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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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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핀처의 신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운명을 지닌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다. 병실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데이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벤자민 버튼의 일기장을 딸에게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그의 일기장은 중간중간 몇몇 페이지가 뜯어져 있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그의 삶을 따라가는 것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를 낳고 죽은 어머니의 부탁과 달리 아버지는 너무 늙어서 괴물 같은 형상이었던 그를 양로원에 버리고, 그는 자신의 외모와 비슷한 노인들 틈에서 자라게 된다. 조금씩 젊어지며 성장하는 그는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가고 전쟁에도 나간다. 러시아에서는 같은 호텔에 머무르던 외교관이자 스파이의 부인인 엘리자베스를 통해 짧은 사랑도 경험한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우여곡절 끝에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데이지와 함께 인생에서 최고의 시절을 보내게 되지만, 그는 젊어지고 그녀는 늙어가는 데서 오는 차이는 그들의 사랑에서 중요한 변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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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정신이 불일치하는 벤자민 버튼의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사건이다. 그의 외모는 훌륭한 특수효과와 분장에 힘입어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을 획득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그가 늙어서 어린 아이로 돌아간 때를 너무 빠르게 처리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노인의 모습이면서 어린 아이의 행동을 하는 벤자민 버튼의 유년 시절은 아이러니한 웃음을 가장 크게 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가 성장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브래드 피트의 멋진 얼굴로 변화할 때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지만, 브래드 피트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든다.

평범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입장에서 점점 얼굴이 매끈해지며 젊어지는 벤자민 버튼의 삶은 부러울 뿐이지만, 사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삶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람이 살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통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현실이 싫다면 욕을 하고 저주도 할 수 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그걸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온다는 영화 속 대사는 어떻게 보면 보수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포레스트 검프와 상당히 닮은 영화여서 그러한 생각이 더욱 짙게 들었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 속에서 성숙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벤자민은 가족을 포기하며 헤어짐을 결심하고, 데이지는 평범함을 받아들이며 체념을 하고, 엘리자베스는 아쉬움으로 남은 꿈에 다시 도전을 한다. 그들의 선택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에 대한 통찰력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것은 없지만, 어떤 것은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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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부에는 전쟁에서 죽은 아들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거꾸로 시간이 흐르는 시계를 만든 눈먼 시계공의 이야기가 짧게 나온다. 각자 정해진 시간이 따로 흐르기 때문에 존재하는 슬픔에 대해 간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외로운 인생이기 때문에 다른 이와 함께 한 시간은 더욱 중요하다. 그의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시계가 완성된 해에 벤자민 버튼이 태어나고, 그는 평범하지 않은 조건에서도 다른 이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영화에는 벤자민 버튼의 사랑과 인생 외에도 그의 주변에 있는 타인들의 작고 소소한 인생들이 흥미롭게 배치되어 있다. 7번이나 번개를 맞고도 살아 있는 남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데이빗 핀처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묵직하지는 않으나 우아한 이야기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인상적인 음악에 힘입어 인생의 신비로움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166분의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