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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암보스 문도스 (アンボス·ムンド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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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그로테스코'와 '아임 소리 마마' 두 권 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두 권을 읽고 느낀 점은 여성의 내면, 특히 악의(惡意)가 인상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악의로 인해 사건의 행방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고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는 점이 두 소설에서 받은 인상이었다.

'암보스 문도스'는 앞에서 언급한 특성이 잘 드러난 단편소설집이라고 생각한다. 단편소설이라는 특성상 이야기의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체 끝이 마무리 되는 글도 있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글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편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면의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들을 깔보는 듯한 주변 사람들과 가족, 그리고 사회나 가족 속의 우월적인 남성에게 순응하는 듯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그들을 향한 악의가 넘치는 단편소설들의 주인공들의 심리가 소설 속에서 잘 드러나는 점이 특징이다.  

그 중 마음에 드는 글은 '식림'과 '암보스 문도스'였다. '식림'의 주인공인 미야모토 마키는 '그로테스크'의 주인공과 비슷한 내면을 갖고 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진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 위압되고 전문대를 졸업하고도 남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떳떳하게 일하지 못하고 파트타임 근무를 하는 탓에 가족들에게 구박을 당한다. 게다가 자신의 오빠 부부 덕분에 그 집에서도 언젠가 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위치는 미야모토의 초조한 심리를 현실감 있게 불어넣는다. 재미있는 것은 아르바이트 근무 중에 우연히 TV를 보고 난 후 미야모토의 행동이 180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TV에서 나온 미해결 범죄사건의 용의자인 남자와 여자를 어린 시절에 우연히 만났다는 기억을 되살린 미야모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자신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신보다 키가 크고 외모가 우월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주눅이 들던 아르바이트 생들을 압도하고 일에도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자신감을 되살리게 된 미야모토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 동창회에 나가서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힌 동창들을 혼쭐내주지만 동창들의 말을 듣고 어린 시절에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깨닫게 된다. 자신감을 얻었던 미야모토는 어린 시절 그녀를 이뻐해주었던 스즈키의 악의를 깨닫고 절망하게 된다. 재미있는 건 그 다음인데 스즈키가 자신에게 했던 악의의 표출을 조카를 괴롭힌 히로유키라는 아이에게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악의가 또 다른 악의를 낳는 악순환의 행동이 인상적이었던 소설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암보스 문도스'는 인간의 악의로 인해 파국을 낳는 과정을 잘 그려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암보스 문도스'는 하마사키라는 여성이 소설가인 독자에게 말하듯이 대화체로 구성된 글이다. '그로테스크'의 주인공이 자신의 생각을 담아 독자에게 전달하듯, '암보스 문도스'의 주인공도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독자에게 설명하고 자신의 심리를 솔직하게 고백하듯이 전개시킨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하마사키는 한 때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교감 이케베와 불륜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몰래 쿠바로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이 그들을 파국으로 몰아 넣는다. 그들이 여행을 간 동안 하마사키의 반 아이인 사유리가 산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만 것이다. 하마사키와 이케베가 쿠바에서 돌아오자 마자 그들의 관계는 들통이 나고 결국 이케베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하지만 사유리의 죽음은 단순히 사고로 보기에는 수상쩍은 면이 있다. 사유리와 함께 산으로 길을 떠난 아이들 중 두 명은 서로 앙숙인 사이이기 때문이다. 하마사키는 진실을 알고자 아이들을 추궁하지만 마치 짜여진 각본을 읽듯 되풀이 하는 아이들의 진술은 결국 진실을 덮고 만다. 결국 사유리의 죽음의 원인은 드러나지 않지만 하마사키가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서술하면서 이 사고가 아이들의 악의에서 비롯된 끔찍한 비극임을 암시하며 마무리 된다. 아이들의 집요한 악의와 하마사키의 철없는 행동이 만들어낸 비극이 정말 마음에 든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