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구입한 '자이언트' dvd를 뒤늦게 감상했다. 사실 '자이언트'는 제임스 딘의 마지막 작품이란 것만 알고 있어서 단순히 삼각관계를 다룬 로맨스 영화인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200 여분에 달하는 대서사시라는 점과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인종차별과 천민 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의 장면들이 인상적이어서 보는 내내 졸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는 양면 디스크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석유로 온 몸을 뒤덮은 제트 링크가 베네딕트 가(家)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장면까지를 앞면에 담아내고 있으며 그 이후를 뒷면에 수록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두 편을 나눈 기준이 영화의 내용에 맞게 잘 분배되었다는 점이다. 전편이 빅과 레슬리 부부의 결혼 생활의 갈등을 통해 20세기 초의 여성 차별과 텍사스 내의 인종차별을 그리고 있다면, 후편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결혼생활의 갈등보다는 아버지와 자식간의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흔들리는 가부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제트 링크의 모습을 통해 석유로 일으킨 미국 자본주의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명마를 구입하기 위해 메릴랜드의 한 집안을 방문한 빅 베네딕트는 우연히 그 집안의 딸인 레슬리 린든을 만나게 되고, 말을 사러 온 빅은 레슬리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짧은 만남이 인연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텍사스의 베네딕트 가(家)에 도착할 때만해도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지만 텍사스 주에 도착하면서 두 사람의 다른 지역 배경과 성격은 차츰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텍사스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찼던 레슬리는 메릴랜드와 너무 다른 텍사스의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모습이라든지 동부인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날씨나 음식은 그녀를 당황하게 한다. 그러나 레슬리에게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다름아닌 텍사스 인 남성들의 태도이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정치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남자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여성들은 주변에서 바느질을 하면서 거리를 둔 체 있는 모습은 텍사스 남성들의 우월적인 지위를 연상케 한다.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레슬리가 이야기에 참여를 하려고 하자 골치 썩은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나면서 그녀를 회유하려는 모습은 한편으로 여성이 정치 이야기에 끼어드는 모습을 못마땅해 하는 남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또한 빅의 누나가 낙마 사고로 숨진 후 목장의 경영에 참여하려는 레슬리를 제지하고 자신의 농장을 반드시 맏아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빅의 모습은 남성 우월적 사고를 가진 꽉꽉 막힌 가부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되는 빅의 태도는 결함이 많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갖춘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성격 차로 인해 레슬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가로 떠나 별거 생활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빌면서 레슬리와 재회하는 빅의 모습에서 로맨틱한 느낌이 든다.
한편 레슬리는 텍사스에서 남성 우월적인 모습을 보고 분개하지만 멕시코 인들을 동등하게 대해주지 않는 텍사스 백인들의 모습에도 의아해 한다. 텍사스에 처음 발을 내딛을 때 멕시코 하인들에게 친절하게 답변을 하는 레슬리의 모습을 보고 빅은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그녀에게 충고한다. 우연히 차를 타다 멕시코 인들이 따로 사는 난민촌의 모습을 본 레슬리는 몸이 아파 움직일 수 없는 부인 대신 안겔이라는 아이를 달래 주고 의사를 데려와 멕시코 인들을 돕는다. 하지만 빅을 비롯한 텍사스 인들은 멕시코 하인들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레슬리와는 달리 멕시코 인들을 마치 동물처럼 바라본다. 심지어 멕시코 인들로부터 땅을 반강제로 획득했다고 목장주들을 비난하는 제트 링크 마저 '왜 멕시코인들은 독립하지 못하는가'라고 묻는 레슬리의 질문에 '난 그들과 다른 사람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멕시코인과는 다른 존재라고 인식한다. 재미있는 것은 베네틱드 가(家)에 모인 사람들이 우량 종자를 개량함으로써 태어난 검은 소나 검은 색과 흰 색이 뒤섞인 말을 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 장면에서 빅이 구입하려는 명마가 검은 말이라는 점도 이런 속성을 뒷받침하지 않나 생각한다.) 가난하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멕시코인들을 동물 보듯이 하는 텍사스 인들의 모습은 미국 백인 사회의 인종차별주의가 연상된다.
빅과 레슬리 베네딕트가 서로의 성격 차를 극복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면 제트 링크는 마치 '태양은 가득히'의 톰 리플리처럼 가난한 무산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제트 링크는 레슬리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한 빅 베네딕트를 증오한다. 처음부터 삐딱한 시선으로 빅을 바라보는 제트의 모습에서 빅을 증오하는 태도가 드러나지만 무일푼인 그는 빅에게 신세를 지는 비참한 신세이다. 거구의 풍채를 가진 빅이 위에서 제트를 바라보는데 반해 다소 마르고 왜소한 제트가 아래에서 빅을 바라보는 모습은 이들의 처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빅의 누이 덕분에 간신히 일을 얻어 빅의 노동자로 일하던 제트는 그에게 친절하게 대한 빅의 누이의 유언 덕분에 유산을 물려 받게 됨으로써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 자신의 땅을 주기 싫었던 빅은 그에게 시가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트에게 제시하지만, 빅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찼던 제트는 빅의 제안을 거절하고 땅을 소유하게 된다. 울타리를 쳐 자신만의 지역을 만든 제트는 우연히 들른 레슬리가 밟은 발자국에서 검은 액체를 발견한다. 석유를 직감한 제트는 거대한 빚을 지면서 송추탑을 만들어 고군분투 한다. 술을 벗삼아 혼자서 송추탑을 만들면서 초초해하던 제트는 송추탑에서 석유가 뿜어 나오자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처럼 손을 뻗으며 검은 액체를 받아들인다. 온몸에 석유를 뒤덮은 제트는 그동안 자신을 괄시하던 베네딕트 가(家)에 찾아가 그동안 겪은 설움을 토해내지만 한편으론 레슬리에 대한 흑심을 드러낸다. 레슬리에게 말조차 건네지 못했던 수줍은 남성이었던 제트는 그녀에게 추태를 부리게 되고, 이에 분노한 빅은 제트를 때리지만 오히려 기고만장한 제트에게 얻어맞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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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영화는 20여 년이 흐른 1940년 대를 다루고 있다.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록 허드슨 그리고 제임스 딘은 세월의 흐름을 반영하기 위해 나이든 중년과 노년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건 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인데, 록 허드슨은 젊고 기운찬 청년시절과 달리 자식들 앞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힘없는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이들고 배가 나온 풍만한 모습으로 분장하고 있으며 제임스 딘은 반항아적인 잘생긴 청년의 모습이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모습을 야비하면서 한편으로는 쓸쓸한 노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점이 특징이다. 제트가 석유를 발견한 이후로 제트와 록의 신세가 뒤바뀌게 된다는 점도 특징인데, 가난한 청년이었던 제트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딴 거대한 석유회사를 소유하게 된 갑부가 되고 거대한 목장주 였던 빅은 자신의 목장을 첫아들에게 물려준다는 평생의 목표마저 이루지 못하게 된다. 목장주가 되길 바랬던 아들은 의사가 되고 빅이 싫어하던 멕시코 인 여성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쌍둥이 딸은 아내의 바람과는 달리 애인과 함께 조그마한 목장을 경영하고 싶어한다. 심지어 빅의 막내 딸은 빅에게 원수나 다름 없는 제트 링크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다. 자신이 평생동안 가꾸어 놓은 목장을 아무도 물려받으려 하지 않으려 하자 빅은 절망스런 목소리로 자신이 평생 가꾼 목장을 인디언들에게 주어야 하냐고 되묻는다. 이에 인디언들에게 돌려줘 버리라는 막내딸의 대답은 빅의 절망감을 더욱 증가시킨다. 결국 빅은 조상 대대로 지켜온 자신의 목장을 그토록 싫어하던 빅에게 매각하고 만다. 빅의 집을 찾아온 제트의 기고만장한 모습과 절망스런 표정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빅의 모습은 두 남자의 대비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의사 공부를 하게 되어 군대를 가지 않는 빅의 아들과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군복을 입은 멕시코 하인의 아들 안겔의 모습은 가난한 자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다. 안겔의 귀환이라는 신문기사 후 평원에 쓸쓸히 남겨진 성조기로 둘러싼 관은 전쟁에 희생된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평소에는 멕시코인들에게 관심도 갖지 않다가 전쟁에서 죽은 멕시코 인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희생했다고 그를 기리는 모습은 미국 사회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사람은 백인이 아닌 멕시코인 같은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이었다고 말하는 듯 싶다.
석유로 거대한 자산을 모은 제트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파티를 개최하는데, 빅에게 악감정이 남아 있던 제트는 일부러 빅을 자신의 파티에 초청하지 않는다. 이에 분개한 빅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전용 비행기까지 구입해 텍사스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한다. 하지만 빅은 파티에 참여하면서 점점 절망에 빠진다. 빅의 막내 딸은 아무것도 모른체 철없이 퍼레이드에 참석하면서 제트의 연인임을 과시하고, 멕시코 인들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제트의 방침 때문에 빅의 아들인 조단의 멕시코인 아내는 미용실에서 차별을 받게 된다. 아내의 하소연을 듣고 화가 난 조단은 공식 행사장에서 제트에게 항의하지만 기고만장한 제트는 '검둥이 아내를 두니 기분이 좋냐'는 모욕과 함께 그를 폭행한다. 아들이 얻어맞는 광경을 본 빅은 제트를 끌고 가 결투를 신청하지만 술에 쩔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제트를 보고 때릴 가치조차 없다는 깨닫고 결투를 포기한다. 하지만 정작 빅은 아들의 분노에 찬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들의 멕시코인 부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빅의 모습을 지적하는 아들의 말에 빅은 애써 변론하려 하지만 아들의 지적에 할 말을 잃고 만다. 그리고 빅의 딸은 아버지 때문에 망신을 당했다면서 불의를 보지 못해 나선 빅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자신에게 화를 내는 자식들에게 화조차 내지 못하고 쓸쓸하게 그들을 바라보는 빅의 모습은 힘을 잃은 아버지의 축쳐진 모습이 느껴진다.
반면 제트는 석유로 거대한 부를 손에 넣었지만 심적으로는 공허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노년의 제트는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플레인뷰와 닮은 점이 많은데 거대한 부를 쌓았지만 자신의 혈육조차 없는 제트의 모습을 통해 제트의 쓸쓸한 내면을 보여준다. 항상 술에 취해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윗층에서 홀로 서서 자신이 만들어낸 왕국을 쓸쓸히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연민감마저 들며, 회의장에서 행패를 부린 후 술에 취해 쓰러진 체로 회의장에서 잠들어 버리고 아무도 없는 회의장에서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한편 '텍사스가 내게 뭘 주었지. 모두 땅에서 훔쳐 얻어낸 거야.'라고 고백하는 제트의 대사는 침략으로 얻어낸 부의 이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제트를 위로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던 막내딸은 틈으로 제트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제트의 내면의 본질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다름아닌 자신의 어머니의 대용품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결국 제트의 파티 속에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빅의 가족들은 모두 상처만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빅의 가족들은 다시 심적인 아픔을 겪게 된다. 조단의 아내가 멕시코 인임을 본 가게의 종업원이 그녀를 경계 하듯이 쳐다보자 빅의 가족들은 인종차별을 느끼지만 참고 넘어간다. 하지만 식당에 들어온 멕시코 인 가족이 돈이 있다고 지갑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종업원이 그들을 함부로 내쫓으려 하자 빅은 처음으로 멕시코 인들을 위해 몸소 나서게 된다. 나이 든 노인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종업원에게 항의한 빅은 종업원의 고압적인 태도를 보고 분노한 나머지 그와 결투를 하게 된다. 늙고 나이든 빅은 종업원과 주먹다짐을 하지만 결국 눈이 부을 정도로 얻어맞고 가게에서 쫓겨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빅은 자신의 아내인 레슬리와 함께 소파에 앉으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본다. 자신의 소원대로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인생은 실패했다고 빅이 읊조리자 레슬리는 빅의 말을 반박한다. 그녀 자신도 우리들의 인생은 실패했구나 생각했지만 빅이 멕시코인들을 위해 주먹다짐을 한 순간 베네딕트 가문은 진정한 성공을 이루었다고 말이다. 이어 영화는 빅과 레슬리의 손자인 백인 아이와 멕시칸 아이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 후 마무리된다. 레슬리가 말하는 성공은 가문의 전통인 장자계승을 달성하는 것이나 제트 링크같이 석유로 거대한 부를 획득한 것 같은 물질적인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는 성공은 바로 다른 인종의 사람을 위해 처음으로 자신을 희생한 빅의 마음가짐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빅이 자신의 멕시칸 손자에게 멕시칸 거지 같은 얼굴 생김새라고 말하지만 이어 자신의 말 실수를 사과하며 아이에게 베네딕트 4세라고 호칭하며 아이를 자신의 손자로 받아들인다. 남성 중심적이고 인종차별적이었던 빅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인종의 사람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대우하기 시작한 것이다. 긍정적인 빅의 변화된 모습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바람직한 사회로 변화되길 바라는 미국의 긍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