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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현대미술의 상실> 왜, 뭔가를 알아야만 미술을 볼 수 있지?

모든 심오하고 독창적인 작품은 처음에는 추하게 보이는 법이다 - 스타인버그 -
현대미술의 상실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톰 울프 (아트북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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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뭔가 알아야만 미술을 볼 수 있지?

"미술은 보는 거잖아? 보면 다 보이잖아. 뭘 더 알아야 하지?" 이건 20세기 초
반까지만 통용되는 얘기였다. 현대미술 앞에서 이런 태도를 취했다간 미술관 안에 들어가서 머리를 쥐어 뜯거나, 시니컬한 웃음을 날리거나 하품만 하다 나오기 쉽다. 간혹 느낌이 팍 오는 작품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게 이렇게 느끼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돌아와서는 검색을 해보고 자료를 찾아보지 않고는 맘을 놓을 수 없다.

속으로 "답이 있나? 보는 사람 맘대로지." 하며 당당하자 주문을 걸어도 '제대로 보는 거 맞아?'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책을 쓴 톰 울프도 궁금했나보다. "내가 보는 게 보는 게 아니야"란 생각을 했던 모양이고, 그 이유를 물었나 보다. 그리고 신문 한 귀퉁이에서 한 문장을 보고는 '옳거니.' 했다 한다. 그가 단서를 얻은 글이다.


 

이 멍청이야.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 아니고 '아는 것이 곧 보는 것 Believing is Seeing'이야!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완전히 문예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그림이나 다른 작품은 오직 문의(文意)를 예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12쪽-

이론 안에 갇힌 미술, 이론의 문 열고 나올까?

현대미술이 지나온 길을 보면 꼬리에게 휘둘리는 몸뚱이와 같은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미술에게 모더니즘과 사실주의를 넘어서는 과정은 자신의 본성을 끝없이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힘들었나 보다.

다른 것, 다른 형상, 규정받지 않는 미술 세계를 찾아 나선 현대미술가들은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때로는 불편함을 느끼는 미술을 선보이지만, 그 미술을 해석하기 위해 달려든 이론가들과 수집가, 미술 상인들에게 '특이성'이란 새로운 가치 기준으로 규정 받는다.

대다수의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지만 소수의 수집가와 전시장에서는 고가의 상품으로 대접받는 상황을 현대미술가들도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현대미술가는 '특이한 예술'이란 가치를 부여해 주고 주목을 해주는 수집상과 미술 상인, '특이한 예술'임을 이론으로 뒷받침 해주는 이론가들의  보증에 길들여진다.

최초에 우리는 이야기책 같은 19세기의 사실주의를 제거했다. 다음에 우리는 사실적 대상을 제거했다. 다음에 우리는 3차원을 완전히 제거하고 정말로 평면적이 되었다. (추상표현주의). 다음에 우리는 공기 같은 희박성, 붓질, 대부분의 물감을 제거했고, 형체나 복잡한 구도라는 마지막 병균을 제거했다. -111쪽-


역전이 됐다. 기존의 미술에서 벗어난 (특이, 탈 미술)예술로서의 미술을 선보이던 현대미술가들은,  탈미술, 탈형상, 탈이야기, 탈색체, 탈삼차원이란 꼬리에 휘둘리게 됐다. 나아가 제프 쿤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엔디 워홀 등과 같이 자신의 미술 세계를 돈으로 인정해주는 미술 시장과 타협하며 자발적인 카르텔을 형성하기도 한다. 물론 현실은 이렇지만 이들은 이론이 입혀준 추상표현주의나 팝아트 등의 이름이 붙여준 개성만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겨주기를 바란다. 평론가의 평가에 의해서 가치가 상승되는 미술, 마케팅에 잠식당한 미술이라는 가치의 전도를 현대 미술은 보지 않는다.

<현대미술의 상실>의 톰 울프는 현대미술에 대한 조롱을 목적으로 이 책을 쓰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미술이 시장과 이론이라는 꼬리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의 몸체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곳곳에 드러낸다. 날카로운 풍자가 자극제가 되고 미술의 현재 모습을 직시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나는 여전히 미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 여긴다. 동시에 미술이라는 유기체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과정은 완전체 그대로의 변화과정만 있지 않다고 여긴다. 또한 미술을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저마다 변화의 동인을 갖고 변화하고 발전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은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걸 안다. 불과 100년의 시간을 지나오는 현대미술의 현재 모습이 현대미술의 완성태가 아니라는 것을 길고 긴 시간 동안 만들어지고 발전한 중세, 고대, 르네상스들의 미술역사를 통해 인식한다.

다만, 현대미술이 자기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가든, 그건 현대미술을 붙들고 매일 길고 긴 심미적 실천을 하는 작가와 그 미술로 세상을 재해석하는 대중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일 거라는 생각은 분명하다.


<현대미술의 상실>은 낯선 전시장을 좀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서게 하는 위트 있는 안내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