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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티스 (Teeth, 2007)



<티스>를 보기 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이빨 달린 여성 성기'에 관한 상상이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모양입니다. 작품 속에서도 소개되고 있듯이 원시 부족들의 설화 속에 등장한다는 이 치명적인 돌연변이의 이야기는 아마도 사춘기 전후의 남성들에게 거세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며 낯선 상대방과의 성교를 경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성되고 구전되어왔던 것 같습니다. 이런 민간 설화의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적용하자면 아마도 무분별한 섹스나 폭력적인 여성 착취를 삼가하라는 정도의 내용이 되겠지요. 최근 어느 일본 호러영화에 등장했다는 하체가 아예 악어 주둥이처럼 생긴 여자 괴물도 일종의 Vagina Dentata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문제는 이빨 달린 여성 성기라는 것이 워낙에 판타지로서의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선정적인 흥미거리 이상의 함의는 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데에 있습니다.




<티스>는 다른 영화에서는 흔히 메두사와 같은 괴물로나 묘사되어 왔던 Vagina Dentata를 객체가 아닌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좀 더 발전적인 성담론의 제공자 역할을 의도하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최근의 미국 내 순결 선언 운동이나, 성교육 교재 등에서조차 여전히 발견되고 있는 비과학적 편견과 무지함에 관해 묘사하고 있는 <티스>가 한 편의 영화로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자신의 성기가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엄청나게 당황해하던 돈(제스 웨이슬러)이 점차 그것을 조절할 수가 있게 되고, 급기야 악을 응징하는 데에 계획적으로 활용하기까지 하는 발전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돌연변이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개체들이 갖고 있던 약점을 보완하면서, 오히려 진화론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여성 인류의 도래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버자이너 덴타타의 탄생"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신의 질 속에 그런 치명적인 무기를 갖출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티스>의 이야기는 그저 스크린 속의 판타지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워낙에 다루기 힘든 소재(이런 영화는 흔히 B급 싸구려 에로물로 전락하거나 아무리 세련되게 잘 만든다 하더라도 그 카테고리를 크게 벗어나기가 힘들죠)이기도 합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직 저예산 독립 영화이기에 가능하기도 했던 매우 호기로운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남성 성기와 손가락들이 잘리고 피가 뿜어져 나오는 매우 심각한 상황인데도 왜 그리 웃음이 나오던지요. 마지막 에필로그에 등장하신 할아버지는 아마도 혀가 잘리셨겠죠? <티스>라는 상상 속에서 버자니어 덴타타라는 신인류를 소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으되, 사실은 못본 척 하고 지내는 현실 때문입니다.





ps. 여성 성기에 대한 금기는 교과서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영화 <티스>조차도 그런 관습의 제약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었던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분명 여성 성기인데 보여지는 것은 온통 남성 성기들 뿐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