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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미스트리스 (Une Vieille Maitress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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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뜨린느 브레야 감독의 2007년작으로 깐느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고 하는군요. 원래 114분 분량의 영화입니다만 이번 국내 개봉판은 1분 여가 잘린 113분입니다. 주인공들의 정사 장면에서 급작스럽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도 18세 이상 관람가로 개봉하기 위해 배급사에서 자체적으로 들어낸 것 같습니다. 카뜨린느 브레야 감독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대중 친화적이라고 하는 작품이긴 합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카뜨린느 브레야 감독 작품'이라는 범주 안에서 그렇다는 얘기일 뿐, <미스트리스>도 표현 수위에 있어서는 역시나 거침이 없는 작품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카뜨린느 브레야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상식의 선을 넘나드는 파괴적인 내러티브'를 지양하는 대신 좀 더 보편적인 남녀 간의 이야기를 프랑스 시대극의 형식미 속에 담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르베 도르비이(Jules-Amédée Barbey d'Aurevilly)의 1851년 원작 소설도 출판 당시에는 부도덕한 내용이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군요. 재미있는 점은 영화 초반에 쇼데를로 드 라끌로(Choderlos de Laclos)의 1782년 소설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가 언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미스트리스>에서 바람둥이 꽃미남과 연상의 정부라는 설정은 <위험한 관계>의 그것을 차용해온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위험한 관계>에서 순진한 여성을 놓고 두 주인공이 게임을 벌이다가 드라마틱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과는 달리 <미스트리스>는 두 사람의 오래되고 질긴 인연 그 자체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만 <위험한 관계>에서 소개되었던 두 인물의 관계를 <미스트리스>가 부가 설명해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예 <미스트리스>가 <위험한 관계>의 프리퀄이라고 한다면 너무 억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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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3분의 2 가량을 과거 회상으로 채운 이후에 현재 시점으로 다시 진행을 하다가 결말 부분은 주변 인물들의 논평으로 서둘러 마무리 하는 등 그다지 세련된 화법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닙니다만 꼼꼼하게 재현된 19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의 풍경과 함께 주연 배우들의 출중한 외모와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2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습니다. 무엇보다 <미스트리스>는 후아드 에이트 아투와 록산느 메스퀴다의 조각 같은 외모를 적극적으로 전시하면서 아시아 아르젠토의 팜므파탈 연기가 제대로 빛을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아시아 아르젠토는 <트리플 엑스>(2002)에서 처음 보고 '우마 서먼을 닮은 제 3세계 여배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딸이시더군요. 9살부터 연기를 시작해 현재까지 출연작만 40편이 넘고 지금은 직접 각본과 감독까지 겸하고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이번 <미스트리스>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록산느 메스퀴다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배역이긴 했습니다만 거의 초현실적인 수준의 외모에 역시나 한 칼 휘둘러주는 연기를 선보이더군요.

어떤 영화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등장 인물의 동기나 행동을 납득하지 못하면 그 영화는 도저히 좋게 봐줄 수가 없는 작품이 될 수 밖에 없죠. <미스트리스>도 벨리니(아시아 아르젠토)에게 마음을 빼앗긴 마리니(후아드 에이트 아투)가 왜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에르망갸드(록산느 메스퀴다)와 결혼을 결심한 마리니에게 벨리니가 왜 그리 집착을 하는지 등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는 보는 동안에는 납득이 안되더라도 언젠가 관객 자신이 비슷한 경험이나 감정을 체험하게 되면 그때서야 불현듯이 떠오르기도 하죠. 마리니와 벨리니의 지독한 사랑은 지금 보더라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관계는 아닙니다만 이들이 경험하는 감정적인 과정 자체는 다수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제껏 쌓아온 자신의 명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다가서고자 했던 카뜨린느 브레야 감독의 선택도 이 정도면 성공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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