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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소무> 거장의 탄생

<소무> 거장의 탄생


China, Hongkong; 1997; 105min; Drama; Color
Director: Jia Zhang-ke
Casting: Wang Hong-Wei, Hao Hong-Jian


1997년, 향후 10년 간 중국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감독으로 기억될 지아장커는 자신의 고향을 담은 영화 <소무>로 세상에 첫 이름을 새겼다. 최근작 <스틸 라이프>와 <24시티>로 이어지는 작품을 통해 현대의 중국과 중국인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지아장커 영화의 뿌리는 다름 아닌 자신이 나고 자란 '샨시성' 마을과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그는 16mm의 거친 필름에 익숙한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했던 동시대 중국인들을 담았던 것이다.

지난 11일 막을 내린 씨네큐브 광화문의 지아장커 감독전에서 그의 데뷔작 <소무>를 봤다. 이 때가 아니면 극장에서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은 다급한 마음에 아침부터 부랴부랴 극장을 찾았다. 마지막 상영이어서 그런지 평일 아침 이른 시각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이들도 일찍 집을 나섰으리라. 상영관에 불이 꺼지고 익숙하지 않은 색감의 16mm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적한 시골길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 '소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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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는 소매치기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부모와 형제들이 있지만 그는 일찌감치 '성공'을 위해 혈혈단신 도시로 나왔다. 하지만 배운 것도 없고, 밑천도 없는 소무가 생면부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가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일은 다름 아닌 소매치기... 감옥에도 몇 번 다녀왔지만 여전히 버스와 시장 등지에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치안강화를 위해 범죄자를 엄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소무는 다른 대안이 없다. 사냥감을 쫓아 하루 종일 초원을 어슬렁거리는 야수처럼 그 역시 사냥감을 찾아 도시의 구석구석을 살필 뿐이다. 소무 주변의 사람들은 그런 그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새로운 환경에 약삭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누군가의 주머니만 살피고 다니는 그가 어쩐지 한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소무 입장에서는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우연히 들른 친구의 가게에서 죽마고우 샤오닝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성공을 위해 같이 고향을 떠나 소매치기까지 같이 했던 친구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소무는 배신감마저 느낀다. 이제는 손을 씻고 TV에 나올 만큼 청년사업가로 성공한 샤오닝은 소무로 인해 자신의 불편한 과거가 드러날 것이 걱정이다.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소무는 자신에게 더 없이 냉랭한 샤오닝이 야속할 뿐이다. 어쩐지 새로운 환경에 발빠르게 적응하며 모든 것을 이룬 샤오닝에 대한 부러움도 있어 보인다. 없는 살림에 축의금까지 만들었지만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샤오닝은 이마저도 거절한다.

답답하고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소무는 술집을 찾는다. 적당히 갈 곳도 없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여종업원 메이메이를 만난다. 가수의 꿈을 안고 도시에 왔지만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술시중이나 들고 있는 그녀에게 소무는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쓰인다. 꼭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마음을 나누려 한다. 아주 서투르고 어설프지만 소무는 진심을 담았다. 그녀를 위해 생전 부르지 않던 노래도 배웠고, 그녀를 위해 반지도 샀다. 하지만 그녀는 곧 '부자'를 만나 타이위안으로 떠난다. 소무는 결국 시골의 가족을 찾아 가지만 그 곳 역시 그가 있을 곳은 아니다. '가족'은 이미 소무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로 올라온 소무는 다시 소매치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곧 경찰에 붙잡히고, 그는 거리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소무>는 영화의 형식적인 부분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이후 전개되는 지아장커 영화들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이후의 작품들을 보고 난 이후 데뷔작을 처음 대하는 느낌은 '새로운 발견'이라기보다 '거장이 탄생하는 순간'을 즐기는 기분이었다.

지아장커의 언어들 - '거리두기'의 미학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카메라 /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를 연상시키는 정중동의 화면 / 상하 움직임이 없는 좌우의 쉼 없는 트래킹 샷 / 화면과 분리된 사운드의 소격 효과 / 비전문 배우들의 캐스팅 등은 이미 <소무>에서부터 시작된 지아장커의 영화적 언어였다. 그리고 이런 장치들은 이후 그의 영화에서 더욱 정교하고 세련된 표현 수단으로 자리잡는다. 고정된 카메라는 변화의 중심에서 불안해 하는 중국인(소무)의 표정들을 오롯이 담아내고, 고다르의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롱 트랙킹 샷은 고단하게 삶을 이어가는 군상들을 담아낸다. 감정의 폭발 없이 '순간의 연속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장치들은 관객이 화면과 '거리두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과도한 감정이입으로 화면과 현실의 경계를 무마시키는 것보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실제'를 응시하는 듯한 사실적 이미지를 안기는 것이다. 비전문배우들의 캐스팅과 화면과 분리된 사운드 역시 거리두기의 효과를 돕는 장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 경력이 없는 주인공 소무와 메이메이(이들은 이후 지아장커의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리고 영화의 시작부터 음향이 제대로 맞춰졌는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운드 역시 극에 대한 '몰입'보다는 '지켜보기'를 유도한다.

하지만 영화의 중간중간 이런 규칙이 깨지는 순간들이 있다. 주인공 '소무'의 시점으로 화면이 전개되는 부분에서 카메라는 지금까지의 워킹과 반대로 굉장히 역동적이고 화려한 움직임을 보인다. 노래방에서 만취한 소무, 샤오닝의 결혼식장에서 소동을 피우는 소무, 경찰에 잡혀 수갑을 차고 거리에 나선 소무는 모두 그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소무의 내면이 그대로 화면으로 옮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수갑을 찬 채 거리에 홀로 남겨진 소무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소무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장 극적으로 감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이다.


지아장커의 메시지들 -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송사(送辭)

내용적인 면에서 2000년대 후반 작품들보다 사회성이 더욱 짙게 느껴진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소무>에는 지아장커가 그의 영화들에 담고자 했던 이야기의 원형이 담겨져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변화하는 세상에 살아가는 동시대 군상들의 면면(面面)이다. 그들의 피로와 불안, 아니면 희망이 고스란히 필름 속에 묻어 나는 것이다. 소무와 샤오닝은 여러가지로 대비되는 인물이다. 성공을 위해 도시로 나와 소매치기가 됐지만 소무는 여전히 길거리 소매치기로 살고 있고, 샤오닝은 청년사업가로서 단단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머리가 좋은 필요는 없다. 그냥 돈 냄새만 잘 찾아 다니면 된다."는 극중 인물의 대사처럼 샤오닝은 '돈'의 흐름을 쫓아 새로운 세상에 화려하게 안착했을 뿐이다. 샤오닝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샤오닝의 모습은 대부분 중국인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반대로 소무는 그렇지 못하다. 새로운 세상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현재를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오늘을 살아가기가 다급한 상황이다. 그런 그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메이메이에게 연민인지 사랑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쩐지 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런 소무와 메이메이의 불안과 피로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소무가 중국인들의 현재라면, 샤오닝은 그들이 모두 꿈꾸는 바이다. 소무와 같은 '웃음거리 괴물'이 되든가, 샤오닝과 같은 '영웅'이 되든가 그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1997년 중국인들의 모습이었다.

두 번째는 '해체'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다. 지아장커는 자본주의로 인한 도시의 성장, 그리고 도시로 향한 사람들의 '이주'가 가져오는 '가족의 해체'와 '공동체의 해체'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왔다. <세계>, <스틸 라이프>, <24시티>에서도 이주로 인해 해체된 가족과 공동체는 지아장커 이야기의 주된 테마였다. 모두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을 등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샨샤댐 건설 현장에서 아내를 찾는 남편과 남편을 찾는 아내를 담은 <스틸 라이프>가 가장 대표적이다.) <소무>의 주인공 소무와 메이메이 역시 모두 가족을 떠나 도시로 나온 이주민들이다. 전통적인 가정에서 모여 살았던 그들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더 높은 꿈을 위해 도시로 나왔다. 하지만 부자를 꿈꾸던 소무는 소매치기일 뿐이고, 가수를 꿈꾸던 메이메이는 술집 여종업원일 뿐이다. 이들에게 가족은 언제나 돌아갈 수 있지만, 반대로 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돈'도 없고, 꿈도 이루지 못한 이들이 가족에게 짐이 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족이 해체되고, 그 기능은 상실된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선동하지 않는다. 단지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현재의 모습을 통해 담담히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지아장커의 영화는 항상 '현재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진다.

13년이 지나고 처음 본 <소무>는 지아장커의 현재를 설명해 주는 그의 과거였다. 그리고 그 곳에는 지아장커가 구축해 온 영화적 언어와 이야기들의 원형이 숨 쉬고 있었다. 감독이 27살에 16mm 필름에 담아낸 영상이 다소 거칠고, 지금과 비교하면 조명과 촬영 등 튀는 부분도 있지만 거장이 탄생하는 순간 만큼은 벅찬 감동을 느끼게 만든다.


P.S. 지아장커의 영화에는 유독 '휴대전화'가 등장하는 화면이 많다. <세계>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전달되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등 그는 이 새로운 통신수단을 통한 사람들의 관계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휴대전화가 대중화 되기 전에 만들어진 <소무>에서는 '삐삐'가 중요한 메타포로 등장한다. 소무는 메이메이의 연락을 기다리기 위해 삐삐를 구입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기계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가족들의 모습을 카메라는 비춘다. 뜬금 없지만 지아장커를 GV를 통해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당신 영화에서 휴대전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