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heater

절규 / 현실의 벌어진 틈에서 시작되는 느린 공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절규>는 구로사와 기요시가 <큐어>나 <회로>에서 보여줬던 주제 의식을 변주하는 영화이다. 2006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그 속의 세계에는 여전히 세기말의 황량하고 쓸쓸한 정서가 흐르고 있고, 사람들은 고독과 불신에 시달리며 점점 병적인 징후를 보인다. 그리고 전염병처럼 번지는 절망은 결국 사회 전체를 마비시킨다.

<절규>의 주인공인 요시오카 형사는 바닷물이 고인 웅덩이에서 질식당해 죽은 여인의 사건을 수사하던 중 자신의 것과 흡사한 단추를 발견하고, 그 후에 시체에서 자신의 지문까지 나오자 더욱 혼란을 느낀다. 요시오카는 똑같은 수법을 이용해 아들이나 애인을 죽인 범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과 요시오카의 공통점은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채로 죽었고, 그래서 나는 죽었으니 너희도 죽으라고 말하는, 고독한 존재이다.

귀신의 방문을 받는 요시오카에게는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타인이 없다. 그리고 그는 심지어 그 자신도 믿을 수 없다. 그는 마치 <큐어>에서 같은 배우인 야쿠쇼 코지가 맡았던 다카베 형사처럼 건드리면 폭발할 듯한 일촉즉발의 상태로 그려진다. 정신과 의사는 단순한 스트레스라고 진단하지만, 그를 엄습하는 불안과 신경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보인다. 곳곳에서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나 여전히 스산한 지역과 소외된 사람들이 존재하는 환경은 극중에서 반복되는 지진에 의해 당장이라도 붕괴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절규>의 공포는 귀신에서 나오지 않는다.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의 동선이 확연하게 파악될 정도로 실재감 있는 귀신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사건의 촉매제와도 같다. 오히려 무서운 부분은 영화 전반에 걸쳐 요시오카의 애인인 하루에의 얼굴이 제대로 드러나는 게 마지막의 절규 장면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는 사실이나,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에 항상 등장하는 이동 장면에서 자동차 안의 삭막한 기운처럼 무언가 부재하는 일상의 묘사에 있다. <회로>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이 벽의 검은 흔적에서 어느새 사람의 형체가 스르르 나타났던 순간인 것처럼 <절규> 또한 현실의 벌어진 틈에서 시작되는 느린 공포를 보여준다.

물론 <큐어>처럼 완전히 미쳐서 범죄자가 되지도 않고, <회로>처럼 시스템에서 탈주하지도 못하는 <절규>의 결말은 조금 어정쩡하고 무기력한 절망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서 요시오카가 하루에를 껴안고 미래를 이야기할 때, 그의 희망이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냉정한 외부의 시선으로 먼저 보여주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보는 이에게 참을 수 없이 쓸쓸하고 공허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