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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카비리아의 밤 (Le Notti di Cabiria, 1957)


'카비리아의 밤'의 첫 장면은 남성에게 배신당한 여성의 모습을 희극적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카비리아는 조르조와 함께 들판을 뛰며 사랑의 기쁨을 만끽한다. 하지만 강가에 이른 카비리아는 핸드백을 뺏으려는 조르조에 의해 물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카비리아는 마을 사람들에게 구조되어 간신히 목숨을 건지지만 왜 조르조가 자신을 배신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가 핸드백을 가로채고 카비리아를 물 속으로 밀어넣는 순간부터 조르조의 진심이 드러난 것이지만 카비리아는 왜 그가 돈 때문에 그녀의 목숨을 해치려 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순진하고 어리석다. 어떻게 4만 리라 때문에 사람을 해칠 수 있냐는 카비리아의 물음에 5천 리라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하는 완다의 목소리는 돈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해칠 수도 있는 비정한 현실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의 공간이 낮에서 밤으로 변하는 순간 카비리아는 그의 친구인 완다와 함께 옷을 차려 입고 거리로 나선다. 남성에게 여성적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고급스런 옷차림을 한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밤에 일하는 매춘부 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카비리아의 겉모습은 아무리 봐도 삶의 어두운 면이 반영된 매춘부가 아닌 '길'의 젤소미나처럼 어리숙하고 순진해 보인다. 땅꼬마 같은 작은 키, 그리고 흑백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인물의 우스꽝스런 표정은 마치 서커스의 광대같은 희극적인 인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매춘부들에 비해 성적 매력이 부족해 보이는 신체적인 왜소함을 자신감으로 극복하려 한다. 자신보다 여성적인 매력을 가진 매춘부들에게 굴하지 않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 사이를 지나가는 카비리아의 모습은 웃음이 나면서도 애처로운 느낌이 든다.

어느 날 길거리를 지나가던 카비리아는 영화 감독인 알베르토를 만나게 된다. 애인과 말다툼 후 지쳐있던 알베르토는 카비리아를 목격하더니 그녀를 자신의 세계로 들여보낸다. 뜻하지 않은 만남으로 상류층의 술집에 들어간 카비리아는 다른 사람들보다 왜소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특유의 포즈로 극복하려 한다. 카비리아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달리 커튼을 제대로 걷지 못한 체 헤매는 모습같은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알베르토의 집에 들어간 카비리아는 모든 것을 가진 알베르토의 집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집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며 애써 자신감을 불어 넣는다. 마치 황홀한 꿈처럼 알베르토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카비리아는 알베르토의 애인인 제시가 돌아오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제시에게 들통나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알베르토가 쥐어주는 돈을 받고 쓸쓸히 계단에서 내려오는 카비리아의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알베르토의 집에서 상류층의 화려한 삶을 목격했던 카비리아는 숲길에서 우연히 만난 의문의 남자와 동행하면서 자신보다 가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어딘가를 향해 길을 걷던 남자는 굴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식료품과 생필품을 나눠준다. 남자의 자선 행위를 지켜보며 그를 따라 다니던 카비리아는 자신보다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남자와의 만남 이후 카비리아는 매춘부의 삶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기적을 믿지 않던 카비리아는 성모 마리아에게 참회하러 간다는 동료들과 함께 순례를 가기로 결심한다.

성당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축복과 기적을 기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의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신에게 의존하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심리를 인상깊게 보여준다. 카비리아를 비롯한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어떻게 참회하는 것조차 잘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성호를 긋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적을 바란다. 하지만 교회 밖을 나온 카비리아는 신에 대한 기도만으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인간 사회의 현실 속의 고통은 신의 기적이 아닌 인간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극일지도 모른다.

마술쇼를 구경한 카비리아는 한 마술사의 최면술 시범을 위해 얼떨결에 무대에 서게 된다. 마술사의 최면술을 지켜보면서 냉소적인 미소를 짓던 카비리아는 마술사의 최면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녀는 마술사가 제시한 오스카라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듯이 환상에 빠져 상대방에 대한 진솔한 사랑의 고백을 한다. 하지만 현실의 무대로 돌아온 카비리아는 자신을 조롱하는 수많은 관객들을 마주하게 된다. 카비라아가 꿈꾼 이상이 무시당하고 조롱당하자 그녀는 화를 내며 무대를 내려온다. 마술 쇼가 끝난 후 카비리아는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며 접근하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도노프리오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무대에 선 카비리아를 보고 순수한 매력에 빠졌다고 말하면서 카비리아에게 열렬한 구애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