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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죽음의 가시: 끝없이 계속되는 의심과 공포

'죽음의 가시'의 첫 장면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본 체 이야기를 나누는 두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죽으러 간다는 미호를 말리는 시마오의 덤덤한 말투와 10년 동안 계속된 남편에 대한 불륜에 대해 침착한 분위기로 말하는 미호의 목소리는 방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좁은 공간에서 긴장감을 노출하던 두 남녀는 방을 나와 바깥으로 이동하면서 미호의 억압된 분노가 분출된다. 바깥으로 나가려는 미호를 말리는 시마오와 그의 손길을 뿌리치면서 나가려는 미호의 모습이 계속되면서 영화는 억압된 긴장감을 표출시킨다.

이런 두 남녀의 갈등은 미호의 두통을 통해 잠시나마 해결되는 듯이 보인다. 두통으로 고통스러워 하던 미호가 정신을 차리더니 초반부의 공격적인 분위기가 사라지고 남편과 자식들에게 미소로 대하는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미호의 고통을 지켜보던 시마오는 그녀가 제정신을 차린 후 온화한 모습으로 그를 대하자 안심하면서 출판사를 찾아가지만 사정이 있어 예정시간을 넘겨 집에 도착하자 미호가 집에서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아내를 애타게 찾던 시마오는 이웃사람을 통해 미호가 자신의 집 뒷켠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시마오는 미호에게 안부를 묻지만 미호는 좀전까지 보여주었던 다정한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의심과 분노로 가득찬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의 불륜을 10년동안 억누른 체 살아왔던 미호는 이 때부터 남편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찬 체 시마오를 경계한다. 미호의 의부증은 점점 그녀의 자아를 두 개로 분리시킨다. 남편의 불륜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을 배신한 남편에 대한 경계로 가득찬 미호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시마오와 자신의 아이들에게 미소짓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혼란스런 심정과 공포스러운 느낌을 전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미호를 대하는 시마오의 모습이다. 미호의 계속되는 의구심을 씻기 위해 그녀의 명령을 따르는 방식이 마치 군대에서 상사의 명령에 따르는 병사와 같은 느낌이 든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호가 자신을 향해 물을 뿌려달라고 명령하자 군대의 호칭과 이름을 말하며 그녀의 명령을 따르는 장면이라든지 친정집을 찾은 미호의 명령대로 행동하는 시마오의 모습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중간마다 시마오가 특공대로 근무하던 곳의 풍경을 담은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마오의 또 다른 내면세계를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면서 군대의 명령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미호와 시마오의 모습은 마치 김기영의 '하녀'같은 작품처럼 기존의 가부장적인 부부의 뒤바뀐 위치와 모습을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남자의 명령에 맞춰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오던 여성이었던 미호는 남편인 시마오의 불륜을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시마오를 명령하게 되며, 마시오는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녀의 명령에 복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