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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아버지와 딸(일루셔니스트, 2010)



영화, 극장, 텔레비전, 록밴드, 백화점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생기면서
한때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없어졌다.
20세기 초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시대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마법사, 복화술사, 광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초라하고 쓸쓸하게 사라졌다.

프랑스의 코미디 거장 자크 타티가
딸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를 원작으로 하는 <일루셔니스트>는
그의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든 오마주가 그러하듯 덜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더는 마술에 놀라지도 즐거워하지도 않는 때
점점 더 초라해지는 늙은 마술사가 파리를 떠나 런던을 거쳐
스코틀랜드의 머나먼 시골에서 마술사를 신뢰하는 어린 소녀를 만나
그리고 애든버러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소녀가 여인이 되어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쓸쓸하게 떠나간다는 줄거리는
'소피 타티에게 바친다'는 헌사와는 다르게
타티가 영국에 버려뒀던 첫 딸을 떠올리게 한다.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을 따라 부모 세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이 안타깝다고 해도 자식 세대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마술사가 마지막에 소녀에게 남겨둔 전언 '마술사는 존재하지 않아'라는 말은
이제 소녀가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수채화 같은 2D 애니메이션 그림이
비가 내리는 에든버러의 아름다운 야경을 입체적으로 감싸 안을 때
문득 우리가 이 거대한 세상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