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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The Fall, 2006)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타셈 싱 감독의 장편 데뷔작 <더 셀>(2000)이 개봉한 이후 완성되기까지 6년, 그리고 국내에서 정식 개봉이 되기까지 걸린 8년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두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작품입니다. 사실 후속작에 대한 소식이 너무 없어서 다시는 영화를 못만들게 된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그간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며 극강의 아름다움을 필름에 담아내느라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편의 영화란 시각적 이미지 하나만으로 충분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더 셀>이 숨막히게 아름다웠던 이유는 타인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 무슨 일을 당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과연 빠져나올 수는 있는 것인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음으로 인해 생기는 극도의 긴장감이 함께 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상상의 세계와 현실 세계, 때로는 영화 속 이야기와 관객들이 만나는 '긴장의 벽'을 자주 허물어버리면서 가벼운 웃음과 함께 비교적 이완된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이 전체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바 역시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비주얼이 굳이 필요했을까 싶은 정도랄까요. 어쩌면 내러티브의 상징성을 훨씬 압도해가면서까지 펼쳐보이는 시각적 이미지의 향연과 그로 인한 불균형이 바로 타셈 싱 감독 영화의 특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스크린을 장식하는 것은 두 명의 감독, 데이빗 핀처와 스파이크 존즈의 이름입니다. 두 사람은 이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작품이 완성된 이후에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배급자로서 나선 것이더군요. 그 의도와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이 영화가 두 사람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란 생각을 합니다. 사실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데이빗 핀처나 스파이크 존즈 급의 특별한 감식안을 갖고 있지 않은 누가 보더라도 그 시각적 이미지의 특별함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스케일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설마 저걸 다 돌아다니면서 찍었을까, 저런 건 당연히 합성이겠지 했던 장면들이 메이킹 필름이나 스틸컷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놀라움은 더욱 커질 따름입니다.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상상한 것, 그 이상을 보게 되리라'던 카피에 잘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실연의 상처로 자살을 시도했던 스턴트맨 로이(리 페이스)와 오렌지 농장에서 어머니의 일을 돕다 떨어져 팔을 다친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가 머리 속에서 상상할 수 있을 법한 그 이상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영화니까요. 그러나 이들이 현실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이 그다지 세밀하게 다뤄지지 않음으로 해서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휘둥그레지는 눈 만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아쉬운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여러 상징적인 요소들이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가며 조우하지만 그것들이 플롯으로 맞물려 작용하기 보다는 그저 시적인 이미지로만 남고 있으니 적절한 설명이나 극적인 줄거리를 요구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미흡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삶과 판타지, 또는 영화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얼마나 호소력있게 전달되고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타셈 싱 감독의 영화를 이번에도 꼭 봐야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더 셀>이 그랬던 것처럼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또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대단한 광경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화니까 DVD나 다른 방식으로도 또 볼 기회는 있을테지요. 상영관이 그리 많지 않아 평소에 잘 안가던 강남의 모 극장을 찾았다가 화면 상태가 좋지 않아 관람을 중단하고 10분만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말에 다시 다른 극장에서 관람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첫 관람을 제대로 하게 된 것에 크게 만족했습니다. 평소에는 AV를 크게 따지지 않는 편이지만 타셈 싱 감독의 영화 만큼은 제대로 봐야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과연 옳았습니다. 우리말 제목은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와 비슷하게 지어놓았지만 원제목은 간단하게 <The Fall>입니다. 그리고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