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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개밥바라기 별> 이 시대 청춘들의 단단한 철학을 위해


<개밥바라기 별> 이 시대 청춘들의 단단한 철학을 위해

황석영, 문학동네, 2008 8 1, 288p

<개밥바라기 별>은 황석영의 작품목록에서 하나의 변화였다. 블로그라는 인터넷 창구를 통해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했고, 새로운 독자층과의 대화를 시도했다.(6개월 동안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연재된 소설은 누적 방문자수 180만명을 기록했다.) <바리데기> 이후 자신의 책을 읽는 새로운 독자층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성장'이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그 안에 1960년대 자신이 겪은 치열한 20대를 담았다. 아마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다.

<개밥바라기 별>은 과거로 거슬로 올라가는 시간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1장 <그날들 속으로>에서 베트남 파병을 앞둔 준이가 집으로 돌아와 가족,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후 준이와 그의 주변에서 그와 함께 청년기를 보냈던 친구들의 시점이 번갈아 전개되면서 결말은 이야기의 처음과 마주하게 된다. 처음 베트남으로 떠나는 준이의 행동들에 낯설었던 독자들은 그의 청년기를 경험하고 다시 만난 그에게 공감을 느끼게 된다. 1960년대, 그러니까 40년도 훌쩍 넘은 과거에 살았던 인물들의 고민과 절박함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준이를 비롯해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 그리고 중길, 동재, 장무, 장대위, 가족까지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현재의 우리들 중 누군가와 다르지 않다. 역사가 만들어지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의 생존 규칙을 익히게 되는 그들과 우리들. 황석영은 시간을 초월해 통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책은 이런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들의 시대 인식을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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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이 되고, 대학을 가고, 그리고 좋은 일자리를 얻어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절. 준이와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삶 역시 그런 타성에 젖는 것을 거부했다. 어른들에게는 한 때 불장난이나 치기 정도로 보였겠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뭔지 모른다. 학교와, 사회와, 시대와, 부모가 정해 놓은 삶과 다른 자신의 목표와 꿈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그들의 기행은 시작된다. 학교를 몇 달씩 등지고 산에서 수도 생활을 한다던지, 전국 배낭 여행을 떠난다던지, 아니면 전국을 떠도는 부랑 노동자를 따라 다닌다던지...

그들은 길 위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친구들이 (정해진)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들은 답을 얻었을지도, 못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기는 처음부터 답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는 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경험이지만 그들의 방황은 각기 다르게 기억되고, 각기 다른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믿게 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길을 찾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시간에 기대 살아가는 그래서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의 선택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대부분이 20대를 전후에서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게 된다. 누구나 다다르고, 누구나 하게 되는 고민들. 답은 없다. 모두에게 가능성만이 있을 뿐이다.

준이의 경우는 어떠한가. 작가의 자전적 모습이 짙게 배어 있는 준이는 학교를 관두고 방랑을 시작하면서 길 위에서 인생을 배운다. 그에게는 길이 바로 학교가 된다. 하지만 그의 방랑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그는 자살을 선택한다. 수면제를 입에 털어놓고 그는 죽기로 한다. 방황에서 돌아온 후 그가 얻고자 한 답을 얻기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현실에 절망했기 때문일까? 결국 그에게는 살아가야 할 이유가 불분명했다. 자신만 빼고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세상. 준이는 그 세상을 참을 수 없었다. 그가 없어진다면 세상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명확해질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원에서 다시 눈을 뜨게 됐을 때. 그의 첫 생각은 <하늘이 쾌청하고 맑고 푸르다는 것>이었다. 죽음 앞에서야 그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삶의 이유는 곧 자신이 숨쉬고 있음이다.

저자가 준이와 그의 친구들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60년대 자신들의 세대에게도, 지금의 청춘들에게도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단한 철학>을 만드는 일. 먹고 살기에 바빠 철학이 빈곤하고 생각이 어려운 시기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상황에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는 자신의 단단한 철학이 바로 그 대답이 될 것이다. 그 철학은 곧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 그것은 타성에 젖지 않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그 철학을 위해 부지런히 생각하고, 부지런히 경험해야 한다.

작가는 책에서 부랑노동자 장대위의 입을 빌려 개밥바라기 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 나타날 적에는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 별이라고 부른다.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개는 저녁무렵 서쪽 하늘에 나타난 금성을 보고서야 배고픔을 느끼고 밥을 먹어야 할 때란 것을 알게 된다. 그에게 별은 그의 삶 자체와 다르지 않다. 준이는 하루 힘든 노동을 마치고 장대위와의 대화를 하던 중 개밥바라기 별을 알게 된다. 준이의 개밥바라기 별. 그에게 삶이자 철학이자 길잡이가 되어 줄 별을 말이다.

20대를 훌쩍 넘겨 30대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준이의 고민은 현재 나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준이와 친구들은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였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어." "나만 방황을 두려워하고 답을 찾지 못하는 것 아니었어." "누구나 그렇듯 나도 이 시기를 힘겹게 넘기고 있을 뿐 언제가는 내 안에서 답이 떠오를거야."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고민들, 청춘의 특권이자 숙제.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거야." 한 노작가의 치열한 삶의 흔적이 지금 내앞에 놓인 절망 속에서 희망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