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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텐텐 (転々, 2007)



그냥 오다기리 죠가 주연한 영화가 하나 또 나왔구나 그러고 있었는데 감독이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헤엄친다>(2005)의 미키 사토시라는 사실에 관람 의욕이 급상승하더군요. 등장 인물들이 도쿄 시내를 산책한다는 내용상 조금 심심할 수 밖에 없는 영화였지만 결국엔 관객들을 자신만의 분위기 속에 젖어들도록 만드는 데에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후지타 요시나가의 소설을 미키 사토시 감독이 직접 각색한 작품인데 원작은 아마도 젊은 주인공 후미야(오다기리 죠)의 1인칭 시점이었지 싶습니다. 도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작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에세이처럼 술술 써놓았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런 소설에서는 치밀한 구성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죠.

84만엔의 빚 문제로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주인공들의 과격한 만남이 이루어지지만 그 빚이 왜 생긴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늙은 주인공 후쿠하라(미우라 토모카즈)가 후미야에게 산책을 제안하게 되는 그 계기란 것도 사실은 현실성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물론 실재하는 엄연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러티브의 중심으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텐텐>은 두 남자가 며칠 동안 왜 도쿄를 산책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산책하고 있느냐를 훨씬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산책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둘이 나누게 되는 대화와 그 과정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들에 비하면 이들이 산책을 시작하게 된 이유나 다른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의 인과성 같은 것은 그저 적당히 둘러댈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식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여러 장소들은 아마도 실제로 존재하는 곳들이겠죠? 그렇다면 도쿄의 곳곳을 직접 산책을 해본 사람만이 그와 같은 장소들을 책으로 쓸 수 있었겠지요. '산책이란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듯 <텐텐>도 뚜렷한 목표를 정해두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영화처럼 보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의 가치를 발견해보는 정도라 할까요. 그리고 자식이 없었던 중년 남자와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던 청년이 유사 부자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아내/어머니와 딸/여동생까지 곁들여가며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장 일상적인 생활의 가치, 그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텐텐>에서의 산책은 결국 너무 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절대 틀린 말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 지점에서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를 잡고 발걸음을 멈춥니다.

당연한 얘기 또 하면 지겹거나 짜증이 나는 경우가 태반일텐데 <텐텐>은 그 당연한 이야기와 감정 속으로 부지불식간에 말려들게 되는 영화입니다. 이럴 수 있는 건 순전히 연출자가 잘 한 덕분이죠.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젊은 주인공은 좀 다른 배우가 했더라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오다기리 죠의 연기 앞에 다른 배우들을 떠올릴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텐텐>에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도 출연했던 조연들(이와마츠 료, 후세 에리, 마츠시게 유타카)이 다시 등장하여 주인공들과는 다른 공간에서 별도의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언듯 만담을 보고 있는 듯한 쏠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그외 키시베 잇토쿠, 아소 구미코 등 낯익은 배우들이 대사 한 마디 없는 카메오 출연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