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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홍상수 감독 특별전 : 홍상수의 여자들' 관객VS관객과의 대화

: 모모관객 이현지

 

저는 연주가 좋아요. 특히 이름이 너무 좋아요. 연주라는 이름은 중식을 연주한다는 뜻이래요.”

“‘옥희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당돌해요. 말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하하하>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어두컴컴한 영화관이 밝아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관객들은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스크린 앞에 앉은 3명의 관객평론가들이 옥희니, 연주니 하는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이 기묘한 풍경은 아트하우스 모모의 기획전, ‘홍상수의 여자들의 부대행사로 준비된 관객 대 관객의 대화시간에 펼쳐졌다. 흔히 있는 감독과의 대화가 아니라 관객과의 대화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홍상수 팬인 3명의 관객평론가들이 홍상수의 영화에 나오는 여성캐릭터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묻는다. 물론 일반 관객들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홍상수의 여자들은 그 이름 그대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을 재조명해보는 자리이다. <까이에 뒤 시네마> 전 편집장 장 미셀 프로동의 말을 빌리자면 다분히 남성적인 관점에서 그려지지만 그것이 마초적인 관점은 아닌, 매우 드문 방식으로 표현된 여자캐릭터들의 여성성을 살펴보는 것이 본 기획전의 의도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여자들은 때로는 영화를 지탱하는 주인공, 때로는 남자들이 바라보는 대상, 때로는 분위기나 풍경이 되기도 하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이렇듯 소중한 존재들, 홍상수의 여자들의 정체를 파헤치고 의미를 찾는 행위는 홍상수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이 기획전은 <하하하>, <북촌방향>, <생활의 발견>, <극장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낯선 나라에서> 등 총 6편의 영화를 통해, 그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모를 통해 선발된 3명의 관객평론가들은 홍상수 감독이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여성캐릭터의 변천사, 홍상수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서로의 의견을 묻기도 하며 관객과의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트위터에서 홍상수 봇(트위터에서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동으로 글을 올리고, 이용자가 가상의 인물이나 대상인 것처럼 가장해 운영하는 계정을 일컫는 용어)을 운영하고 있는 심영길씨는 홍상수의 영화에서 여성캐릭터는 어떤 식으로든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로 발제를 시작했다. 초기의 영화에서 홍상수의 여성들은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자 결국은 사라지고 말 신비로움의 상징이었지만, 최근작에서는 욕망의 주체로서 그려지기도 하고 더 나아가 구원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손혜정씨는 옥희의 영화속 옥희라는 캐릭터를 집중탐구했다. 홍상수 영화 중 최초로 영화제목에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 옥희는 남성의 욕망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두 명의 남자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이한솔씨는 <하하하>의 성옥이라는 캐릭터가 홍상수의 영화의 최근 경향을 상징하는 캐릭터라고 평했다. 성옥은 들어주는 역할이 아니라 말하는 역할을 맡으며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른 여성 캐릭터와 구별되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여자들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은 미리 발제문을 준비해 온 관객평론가뿐만이 아니었다.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남은 관객들도 적극적인 태도로 관객평론가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스크린 속에서 신비로운 말과 행동을 통해 관객들에게 많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졌던 홍상수의 여자들은, 관객 대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더 생동감 있고 입체적인 존재로 탈바꿈했다. 한 관객의 질문처럼 홍상수의 여자들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까? 물론 정해진 답이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진행자인 이희도씨의 말처럼, 홍상수영화에 있어서 여자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그것만큼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