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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arthouse모모

가장 낯선 곳의 우리들(엉클 분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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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엉클 분미>는
우리에게서 가장 먼 장소에 놓여 있는 아시아 영화일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와 반대 지점에 놓여 있다고 여겨지는 서구는
도리어 이 작품을 아주 쉽게,
게다가 어떤 면에서는 가장 제대로 읽어낼 것이다.

우리가 '서구'라고 한 단어로 일컫는
미국, 영국, 유럽이 실은 아주 다른 나라와 문화들이 뒤섞여 있는 어떤 것이듯,
'아시아' 역시 복잡한 관계로 제각각의 나라와 문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에게 아시아는 단순하게 동아시아, 중국, 일본, 한국으로 정의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하고 더 커다란
우리 자신이 못 사는 나라라고 얕잡아보는 동남아시아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를 아시아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곧, 동남아시아는 '근대'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현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바꿔 말해,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거의 알고 있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나는 <엉클 분미>를 거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가 친절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작품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아니 한 에피소드와 다른 에피소드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보다 간단하게 어떤 작품을 보고 있는지,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 명확하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정체성은 타자의 존재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타인은 안과 밖처럼 또는 흑과 백처럼
분명한 경계로 나뉘는 양면적인 것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나 자신, 내가 속해 있는 이 시간, 이 장소, 세계와 현실은
다양한 관계들이, 또 현재와 과거, 기억과 역사, 미래가
마치 수많은 각양각색의 형태를 비추이는 거울이 늘어서 있고 뒤섞여 있는 미로처럼
또는 다양한 빛과 색깔들이 겹치고 뒤엉킨 프리즘처럼
복잡한 상들이 뒤얽히고 쌓여 있는 무엇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문화,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시간 속에서
무언가 보편적인 것을 공유하듯
나를 나 자신으로 만드는 특별한 어떤 것 역시 존재한다.
우리는 나와 타자 혹은 역사와 정치, 사회, 예술 또 그 어떤 것을 아주 다양한,
때로는 새롭고 친절하지 않고 낯선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말해지지 않는 것, 침묵하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어떤 목소리는
결국 희생과 약자, 정의와 윤리, 역사와 미래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생을 기억하는 외로운 한 남자가
죽기 전 며칠간 겪게 되는 기묘한 이야기와
그를 방문한 먼 친척들이 함께 또는 따로 경험하는 낯선 사건들을 담은
이 놀랍고 새로우며 힘이 넘치는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나는 아시아에 언제나 흥미가 있었으나 그것은 단지 관심이었을 뿐,
제대로 아시아를 이해하고자 충분히 노력하지도 고민하지도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