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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Daft Punk, 기계적이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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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트 펑크를 들으면 가끔씩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막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인간들이 기계의 에너지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는 장면이 떠오른다. 기계들의 세상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섬뜩함 같은 것이 대프트 펑크의 음악에서도 문득 느껴지기 때문이다. 분명 흥겨운 비트로 가득한 음악임에도 그런 기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대프트 펑크가 지닌 매력이 아닐까 싶다. 왠지 기계들이 춤을 춰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음악으로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다.


 
Daft Punk - Something About Us

 
이들의 ‘Something About Us’는 내가 손꼽는 몇 안 되는 감동적인 사랑 노래다. 보코더를 사용한 보컬에서 느껴지는 기계적인 분위기에도 이토록 농밀하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지금이 좋은 때인지, 내가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우리 둘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라며 “내 삶에서 그 무엇보다도 너를 원하다”고 말할 때, 사실 어느 유행가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무언가 진심이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인 것 같다. <매트릭스>처럼 과학과 문명의 발전으로 기계들이 지배하는, 인간의 감정이 지닌 가치는 사라진 시대에도 ‘사랑’이라는 감정만큼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다.
 


Daft Punk - Technologic

 
대프트 펑크가 지금의 위치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 신나는 비트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미래적 전망이랄까 그런 것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SF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 유명한 뮤직비디오 ‘Around the World’도 그렇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좋게 만들고 더 빨리 하고 더 우리를 강하게 하자”는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나 현대인의 온갖 기계적인 행동을 담은 ‘Technologic’이 전해주는 흥분은 그 흥겨운 음악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헬멧을 쓰고 나오는 그 모습에서도 이미 이들은 자기 음악의 정체성을 대중에게 알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Daft Punk - Harder Better Faster Stonger
 
그런데 얼마 전부터 TV 광고를 보다 보면 대프트 펑크를 연상케 하는 광고음악을 사용하는 광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대프트 펑크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만한 광고일 것이다. 대프트 펑크의 음악을 표절한 것인지, 아니면 모티프만 따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대프트 펑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그 광고음악의 얄팍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들이 보코더를 이용한 변조된 음성을 사용하고 반복되는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은 기계적인 느낌, 미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음악은 단지 이들 음악의 ‘형식’만을 가지고 와서 별 생각 없이 광고를 위해 끼워 맞춘 느낌이 드는 것이다. ‘더 열심히, 더 좋게, 더 빨리, 더 강하게’라던 대프트 펑크의 메시지는 광고음악에는 ‘앞면 옆면 뒷면’이나 ‘학원 통신 병원 약국’이라는 별 의미 없는 ― 물론 광고와는 아주 밀접한 의미가 있지만 ― 메시지로 바뀌어 있다. 솔직히 ‘너무’ 유치하다.
 
하긴 요즘 시대에 누가 음악을 들으면서 형식과 내용을 생각하겠는가? 음악뿐만이 아니라 문화 모든 것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의 구별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나 스스로가 낡은 사고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대프트 펑크를 들으면 <매트릭스>가 생각이 나고, 대프트 펑크를 인용한 듯한 광고음악에서는 그 얄팍함에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럴 땐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대프트 펑크의 음악에 모든 걸 맡기는 게 최고다. 여담이지만 얼마 전 나온 라이브 음반 은 최근 들은 음반 중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기분전환하기에 가장 좋은 음반이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눈앞에서 디제잉을 하는 이들을 떠올리면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시원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대프트 펑크를 듣는다.
 


Daft Punk -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Aliv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