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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알레그로 논 트로포 (Allegro Non Tr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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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로 논 트로포>는 디즈니의 <판타지아>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클래식 음악의 선율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아름다운 색채와 형태로 표현한다는 점이 똑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독인 브루노 보제토가 어린 시절 본 <판타지아>에 감명을 받아 만든 작품이 <알레그로 논 트로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레그로 논 트로포>에 나오는 제작자는 할리우드에서 이런 영화가 또 있다는 전화를 받은 다음 분개하면서도 일단 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일단 보고 나면 이 영화가 <판타지아>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판타지아>가 아동용이라면 <알레그로 논 트로포>는 성인용이다. (아동용이 더 나쁜 것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알레그로 논 트로포>에는 <판타지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하고 풍자적인 요소들이 넘친다.

애니메이션은 흑백으로 찍힌 실사 장면에서 출발한다. 제작자는 대단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뚱뚱하고 폭력적인 지휘자와 손을 잡고 다른 이들을 착취한다. 거대한 공연장을 홀로 청소하는 여자, 감금당해 있다가 풀려난 애니메이터, 괴상하고 늙은 할머니들의 오케스트라단은 지시대로 일하지만 분위기는 계속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터가 오케스트라단의 연주에 맞춰 열심히 그려 나가는 창작품의 완성도는 높다. 투박하지만 독특하고 환상적인 그림체는 클래식 음악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이야기로 진행된다.

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판타지아>의 동화적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여자의 나체를 쫓는 늙은 목신을 그린 이야기(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로 시작된 애니메이션은 자신을 따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화가 나서 꾸미는 전쟁의 음모(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7번>), 화가 난 지휘자가 던진 콜라병에서 태어나는 이상한 생명체(라벨의 <볼레로>), 폐허가 된 거리 위에서 고양이가 보는 쓸쓸한 환상(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처럼 어둡고 기괴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풀밭에서 뒹구는 연인들 때문에 도망치는 벌(비발디의 <콘체르토>)이나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는 데 실패한 뱀(스트라빈스키의 <불새>)처럼 귀여운 캐릭터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브루노 보제토는 프랑스의 르네 랄루, 러시아의 유리 놀슈테인, 캐나다의 프레데릭 벡과 함께 세계 4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라고 한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자연스러운 결합과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사용처럼 다양한 표현 기법도 멋지지만, 그의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은연중에 나타나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다. 솟아오르는 높은 건물들과 그 안의 이기적인 인물들, 그리고 전쟁의 상흔처럼 보이는 파괴적이고 황량한 세계는 흡사 '괴물들이 사는 나라'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디즈니의 행복한 세계에서 벗어난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면 <알레그로 논 트로포>는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판타지아>에 찬사를 보내는 작품이기 때문에 영화의 끝은 해피엔딩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