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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너를 보내는 숲 (殯の森,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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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 대부분은 사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곤 합니다. <너를 보내는 숲>도 그런 영화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는 일본의 전통적인 장례 풍습(우리나라의 상여 나가는 모습과 비슷하더군요)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죽음의 문턱에 이른 나이 많은 노인들의 요양원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주인공 시게키(우다 시게키)와 마치코(오노 마치코)의 삶은 더군다나 죽음의 그늘 아래에 놓인 인물들입니다. 33년 전에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은 평생을 살아온 한 노인과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어버린 젊은 여성의 자그마한 로드무비가 <너를 보내는 숲>입니다. 요양원에서 환자와 간병인으로 만난 두 사람은 시게키의 죽은 아내의 묘를 찾아 산행을 시작하는데 고생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들을 지탱해주는 건 다름아닌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과 고통입니다. 소중하게 간직해온 유품과 수십 년 간 써온 일기장들을 아내의 묘 앞에 꺼내놓는 시게키의 모습은 진한 감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영화 중간에 시게키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하는 회상 장면이 있는데 단순한 피아노 선율과 어울려 그 감정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주어진 단 하나의 운명이란 결국 죽음일텐데 죽기 전까지의 순간들을 채우고 있는 건 다름아닌 먼저 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은 마치코이 남은 삶도 그렇게 채워질테고요.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시게키와 마치코가 그랬듯이 서로를 연민으로 대하며 고마워하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해놓은 원칙은 없으니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된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이 대사는 죽기 전까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해답입니다. 치매에 걸려 원칙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시게키와 마침내 자신도 마음이 가는 대로 해보기로 하는 마츠코는 평범하지만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이 한 가지 잠언을 충실히 따라가는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부터가 정해진 원칙 보다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만들어가는 방식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작품들이 사적인 다큐멘터리와 극 영화를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것도 이런 삶에 대한 태도 덕분이 아닌가 싶고요. 주연배우인 우다 시게키는 이전까지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관객에게 무엇을 설명하고 보여주어야 하겠다는 만든 이의 조바심 같은 것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대사부터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 역시 영화를 보는 동안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관조하는 것 자체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만 삶과 영화에 대한 이처럼 성숙한 시선은 어김없이 나 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주곤 합니다. 죽음 앞에 이르게 되면 내게 남겨질 것이 무엇인지,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지탱해주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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