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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티스] 그녀를 자유롭게 만든 ‘이빨’


티스 (Teeth)
미첼 리히텐슈타인 감독, 2007년

자극적인 소재, 현실적인 이야기

이빨 달린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버지니아 덴타타(vagina dentata)를 소재로 한 <티스>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은 아무래도 자극적인 소재에 있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은밀한 부위이며 가장 본질적인 욕망의 상징인 성기를 소재로 한 것도 자극적인데,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빨이 달린 여성의 성기라니. 어떤 영화일지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소재만큼 영화도 자극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티스>는 소재만 자극적일 뿐 소재를 다루는 태도는 매우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관계는 차이에서 비롯되듯이 남녀 사이의 오랜 권력관계는 곧 성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 차이는 바로 남근의 유무이다. 버지니아 덴타타는 남성과 여성의 성기가 지닌 차이를 통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함을 주장하려는 고전적인 상징이다. 여성의 성기에 달린 이빨을 부러뜨리는 남성이 영웅으로 불린다는 전설이 이를 뒷받침한다.

<티스>는 버지니아 덴타타의 고전적인 의미를 비틀면서 정말 여성의 성기에 달린 이빨이 남성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영화의 주인공 던(제스 웨이슬러)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 뒤에 첫 경험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순결 이데올로기의 열렬한 신봉자다. 특정 환경 속에서 갑작스럽게 돌연변이가 등장할 수 있다는 생물 선생님의 말에서 그녀가 버지니아 덴타타를 지니고 있는 이유를 순결 이데올로기에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순결 이데올로기는 성관계에 있어서 여성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남성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준다는 점에서 남성 중심적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버지니아 덴타타는 남녀의 권력관계가 그녀의 육체 속에 각인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던은 이제 자신의 버지니아 덴타타를 받아들이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티스>는 순결 이데올로기에 억압당하고 있던 한 여성이 성적 자유를 찾아가는 일종의 성장드라마다. 그 과정에서 웃음과 공포, 로맨스와 하드고어가 뒤섞이는 것은 자극적인 소재를 현실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티스>가 미국 중산층 가정을 바라보는 태도다. 한가롭고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주택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연기를 내뿜는 원자력발전소가 공존하는 던의 동네를 보여주는 <티스>의 오프닝 시퀀스는 평화로움 속에 내제하고 있는 불안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데이빗 린치 감독의 <블루 벨벳>의 오프닝 시퀀스를 연상케 한다. 불안은 던과 그녀의 의붓오빠 브래드와의 관계를 통해 극대화된다. 던이 순결의 상징이라면, 브래드는 타락의 상징이다. 순결과 타락의 공존이 바로 불안의 정체다. 그리고 이 이중성은 평화로워 보이는 미국 중산층 가정이 사실은 추악함을 간직하고 있음을 추측하게 만든다. <티스>는 순결과 타락이 공존하는 던의 가족을 통해 미국 사회가 지닌 불안을 드러내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가 던의 이야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부분에 대해서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음은 아쉽다.

순결을 믿던 던은 버지니아 덴타타를 통해 비로소 자유를 되찾는다. 그리고 타락한 브래드는 자유를 되찾은 던으로부터 처벌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순결과 타락 모두 성에 대한 극단적인 태도일 뿐이며, 오히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욕망을 조절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티스>는 여성보다는 남성들에게 더욱 충격적인 것이 사실이다. 남성에게 거세라는 무시무시한 공포를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큼 섬뜩한 일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남녀 사이의 권력관계에서 남성에게 더 많은 권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오히려 영화를 보고 무서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더 반성해야 할 일이다. 무시무시하지만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빨’이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