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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2008 AISFF BEST 10

2008 AISFF BEST 10

올해로 6회를 맞은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가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리고 있다. 많고 많은 영화제가 국내에 있지만 그래도 '경쟁' 영화제를 타이틀로 달고 있는 유일한 영화제이다. 그것도 단편영화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금까지 왔으니 참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양질의 단편 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는 8개의 국제경쟁 섹션과, 감독열전, 나이트메어, 믹스 플래닛1, 2(프랑스 단편영화 특집)를 포함해 총 12개 섹션에서 영화들이 상영됐다. 69개국에서 1743편의 영화가 접수됐던 국제경쟁에서는 30개국 52편의 영화가 선정됐다. AISFF가 국제경쟁영화제인 만큼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8개의 경쟁섹션. 이미 이름이 알려진 단편 감독들부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인감독들까지 전 세계 단편영화의 흐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올해는 어떤 나라의 어떤 감독이 어떤 영화로 기쁘게 해줄지...

어김 없이 2008 AISFF에서도 '노동'을 하듯 영화를 봤다. 3일 동안 8개 경쟁 섹션의 영화들을 봤다. 몸도 지치고, 배도 고프고 "이러면서까지 영화를 봐야 하나." 싶은데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다. 그 순간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번 영화제에는 작년과 달리 종교, 정치, 전쟁과 같은 거시적인 문제들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소개됐다. 그 만큼 세계 곳곳이 큰 틀에서 어떤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52편의 경쟁 섹션 작품 중에 10개 부문에 걸쳐 수상이 이뤄진다고 한다. 작년에는 이창동 감독이 심사위원자을 맞았는데 올해는 일본의 오구리 코헤이 감독이 맞아 심사가 진행된다. 수상과는 별개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올해 AISFF 최고의 영화들을 뽑아봤다. 한국 단편 영화들이 다소 아쉬웠지만 다들 재기발랄하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감독들의 작품이었기에 다 소개하지 못함이 미안하다. (무순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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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ern Highway

Director:Ruben Rojo Aura
Mexico; 2008;10min; 35mm; color;fiction

미국으로 통하는 멕시코의 한 고속도로. 주변을 둘러봐도 메마르고 황량한 땅밖에 보이지 않는다. 시선조차도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그 고속도로와 사막의 경계에 한 가족(아빠, 엄마, 아들, 갓난아이)이 있다. 도로 위를 지나는 차를 세워 물건을 판다. 그들이 파는 것은 독수리, 뱀, 뱀껍질. 도무지 팔릴 것 같지 않은 물건들이다. 메마른 땅처럼 그들 가족 역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조차도. 하지만 하루 장사를 허탕치고 짐을 부리던 중 그들앞에 검은 색 차 한대가 멈춰선다. 차가 떠나고 그들 손에는 생전 만져 보지 못했을 큰 돈이 들려 있다. 물론, 그들과 함께 있었던 무언가가 사라졌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한 가정은 현재 멕시코의 현실을 환유하고 있다. 감독은 삶이 유일한 목적인 그들에게 윤리와 도덕이라는 문제가 과연 무엇인지, 가족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1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시선의 이동 없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를 함축적이면서도 긴장감 있게 전개시키면서, 관객들에게 마지막 한 순간 충격을 경험하게 한다. 메시지, 이야기의 구성방식과 더불어 시각과 청각 등 감각적 장치들의 활용 역시 독보인다. 시종일관 붉고 노란 사막의 배경은 인물들의 감정과 어울려 극의 분위기를 이끌고, 결코 끝나지 않을 법한 그들의 가난을 예고하는 듯 보인다. 결과적으로 멕시코에서 온 이 영화는 단편영화가 가지고 있는, 아니 가져야 할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왜냐고 묻는다면 Why we`re do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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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or: Thierry Bouffard
Canada; 2007; 7min; Beta SP; color; fiction

설원에서 총알과 포탄이 난무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카메라는 다급하게 전개되는 전장에서 고립된 한 부대를 사실감 있게 비추고 있다. 그들은 추위에 떨고, 식량이 부족하고, 현지 사정을 모르는 본부와 공격 시기를 놓고 실강이를 한다. 과연 무슨 전쟁일까? 유심히 스크린을 지켜보고 있을 때 관객들을 향한 영화의 메가톤급 반격이 시작된다.
"영화 촬영을 비유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전쟁터이다."라는 브레송의 말 한 마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왜냐고 묻는다면>은 이번 AISFF 국제경쟁 상영작 중 가장 재기발랄한 작품이다. 무슨 전쟁인지, 왜 싸우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 없이 병사들은 설원에서 생사를 걸고 싸운다. 하지만 난무하는 총탄에 피를 흘리는 사람도 없고 적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곧 단지 영화가 좋다는 이유로 추위와 싸우고, 배고픔을 이기고, 제작자와 다투는 '영화인'들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은 장편영화가 아닌 척박한 단편영화의 촬영장에서 그 현장을 사랑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화인들의 자기애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설원에서의 아름다운 장면 한 컷을 위해 고생을 감수하는 이들의 자기 연민. 모두들 힘내서 계속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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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Milan

Director: Michaela Kezele
Germany/Serbia; 2007; 23min; Beta SP; color; fiction

1999년 나토의 공습이 이루어지던 유고슬로비아의 한 마을. 여느 가족처럼 티격태격하면서 그닥 사이가 좋아보이지는 않는 모습이지만 서로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 묻어나는 한 가정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주인공 밀란. 이들은 한가롭게 농장일과 집안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을 둘러싼 상황은 엄청난 공포와 참혹이 생산되는 전쟁이다. 그렇지 않다면 평생을 그렇게 오순도순, 티격태격 하며 사이좋게 지냈을 이 가족은 결국 의도하지 않게 전쟁의 한가운데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분명 여자감독일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나이가 어릴 것이라는 짐작은 하지 못했다. 분명 나이가 지긋하게 먹은 감독의 손때가 묻어났기 때문. 의외로 이 영화는 독일에서 1975년에 태어난 여성감독의 작품이었다. 그것도 배우출신으로 몇 편 찍어본 경험이 없는 감독이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다는데 놀랐다. 영화는 유고슬로비아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전쟁'이 어떻게 한 나라, 한 사회를, 한 가족을, 그리고 한 개인을 철저하게 파괴시킬 수 있는지 극적인 이야기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전쟁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를 마비시키고 내면과 정신을 병들게 하는 치명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이(밀란)의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는 1999년 유고슬로비아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올드 랭 사인 Auld rang s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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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소준문
Korea; 2007; 26min; HD; color; fiction

배식줄이 길게 늘어선 종로의 탑골공원. 오늘도 그 곳에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나온 노인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그곳에 창식과 성태가 있다. 이들의 40년 만의 만남. 이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젊은 시절 게이 커플이었던 창식과 성태. 둘은 모두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다시 만났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과거의 사랑을 만나 가슴이 떨린다. 그리고 옛추억과 함께 마지막이 될 하룻밤을 보낸다.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는 노인들의 사랑, 아니 정확히 섹스를 얘기했다. 타인에 눈에 이미 성이 제거된 사람들도 비춰지는 이들도 여전히 가슴이 뛰고 사랑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감정은 나이와 함께 비례해서 무뎌지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의 말처럼 사랑은 평등하다. 젊은 사람에게나, 나이를 든 사람에게나, 이성애자에게나, 동성애자에게나. 극 중에서 창식과 성태 역시 그렇다. 게이였던 그들도 사회의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평범한 남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자신을 끝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그들이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서로에 대한 원망과 한이 쌓여있지만 짧은 하룻밤은 그들이 서로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데 짧지 않다. 영화가 순간순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지만 '사랑'의 다르지만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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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라의 책 Lila's book

Director: Eve Martin
Beligum; 2007; 14min; 35mm; color; fiction

오빠와 여동생이 침대에 앉아 있다. 여동생은 오빠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려 하지만 오빠는 싫은 듯 자신의 귀를 틀어 막는다. 하지만 곧 오빠 루카스는 릴라의 동화속으로 뛰어들고 둘의 환상적인 환타지가 시작된다.
벨기에의 여성 감독이 만든 <릴라의 책>은 사실 스토리가 몇 줄로 간단하게 정리될 뿐 이야기가 극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릴라와 루카스가 숲 속을 헤매며 겪는 환타지와 그것이 현실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는데 중심이 있다. 순간순간의 강한 이미지와 소리가 보여주는 상징들, 그리고 아기자기한 특수효과들이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가 없음에도 눈과 귀를 떼지 못하게 한다. 굉장히 무거운 주제들이 많았던 영화들 속에서 동심을 떠올리며 즐겁게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의 마지막 비극적 결말까지도 슬픈 동화을 연상키시면서 상영이 끝난 후에도 잔잔하게 계속 마음을 울린다.





농부와 딸 Ground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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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Maud Alpi
France; 2007; 20min; 35mm; color; fiction

루카스는 아침에 일어나 먼지가 수북히 쌓인 와인을 꺼낸다. 와인에는 딸의 25살 생일을 축하하는 딱지가 붙어 있다. 오늘 딸의 생일을 맞아 25년을 묵힌 와인을 개봉하려는듯 루카스는 와인병을 정성스레 닦는다. 그리고 늘 그렇듯 자신의 농장에 나가 일을 시작한다. 그 때 누군가 그를 찾아온다. 종묘회사의 직원으로 보이는 그녀는 루카스에게 이 제품, 저 제품을 소개하며 영업에 열심히다. 알고보니 그녀는 오늘 생일을 맞은 딸의 옛날 친구였다. 그리고 등장하는 루카스의 작은 딸 뤼디빈.그녀는 뭔가 모르지만 아빠의 행동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보며 웃기도 하지만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아빠를 아끼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다. 비밀은 곧 밝혀진다. 언니의 죽음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빠. 아빠는 멀리 알래스카에 죽은 딸이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뤼디빈은 그런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애써 루카스가 죽은 딸의 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려는 순간 뤼디빈은 아빠와의 비밀을 지켜주기로 한다.
<가족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빠와 아빠를 너무 아끼지만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작은 딸. 이들은 죽은 이의 25번째 생일을 맞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찾아온 종묘회사의 직원. 아빠와 딸은 서로의 비밀을 간직한 채 그녀에게 죽은 딸의 생일을 같이 축하하자고 제안한다. 아마도 셋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될 것이 분명하다. 끝이 없을 듯한 땅에서 사람은 존재조차도 희미해진다. 하지만 그 티끌같은 존재들은 그 땅을 일군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갖고 있기도 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그리고 그 땅에서 다시 태어난다. 소멸과 탄생이 그 땅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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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 Four

Director: Ivana Sebestova
Slovakia; 2007; 15min; 35mm; color; animation

이번 경쟁 섹션에 소개된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는 예년에 비해 여성감독들의 작품의 수가 상당히 늘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8편의 애니메이션 작품의 수준이 해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는 삶에 대한 아기자기한 성찰이 묻어나는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뤘다. 현대인의 몰개성을 풍자적으로 빗댄 스웨덴의 <첵쿠>, 가난한 멕시코 가정에서 걷지 못하는 소년의 날고 싶은 꿈을 비극적으로 그린 <날개>, 그리고 한국의 <스탑>과 <웨이 홈>이 그렇다. 반면에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여성감독의 절지 애니메이션 <여인들>은 위의 작품들처럼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삶의 우연성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한 공간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항공사, 우편배달부, 과일장수, 인기가수 4명의 여인들이 어떻게 우연적인 만남을 이루는지 그리고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유쾌하고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올해 경쟁 섹션 영화 중 가장 야한(?) 영화로 기억될 만큼 종이로 만든 사람들의 동작은 자연스러웠고 여인들의 날리는 머릿결은 십점만점의 십점이었다.





썸타임즈 Som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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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Mahmood Spliman
Egypt; 2008; 15min; Digi Beta; color; fiction

이번 AISFF 경쟁 섹션에 소개된 가장 애매모호하고 낯설고 정체 불명의 영화를 선택하라면 이집트에서 단연 건너온 Sometimes이다. 촬영도 자연스럽지 않고, 후시녹음도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 어색하고 낯선 코미디 단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는 아마도 이야기와 인물, 그리고 상황이 상징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집트의 한 마을에서 버스 기사가 승객들을 재촉한다.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끌고 여자에게 가지 말 것을 애원하지만 여자는 버스에 오르고 차는 출발한다. 이 때부터 버스 안에 탄 황당한 승객들과 함께 이상한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이유는 모르지만 빚쟁이에게 쫓기는 운전기사를 시작으로 채무자, 변태, 동성애자, 주술사, 의사, 종교인, 백인, 아랍인 등등 각양각색의 승객들은 도무지 버스 안을 조용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 때마다 버스는 멈춰서고 문제를 일으킨 승객들은 사막 가운데 버려진다. 남은 사람들은 버스가 급정거 할 때 다쳐 피를 흘리며 붕대를 감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정신 없이 한 편으로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 영화 속 많은 인물들, 그들이 처한 상황은 현재 이슬람 국가 가운데 나름대로 잘 나가는 나라로 손꼽히는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갈등을 풍부하게 은유하고 있다. 곧 버스는 국가이고 승객들은 국가의 다양한 구성원이다. 직업도 다양하고, 종교도 다양하고, 피부색도 다양한 그들 사이의 소통은 불가능하고 서로서로를 철저하게 배제시킨다. 한 국가 내에서 다양한 구성원이 겪는 소통의 단절을 냉소적이면서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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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세오 Paseo
Director: Arturo Ruiz Serrano
Spain; 2008; 12min; 35mm; color; fiction

스페인의 어디라는 것만 알 뿐 시대와 장소를 알 수 없는 폐허가 된 유적지와 같은 어느 곳에 세 명의 남자가 있다. 한 명의 백발의 시인이고 한 명은 젊은 군인, 그리고 한 명은 노동자처럼 보인다. 세 인물이 처한 상황은 정확히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뿐. 젊은 군인이 자신은 한 번도 사랑을 고백한 적이 없다며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시인은 세 명 만의 조촐한 연극을 시작한다. 라이타 하나에 여자 역할을 맡은 노동자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젊은 군인, 시인은 연출자다. 젊은 군인의 고백에 노동자는 자신이 평생 아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말이 됐었다며 더 구슬피 운다. 이 때 그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답답한 카메라의 앵글이 넓어지면서 그들을 뒤따르는 무장군인들이 보인다.
총살 당하기 직전 삶의 마지막 순간 세 남자는 그렇게 마지막을 아름답게 정리한 것이었다. 영화는 스페인 내전 당시 이유 없이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에 이른다. 그 순간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할지 누구도 모른다. 노동자처럼 그 순간에도 이제 필요없을 라이타에 욕심을 내는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릴 수도, 하지 못했던 일을 후회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죽음은 슬프지만 그 사람들의 인생은 각자 모두 소중하고 아름답다. '소풍'이라는 말의 스페인 영화 파세오(Paseo)는 그래서 왠지 천상병 시인의 '귀천'과 많이 닮아 있다.





캐빈 맨 Cabin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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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Ashish Pandey
India; 2007; 7min; Digi Beta; color; fiction

한 노인이 있다. 남루한 옷차림과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살고 있는 그는 시계를 보고 때가 된 듯 이것저것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철도 앞. 그리 많은 기차가 다니는 길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는 철도에 기름칠을 하고 닦고 조인다. 기차가 들어올 때쯤 그는 다시 그가 있던 오두막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녹색 깃발과 붉은색 깃발을 번갈아 휘든다. 하지만 기차가 그를 바라보지는 않는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가 노인이 살고 있는 오두막을 비춘다. 폐까 (Abondoned)라고 붉게 칠해진 오두막 위에 그는 열심히 깃발을 흔들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그 곳에서 그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버려진 폐가처럼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노인을 통해 감독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기차를 향해 깃밧을 흔들면서 아마도 바라보지 않지만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왠지 인도인들의 철학이 느껴진다.

이 밖에도 이란 여성감독의 친구와 적(Friend's Place and Enemy's Place), 멕시코의 감독의 애니메이션 날개(The boy who flew), 영국의 재치있는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섹션 44(Section44)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약속해놓고 오지 않은 루이 가렐이 괘씸하기도 그의 영화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아쉽지는 않다. 포스팅을 해놓고 힘들지만 감독열전 챙겨보러 나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