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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체실 비치에서 (On Chesil B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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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는 결혼 후 첫날 밤을 보내기 위해 호텔에 머물고 있는 두 남녀의 심리를 첫날 밤의 모습과 과거 두 남녀의 사랑을 오가며 서술하고 있다. 소설은 주로 젊은 두 남녀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두 남녀가 서로 내면 속에서 벌이는 갈등을 그리고 있지만, 이 두 명의 남녀의 갈등은 1960년 대의 영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보수적인 분위기 대신 진보적인 물결이 들어오는 세대 속에서 산 두 남녀는 보수적인 부모와 가정의 굴레를 결혼을 통해 해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이들의 결혼은 새로운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셈이다.

하지만 60년대 당시 보수적인 성에 대한 관념은 두 명의 사랑을 파탄으로 몰아넣는다. 에드워드는 결혼을 통해 드디어 육체적인 결합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긴장된 상태 속에서 플로렌스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초조해 하고 고민한다. 반대로 플로렌스는 에드워드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육체적인 결합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요즘도 이런 고민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데 60년 대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플로렌스에게 이런 고민을 쉽게 털어놓을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의존하는 것은 성생활을 글로 서술한 책뿐인 것이다. 결국 에드워드와 플로렌스의 첫 사랑의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플로렌스는 처음보는 남자의 정액에 거부감을 느끼고 베개를 집어 몸에 떨어진 정액을 닦아내고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해변가로 빠져나오게 된다. 에드워드는 플로렌스가 서둘러 정액을 닦아내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에드워드는 호텔을 나와 해변에 있는 플로렌스를 보고 그녀에게 화를 낸다. 플로렌스는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고백하고 에드워드에게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그는 플로렌스가 자신을 속이고 이용했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녀를 석녀라고 모욕하고 분노한다. 결국 해변가를 떠나는 플로렌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에드워드는 그녀를 평생동안 보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소망이었던 역사서 집필도 이루어 내지 못하고 남은 인생을 안일하게 보낸다. 세월이 흐른 후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의 고백이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 아닌 자기 희생적인 사랑이란 것을 뒤늦게 깨닫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체실 비치를 달려가는 플로렌스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그의 마지막 추억만이 에드워드에게 남아있을 뿐이다.  

'... 체실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