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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arthouse모모

[아트하우스 모모] 르 클레지오, 영화를 꿈꾸다


지난 16일에 아트하우스 모모의 개관을 축하하는 첫번째 이벤트로 "르 클레지오, 영화를 꿈꾸다" 라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이화여대 내에 새로 지어진 ECC(이화 캠퍼스 센터, 아래 사진 참조) 안에 자리잡은 예술영화전용관으로 광화문 씨네큐브를 운영하는 백두대간의 기획 하에 개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개관 축하 이벤트는 23일(월)의 "정이현 작가와 함께하는 <나는, 인어공주> 시사회", 그리고 25일 "이상은의 책 읽어주는 영화관" 등의 시리즈로 계속 진행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씨네큐브의 이벤트 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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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는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불리는 소설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1940년생인 그는 1963년 첫 소설인 『조서』로 23세에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르노도상을 수상하였고, "생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불어를 쓰는 작가"로 불린다고 하네요. 세계문학전집에도 포함되어 있는 『조서』를 예전에 읽다가 만 기억이 떠올라 이번 기회에 완독을 했는데, 카뮈의 『이방인』에 비유되기도 하는 만큼, 읽기에 그리 만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존재"와 "실존"에 대한 사유에 익숙하신 분들은 한번쯤 도전해 볼 만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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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도 조예가 깊으신 이 소설가가 한국영화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면서, 그리고 작년 가을부터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맡으시면서, 『발라시네』라는 그의 영화 에세이가 한국에 번역 출간되었고(이화여대 출판부 발행), 이 출판기념행사와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 상영회가 함께 열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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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시네 (Ballaciner)』는 칸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한 르 클레지오의 에세이집으로 ballader(산책, 사랑을 노래하는 시(발라드))와 cinema(영화)를 합친 신조어라고 하네요. (르 클레지오는 2007년 칸 영화제의 단편 부문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 책 안에는 박찬욱, 이창동, 이정향 감독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는데, 르 클레지오의 애정에 대한 보답으로(?) 이날 행사에는 패널로 이정향 감독이 나오셨습니다. 영화평론가 유지나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가운데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로는, 르 클레지오와 이정향 감독이 생일이 같으며, 불문과 출신인 이정향 감독은 르 클레지오를 예전부터 존경해 왔고, 영화 <집으로>를 우연히 관람한 르 클레지오 역시 이정향 감독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다소 운명적으로 느껴지는 두 분의 인연은 어색하고 서먹한 만남을 왠지 따뜻하게 만드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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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정향 감독, 유지나 교수, 르 클레지오 교수, 번역자 이수원님)

르 클레지오는 칠순이 가깝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중년의 외모와 매력적인 목소리로 젠틀함과 친절함으로 일관했고, 1시간 가량의 스케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더군요. 한국 영화의 폭력성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보다는 역사적 이해로 접근하는 이 소설가는 언젠가 제주도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계시답니다.

관객과의 대화 이후 이어진 도서 사인회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조서』에다가 사인을 받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소설 표지의 사진을 가리키며 별로 변하지 않으셨다는 칭찬을 드렸더니만, 소년같이 웃으시면서 아니라고 많이 변했다며 무척 쑥스러워 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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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인물들과 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이후 상영된 <타인의 취향>은 예전에 봤다는 이유로 건너뛰었지만, 자우이-바크리 커플의 독특한 프랑스식 유머는 자꾸만 다시 보고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 날의 행사는 프랑스 영화에다가 프랑스 작가의 책, 여기에다 더해진 프랑스 출신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까지... 프랑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행사였습니다.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ECC는 대학 내 건물이라는 이유로 일반인에게 약간 거리감을 줄 수도 있지만, 영화관이라는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았으면 하는 곳입니다. 제 주관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건물을 보신 분들은 다들 감탄을 아끼지 않으시더군요. 이번주에는 『발라시네』를 사서 한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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