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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상영회

얼음같이 차가웠던 그 겨울날의 동화,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지난 토요일(1월 31일) 저녁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제 4회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는 놀랍게도 흥행 면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상영작 투표 단계에서부터 씨네필들의 영화인 <안개 속의 풍경>을 제치고 40%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해서 상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에도 이 영화의 인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극장을 찾아주신 분들의 열정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인터넷 예매분은 일찌감치 매진이 되고, 상영회 한시간 전에 좌석이 매진되었으며, 보조석 의자를 가지고 들어가신 분,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신 분들, 계단에 앉아서 보신 분들, 서서 보신 분들 등등... 게다가 상영회가 끝나고 진행되는 관객 씨네토크 시간에도, 평소에는 (지난 1, 2, 3회 상영회의 경우) 기껏해야 스무 명 남짓의 관객이 남았던 기억과 비교하면, 두 배 정도되는 관객 분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시면서 늦은 시간까지 열띤 토론을 벌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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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에 만들어지고, 10년 전에 개봉한 이 영화가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영화의 명성에 비해서 최근에 상영된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점, DVD 등으로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라는 점, 제목이 시적이고 아름답다는 점 등등... 어쨌든 이 영화는 오랫동안의 동면에서 깨어나 화려하게 부활을 해서 살아났고, 세월의 흔적으로 낡은 필름은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살아 숨쉴 수 있었습니다.

씨네토크 때 오고간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술 영화에 익숙치 않은 분들은 영화의 스타일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신 것 같기도 합니다만, 많은 관객들이 영화의 스토리에 공감하고 인상깊게 보신 것 같습니다.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 된 알란 파커 감독이 그를 칸느에 초청해서 결국에는 43회 칸느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면서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평을 얻은 이 영화는 감독의 독창적인 촬영 방식, 차갑지만 소박한 러시아 배경의 영상, 애수어린 배경 음악 등 마음 속 애잔한 어딘가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 영화는 단지 이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모든 사람들이 미쳐만 가는지...” 라는 감독의 말에서도 알 수 있지만, 어린 소년 발레르카의 눈에 비친 시베리아의 광산촌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그 때의 암울한 시대상을 읽을 수 있고, 사회 체제에 대한 풍자적인 비판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자라나가는 소년과 소녀의 불안한 삶 속에서 아련한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팔없는 남자, 다리 없는 남자, 미쳐가는 지식인, 삶의 부조리에 대항하여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남자, 자식을 잃고 정신이 나가버린 어머니 등 절망적이고 암울한 현실과 희망의 부재를 유머와 유년기의 순수함 속에 담아낸 이 영화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유효한 수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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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토크에서 관객 중 한 분은 영화 속에서 "눈동자"를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깊었다고 하시면서 강렬한 발레르카의 눈동자, 진흙속에 밀가루를 부었던 지식인의 클로즈업된 눈동자 등 눈빛을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와 메시지에 대해서 언급하셨습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성장 영화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영화를 다른 성장 영화들,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나  루이 말의 <굿바이 칠드런>에 비유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는 "자전적인 성장영화"가 가지는 특징, 즉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에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감독이 직접 연출해 내는 생동감과 섬세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실함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자기 자신보다 진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요.

영화의 시작과 끝부분에 감독의 멘트가 들어가고, 중간에 감독의 웃음 소리가 개입되는 부분에 대한 토론도 있었는데, 감독의 웃음 소리 장면에서 "카네프스키가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순간 속으로 들어가 함께 웃고 싶었던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신 분의 이야기가 공감이 많이 가더군요. 실제로 마지막의 처절한 비극 속에 의도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넣었던 감독의 설명은 아래와 같더군요. "그렇다, 난 영화를 이렇게 시작하고 끝냄으로써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모두 ‘가짜’라는... "

토론 시간에도 나온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의 영문 원제는 <Freeze, Die Come to Life>입니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처음 이 영화가 소개되었을 당시에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로 알려졌고 그 후 정확한 제목인 <멈춰, 죽어, 부활할거야>로 고쳐졌으나 오히려 오역된 제목인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이 영화의 제목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강렬한 영화 제목은 제 3회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 때 상영했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말고는 별로 생각나지 않네요...

2월말에 열릴 다음 상영회에는 또 어떤 작품이 선정될 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