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

[책] 나는 치즈다 - 로버트 코마이어, 김연수 옮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볍게 읽을 책을 찾아 도서관을 뒤지던 중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옮긴이 때문이었다. 책 이름은 전혀 끌리지 않았지만 제목 밑에 써진 '김연수 옮김'이라는 말에 집어들고 말았다. 김연수 작가가 번역도 한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실제 책으로 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2년 전 본격적으로 책을 습관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때 지치지 않고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좋은 책들을 연달아 접하면서 책 읽는 즐거움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정말 재밌고 좋다!' 라는 느낌을 받은 책의 절반은 김연수 작가의 추천 책이었다. 그 이후 김연수 작가가 쓴 책이라면, 그가 추천한 책이라면 아무런 의심없이 집어들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김없이 이 번 책도 만족이었다.
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아버지의 꾸러미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꽤나 장거리를 달려간다. 아버지와는 왜 떨어 지냈던 것일까? 화면은 바뀌고 그 소년으로 추정되는 A와 정신과 의사 혹은 상담원으로 보이는 T의 대화를 녹음한 테잎 기록이 나온다. 소년은 기억을 잃은 듯 하다. 어떤 사고가 있었던 것일까?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과 녹음한 테잎 기록이 번갈아 이루어 질수록 조금씩 소년과 소년의 가족에 대한 그림이 그려진다. 마치 백지 위에다 한 조각씩 퍼즐조각을 맞춰나가는 기분이다.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흡입력이 최고조에 달하는데 조각이 아무리 모여도 밑그림이 완전하게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 한 장에서 모든 것이 밝혀지고 그에 따른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열심히 아빠에게 닿기 위해 달렸던 애덤(소년)은 실제론 그 거리를 달리지 않았다. 그가 겪은 자전거 여행은 루터버그에서 자전거를 타고 병원 마당을 돌면서 봤던 것들이 환각작용으로 각색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당을 돌고 나서 병원으로 들어가면서 만나는 관리인 아저씨와 불량배 면도칼 무리들, 그리고 셰퍼드 까지, 모두들 각색되어 애덤의 자전거 여행에 등장한 것들이다. 애덤은 3년째 병원 시설에 격리되어 갖혀 있는 상태이고 약물에 의한 유도 방법과 사전 정보 수집에 의한 심문으로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테이프OZK로 시작하는 기록들이 애덤의 과거를 나타내는 실제 사실들로 이 전에도 12개월의 간격으로 테이프ORT, 테이프UDW의 기록을 보강하는 자료일 뿐이다. 즉, 3년전에 애덤의 가족은 그레이맨의 충고로 마뉴먼트의 집을 떠나 여행을 가장한 피신을 하던 중 불의의 습격으로 애덤의 엄마는 현장에서 즉사하고 애덤은 보호시설로 넘어온 것이다. 그 때의 충격으로 애덤은 (자발적)기억상실 증에 걸리게 되었고 국가기관(증인 재정착 제도와 관련된)은 애덤으로부터 애덤의 아빠에 대한 자료와 사고 당시의 상황을 알아내기 위하여 심문 아닌 심문을 해왔던 것이다. 소년은 아빠가 불렀던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른다.
골짜기에 그 농부, 골짜기에 그 농부, 하이 - 호, 메리- 오, 골짜기에 그 농부... 그 아이 고양이를 얻어, 그 아이 고양이를 얻어, 하이 - 호, 메리 - 오, 그 아이 고양이를 얻어... 그 고양이 생쥐를 얻어, 그 고양이 생쥐를 얻어, 하이 - 호, 메리 - 오, 그 고양이 생쥐를 얻어... 그 생쥐 치즈를 얻어, 그 생쥐 치즈를 얻어, 하이 - 호, 메리 - 오, 그 생쥐 치즈를 얻어... 그 치즈 혼자서 남아, 그 치즈 혼자서 남아, 하이 - 호, 메리 - 오, 그 치즈 혼자서 남아.
소년 애덤은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 안개속에 갇혀 있다. 단지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과 자신은 혼자 남은 치즈라는 사실만 인지할 뿐이다. 국가와 공공의 안녕이라는 목적아래 자신의 정체성을 박탈 당한 소년의 반복되는 자전거 여행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고 두렵다. 접기
이 책은 청소년 도서로 분류되어 있다. 책을 읽는 중에는 소년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자전거 여행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선 이 책이 대체 왜 청소년 도서로 분류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책을 청소년이 읽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의문마저 들었다. 책의 중반까지 성장 소설이었던 이 책은 마무리로 갈수록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의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메멘토' 같기도 하고 잘 만든 미국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건 장르가 어떻든 간에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