 2008) 영화제를 통해 봤습니다. 감독의 전작 <얼굴없는 것들>(2005)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필름2.0에 실린 김영진 평론가의 글을 읽고 소위 영화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적극 지지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젊은 작가들의 독립영화가 그들만의 잔치를 넘어서 일반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똥칠을 해서라도 상영관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편이 낫지 않냐는 생각을 마침 하던 차에 <얼굴없는 것들>이라는 영화에 관한 소식은 단순한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 그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얼굴없는 것들>은 영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다른 말로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럼으로써 그 한계를 한번 더 넓혀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젊은 신인 작가가 과격한 작품을 통해 주목을 받게 된 과정에서 애초부터 전략적인 고려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어쨌든 <얼굴없는 것들> 정도의 작품이라면 불분명한 창작 의도의 정치적인 맥락에 상관 없이 그 결과값 만으로도 충분히 인정해줄 수 밖에 없지 않냐는 생각을 합니다.

<청계천의 개>는 본래 20분 분량의 단편으로 시작되었다가 촬영하는 과정에서 60분짜리 중편으로 확대되어 완성된 작품입니다. 사전 작업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갔다가 자칫 아예 엎어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애초부터 이런 식의 작업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매번 훌륭한 완성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일부 감독들은 그야말로 영화천재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자신이 영화천재라고 믿었다가 그걸 입증해내지 못한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을테지요) 김경묵 감독은 <청계천의 개>를 훌륭한 완성품으로 만들어 돌아왔습니다. 세트 촬영 부분을 위해 공개적인 후원인 모집을 했던 것이 작년 말이었는데 촬영을 완료한 이후 소식이 끊겼다가 이렇게 CinDi 2008의 경쟁 부문에 출품되어 드디어 첫 상영회를 갖게 되었네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김경묵 감독의 작품을 드디어 보게 된 터라 오프닝이 시작되기까지 저 나름대로의 긴장과 흥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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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되고 싶은 한 남자의 변신 욕망과 그에 따른 좌절감을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청계천의 개>는 영화의 소재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구성 방식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만 제외한다면 더이상 저예산의 한계를 핑계 삼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높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상영 후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서 김경묵 감독은 "내 취향과 달리 대중 영화의 호흡으로 편집하는 일이 아주 고역이었다"라고 밝혔지만 그랬던 덕분에 저와 같은 일반 관객이 보더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는 적당한 템포의 영화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초반부터 호흡이 참 느긋해서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봤는데 그것이 자신에게는 너무 급했다고 얘기하는 감독의 말에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거친 이미지와 사운드의 과잉을 보이면서도 또 어떤 장면에서는 왠만한 상업 영화들도 흉내내기 힘들 만큼 매끄러운 연출 감각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작품의 내용과 주제에 따라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은 다양할 수가 있겠지만 <청계천의 개>는 일반 관객들과의 취향 차이를 좁혀보고자 했던 연출자의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청계천의 개>는 영화의 정의와 그것이 소구되는 과정에 대해 묻는 형식 실험의 영화도 아니오 감독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에서만 끝나는 영화도 아닙니다. 서울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청계천이 제목에서부터 등장하고 있듯이 김경묵 감독의 영화는 이제 자기 자신과 영화 자체로부터 그 자신이 경험해온 세상 밖으로 시점 이동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영화가 의미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우문에 "관객에 따라 어떤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현답을 제시한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 주인공 남자의 트렌스 욕망은 한 개인의 체험으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청계천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꿔놓은 우리 시대의 욕망과 그 증후군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읽힐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폭포수 앞에 앉은 슬픈 인어의 모습이 담긴 액자로부터 시작해 다시 청계천 앞에 선 주인공의 모습이 담긴 액자로 끝나는 <청계천의 개>는 한 게이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욕망의 실체와 그 증상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너무 비관적인 전망만을 제시하는 작품이 되는 건가요? 소비를 통해 드디어 판타지가 실현되는 듯 하지만 결국 욕망의 해소는 폭력과 착취의 과정을 경유할 수 밖에 없다는 이 뼈아픈 통찰은 어쩔 수 없이 슬픈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ps. 아래는 <청계천의 개> 상영 이후에 있었던 감독 & 배우 GV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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