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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첫사랑의 풋풋함으로 가득한, 휴식과도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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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天然コケッコー)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2007년

어느 한적한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 초등학생과 중학생 모두 합쳐 전교생이 6명인 그 학교에 남학생 오사와(오카다 마사키)가 전학을 온다. 도쿄에서 온 오사와는 가족 같이 지내던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호기심의 대상이다. 처음으로 동급생을 맞이한 소요(카호)는 오사와에게 점점 호감을 갖게 되고, 어느 새 둘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된다.

소요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한없이 여유로운 시골 마을에서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풋풋한 첫사랑의 느낌은 평화로운 자연의 풍경과 어우러져 자꾸만 보는 이의 소소한 감정들을 자극한다. 영화는 가끔씩 영화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지극히 사소한 풍경들을 보여준다. 물속에 떠있는 빨간 토마토들, 식탁 위에 정갈하게 놓여 있는 음식들, 운동장의 작은 수돗가를 이유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볼 때, 그 풍경들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는 이에게 다가온다. 그 감정은 매일 스쳐지나가는 길가에 작은 꽃이 피어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이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여유로움은 이런 사소한 것들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면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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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이 단지 시골마을의 여유로움만을 그려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이 여유로움을 통해 도시의 사람들이 잊고 있는 무언가를 자꾸만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수학여행 장면이다. 소요는 오사와가 살았던 도쿄가 어떤 곳인지 너무나도 궁금해 한다. 도쿄에 대한 호기심은 오사와를 좋아하기 때문에 갖게 된 것인 동시에, 시골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도시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다. 수학여행을 도쿄로 가는 것이 결정되자 들뜬 마음에 달려가던 소요는 그러나, 수많은 인파가 정신없이 걷고 있는 신주쿠 한복판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서있을 뿐이다. 각자가 제 갈 길을 바쁘게 걸어가는 도시의 풍경은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익숙한 광경이지만, 신기하게도 영화 속에서는 한적한 시골 풍경과 대비되는 낯선 풍경처럼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오사와의 도쿄 친구들이 ‘도쿄의 기념선물’이라며 재개발되는 학교의 콘크리트 잔해를 주는 것은 단순히 유머가 아닌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사와가 그것을 버렸을 때 소요는 그래도 기념선물이라며 그 무거운 것을 들고 간다. 도시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쓰레기’에 불과한 그것에 소요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화가 작고 사소한 풍경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어떤 감정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태도이다. 소요가 시골에서 그랬던 것처럼 귀에 손을 모은 채 걸으며 언젠가 도쿄와도 친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 그것은 도시에 대한 소요의 호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시나 시골이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시골이 더 좋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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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여유로움 뒤에는 그 여유로움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소요의 동생 고타로가 중학생이 되는 날, 소요는 남은 초등학생 두 명까지 다 졸업을 하면 자신의 학교가 어떻게 될 지를 생각하게 된다. 마을에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아이가 없기 때문에, 소요의 학교도 언젠가는 폐교할 운명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 소요에게는 그런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모든 것이 이제 시작하고 있기에,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소요와 오사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오사와가 도쿄로 고등학교를 가려고 생각중이라고 말했을 때, 소요는 자신이 오사와와 항상 함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이 모든 것들에 끝이 있음을 단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은연중으로 이야기를 한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이 전해주는 이 모든 감정들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골 마을의 여유로운 풍경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소요와 오사와의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들이 잊히지 않고 영원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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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해갈 것이다. 소요도, 오사와도, 그리고 학교도 마을도 모두가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이 모든 것들을 ‘추억’으로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있는 ‘현재’의 것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런 태도는 <린다 린다 린다>와도 흡사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소소한 정서는 다른 일본 영화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영화가 일본의 시골을 너무 낭만화한 것은 아닌지, ‘도시-시골’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들은 너무 쉽게 지운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며 아쉬운 점을 찾으려고 해보아도 쉽지가 않았던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흠집을 찾기가 쉽지 않은 착하고 귀여운 영화다.

[덧]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여러 면에서 바로 전 작품인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둘 다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이 한없이 따뜻한 휴식과도 같은 영화라고 한다면, <마츠가네 난사사건>은 서늘한 웃음으로 가득한 영화라고 할 정도로 두 영화는 극과 극을 달린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의 시골 마을은 도시의 정서로 변화하기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면,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아직 도시의 정서에 물들지 않는 원래 모습의 시골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로 극과 극의 두 영화를 한데 묶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흥미로운 것은 그래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