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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천천히 낯설게 살아가기(수영장, 2009)



치앙마이 근처를 배경으로 하는 어둡고 난해한 태국 영화 <엉클 분미>와는 반대로
일본 영화 <수영장>은 밝고 환하고 산뜻하다.
방갈로는 청결하고 시트는 깨끗하며
키친은 깔끔하고 수영장은 깨끗한 물로 가득하다.
양말을 신고 자켓을 입은 주인공들은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는 더위에도 땀조차 거의 흘리지 않으며,
시계도 텔레비전도 핸드폰도 없는 하루는 느긋하고 고요하게 흘러간다.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장을 보며
조금은 무료하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떨어져 지내는 모녀의 다툼도, 엄마 잃은 소년의 애탄 기다림도,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인의 안타까움도
진공 상태에서의 움직임처럼 둔하고 느리고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당신이 치앙마이를 방문해본 적이 있다면
외국인인 당신 눈에 비친 이 도시가 딱 이런 모습임을 알아챌 것이다.
이른 아침 태국을 떠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공항으로 떠나는 길목에서 비춰지던 환상 같은 그 장면처럼,
무더위가 하루를 급습하기 전 피부에 와닿는 눅눅한 공기에 배어 있는
그 묘한 향내가 이 영화의 느긋한 풍경 속에서 아스라하게 흘러 나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나지도 않는 그 냄새를 맡기 위해
혼자서 몇 번이고 킁킁 대야 했
다.

* 덧붙임-영화 <수영장>에 나온 실제 게스트하우스를 알고 싶다면
아래 사이트를 참고 하시길.
http://www.banromsai.org/
http://www.chiangmai.jp/focus/?q=1&c=gh_banroms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