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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눈먼 자들의 도시: 모두가 눈멀어버린 세상을 목격한 한 사람의 고통

눈먼 자들의 도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주제 사라마구 (해냄출판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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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신작인 'Blindness'의 원작인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책의 제목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소설이어서 난해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에 여지껏 읽기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 쇼핑몰에서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후 저번 주 코엑스에서 상영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 이 책을 읽었다. 500여 쪽이나 되는 제법 두툼한 분량에 따옴표 같은 문장부호 없이 빡빡하게 서술되어 있는 인물들 간의 대화는 얼핏 보면 읽기 힘들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벌어지는 대재앙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추악한 본성의 모습을 글을 통해 상상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도록 책이 읽혀졌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세상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면서 벌어지는 대혼란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차를 운전하다 눈이 안보이게 된 남자를 시작으로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눈이 멀기 시작한다. 온 세상이 암흑처럼 보이는 실명과 달리 사람들은 세상을 우윳빛 같은 흰색으로 뒤덮힌 공간으로 바라본다. 백색의 세상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뇌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갑작스런 자신의 변화에 당황스러워 하게 되고 세상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눈멀음으로 인해 앞을 못보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정부 당국은 눈멀음을 마치 결핵이나 페스트 같은 백색의 질병으로 보고 그들을 격리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그들은 군대를 투입해 눈먼 자들과 그들과 함께 있었던 잠재적 보균자들을 정신병원이었던 수용시설에 가두어 놓고 눈먼 자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세상과 격리시킨다.

눈멀음이란 재앙이 시작되던 날 병원에서 우연히 함께 있었던 안과 의사와 그의 아내, 첫번째로 눈먼 자와 그의 아내, 첫번째로 눈먼 자를 데려다 준 도둑, 색안경을 쓴 여자와 한쪽 눈이 먼 노인 그리고 사시 눈을 가진 아이 등은 정신병원의 같은 병동에 갇히게 된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격리한 병동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수용소 생활은 정상인으로서 살아오던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눈멀음을 마치 전염병처럼 여긴 군인들은 식량을 가지러 온 환자들을 두려워 하며 총을 쏘면서 그들을 격리하려고 한다. 군인들의 위협 때문에 눈먼 자들은 식량을 배급받기 위해 목숨을 걸며 식량을 가져오지만 그들이 가져온 식량도 간신히 굶주림을 해결할 정도로 부족하다. 게다가 수용소에 격리된 환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이제 병원은 보균자와 환자를 가릴 것 없이 눈먼자로 가득차게 되고 병실 내의 환경이 극도로 악화된다. 생리현상을 지정된 장소에서 해결하는 데 익숙하던 사람들은 이제 화장실을 찾지 못한 체 병실의 아무 곳에나 실례를 하게 된다. 마치 짐승처럼 생리현상을 해결하게 된 눈먼 사람들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수치심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조직을 갖추고 공동체로서의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한 후 눈먼 자들은 어느 정도 혼란과 두려움에 적응하게 되었지만 눈먼 자들 사이에서  무기를 가진 권력자들이 생겨남으로써 눈먼 자들의 공동체는 소수의 한 집단으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 어느 날 정문에 놓인 식량을 배급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온 눈먼 자들은 식량이 턱없이 줄어들었음을 알게 되고 자신들과 같은 눈먼 자들로 구성된 집단들로부터 식량을 빼앗겻음을 깨닫는다. 눈먼 자들은 식량을 빼앗은 자들을 향해 분노를 터트리지만 무기가 없는 그들은 총을 가진 집단에게 아무런 대항조차 할 수 없다. 눈먼 자들은 정문 바깥에 있는 군인들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하소연하지만, 눈먼 자들끼리 싸워 죽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한 그들은 눈 앞에서 벌어진 눈먼 자들의 고통을 외면한다. 이제 눈먼 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을 가진 집단의 요구사항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하게 된다. 총을 가진 집단이 눈먼 자들의 귀중품을 요구하게 되자 병실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피난 시 갖고 온 물품들을 모아 헌납하게 된다. 총을 가진 집단은 귀중품도 모잘라 이젠 병실에 수용된 여자들을 식량의 댓가로 요구한다. 눈먼 자들은 여성들로부터 성욕을 해결하려 하는 조직의 행태에 분노하지만 무기가 없는 병실 내의 남자들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한다. 오히려 병실 내의 남자들 중 일부는 내가 여자였으면 어쩔 수 없이 몸을 내주었을 거라는 말을 하며 노골적으로 여자들을 불량배들의 소굴로 보내려 한다. 여자들은 이러한 남자들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리지만 이렇게 해야 식량을 배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아는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몸을 능욕하려는 불량배들의 요구조건을 승낙하게 된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물을 보는 의사의 아내에게 볼 수 있는 능력은 축복과 구원이 아닌 절망과 고통일 뿐이다. 그녀가 눈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눈먼자들은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마치 '도그빌'의 그레이스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이용당했던 것처럼 눈먼 자들의 부림을 받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의사의 아내는 자신이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먼 자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될까봐 눈먼 자들처럼 행새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대사를 말한다. 의사의 아내는 눈먼 자들이 앞을 보지 못해 고통스러워 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고백해야 겠다고 결심하면서도 끝내 사실을 말하지 못한 체 마음 속에서 괴로워 한다. 게다가 의사의 아내는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하극상을 유일하게 눈으로 목격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도 고통스러워 하고 괴로워 한다. 병실 내의 여성들이 줄을 지어 불량배들이 있는 병실로 들어가는 과정을 목격하게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강간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그들에게 저항하지 못한 체 당해야 하는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 없다. 인간적인 양심과 배려를 상실한 체 여성들을 강간하고 쾌락을 즐기는 불량배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계속되면서 눈을 볼 수 있는 아내는 점점 괴로워한다. 소지품에서 튀어나온 가위 한 개는 그녀의 심적 갈등을 증폭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