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 소나타'는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일본 사회의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는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집 안을 향해 들어오는 강풍은 처음부터 암울한 시작을 예고한다. 사사키 가족의 가장인 류헤이는 서무 부서를 중국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 회사의 방침 때문에 자신이 평생 일하던 기업에서 해고를 당한다. 일본말을 유창하게 하며 일본인에 비해 저렴한 임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중국인을 반가워하는 모습과 대비해 평생을 서무 과장으로 일한 류헤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그에게 자발적 퇴직을 유도하는 임원의 태도는 자유 경쟁 시장의 공포가 느껴진다. 영화는 졸지에 실업자가 된 류헤이가 황량한 공원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통해 경제불황으로 시달리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낸다.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노숙자들과 함께 일일 급식을 얻어 먹으며 고용센터를 찾아가 하루종일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은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류헤이가 자신의 실직을 속이기 위해 좀전보다 일찍 집에 들어가는 과정은 더욱 황량하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류헤이와 어린 아들인 켄지의 모습은 아버지와 아들의 반가운 해후가 아닌 그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확인 과정처럼 느껴진다.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는 모습에서 가정의 화목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식탁에 앉는 순간 류헤이는 그의 큰 아들인 타카시가 자리에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 그의 아들에 대한 더 이상의 질문은 말하지 않는다. 타카시가 영화 중반부에서 등장할 때까지 그는 마치 죽은 아들이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식사를 마친 후 사사키 가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구역으로 되돌아간다. 1층과 2층으로 분리된 계단 사이로 분리된 부모와 자식 간의 경계의 모습은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에서 계단 사이로 분리된 부자 관계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장애물처럼 느껴진다.
직장을 잃은 뒤 거짓으로 회사를 나가는 척 하며 이중 생활을 하던 류헤이는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찾지만 기업의 가혹한 세계는 그에게 굴욕과 무력함을 안겨줄 뿐이다. 기업을 찾아가 면접을 보지만 류헤이보다 어려보이는 인사 담당자는 그가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며 그에게 노래라도 불러 보라고 요구한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굴욕을 감수하고 펜을 잡아 입을 떼는 류헤이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정에서 가장으로 지키고 있던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남자들의 헛된 몸부림이다. 류헤이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친구 쿠로수의 부탁으로 그의 집에 찾아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한다. 류헤이를 마치 부하직원 다루듯이 하며 회사 생활을 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쿠로수의 자신만만한 행동 뒤에 찾아오는 침묵은 마치 가장인 남편의 처지를 애써 긍정하려는 사람들의 암묵적인 모습처럼 느껴진다. 이후 영화는 류헤이에게 '아저씨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라고 말한 뒤 계단을 올라가는 쿠로수의 딸의 모습을 통해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는 어른들에 대한 조롱을 공포스럽게 표현한다.
한편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류헤이처럼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도 각자가 희망하는 소망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류헤이의 아내인 메구미는 홀로 가정에 남아 가정 주부로서의 삶을 산다. 다른 가족의 일원이 올 때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 등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지만 그녀는 보다 나은 새로운 삶을 추구할 욕구를 가진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동차 운전이다. 메구미는 자신이 노력해 얻은 결과인 운전면허증을 큰아들 타카시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지만 큰 아들은 차도 없는 그녀가 면허증을 가진 것을 두고 가장 비싼 신분증이라고 냉소적인 답변을 보낸다. 아들의 냉정한 답변에 메구미는 멋쩍게 그의 말을 받아들인다. 가족들이 식사를 마친 후 제자리로 돌아간 후 소파에 누운 메구미가 손을 쭉뻗어 나를 일으켜 달라고 혼잣말을 말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삶에 대한 구원을 바라는 듯한 절실함이 느껴진다. 한편 타카시는 가정을 나와 아르바이트로 삶을 살아가지만 전단지를 나눠주는 그의 모습은 힘겨운 듯한 느낌이 든다. 일본에서 프리터족으로 살아가던 타카시는 일본과 세계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미군을 지원하려고 한다. 그리고 켄지는 우연히 길에서 울려퍼지는 피아노 소리를 들은 뒤 피아노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실직한 사실을 숨기고 있던 류헤이는 단호하게 피아노 연주를 반대한다. 자칫 완고한 아버지 때문에 꿈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던 켄지는 급식비를 빼돌려 피아노 수업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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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절실히 찾던 류헤이는 현실의 가혹함을 점점 깨닫게 된다. 그의 친구인 쿠로수가 가스 중독으로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류헤이는 자신도 그와 같은 파국을 맞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결국 그는 자존심을 모두 접고 백화점의 청소부로 근무하며 온갖 굳은 일을 한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난 후 정장 차림으로 옷을 갈아 입는 류헤이의 모습은 사무직 사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남성의 마지막 자존심이 느껴진다. 이처럼 류헤이는 자신의 권위를 가정이라는 공간 안에서라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큰 아들인 타카시가 미군에 입대한다고 선언하자 그는 아들의 입대를 반대한다. 타카시는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의 군인으로 활동함으로써 일본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하지만 류헤이는 자신이 바로 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가장임을 역설하며 그의 요구를 묵살한다. 하지만 타카시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더 이상 위엄과 권위의 상징이 아니다. 역시 일본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비아냥과 함께 집을 떠나는 타카시의 모습은 추락해버린 아버지의 위상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 더 이상 젊은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지 못하는 일본 사회의 무력함이 느껴진다.
류헤이는 타카시에게 짓밟혀버린 자신의 위상과 권위를 켄지를 통해 바로 잡으려 한다. 피아노를 몰래 배우던 켄지의 천재성을 발견한 피아노 교사의 편지를 읽은 류헤이는 자신의 허락 없이 피아노를 배운 켄지에게 폭력으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 한다. 폭발 직전의 싸늘함과 긴장감이 가득 찬 집안의 모습은 류헤이의 폭력으로 극대화 된다. 하지만 그가 폭력적으로 대할 수록 아들은 더욱 반항하고 저항한다. 결국 분노에 가득찬 류헤이는 처음으로 아들의 공간에 침입해 그를 계단 밑으로 넘어뜨린다. 끔찍한 폭력과 공포는 결국 가족 간의 붕괴를 유발한다. 류헤이의 실직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권위를 위해 침묵하던 아내는 결국 사실을 드러내 류헤이의 권위를 무너뜨리게 되며, 병원에서 나온 켄지는 더 이상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지 않은 체 그를 피한다.
영화는 류헤이가 백화점의 청소부로 일하는 모습을 메구미가 목격한 순간을 보여주면서 가정이 붕괴되는 과정을 공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코믹하게 그려나간다. 화장실을 청소하다 우연히 돈봉투를 발견한 류헤이는 호주머니에 슬그머니 집어넣은 다음 로비로 나간다. 그 순간 메구미를 목격한 류헤이는 너무 놀란 나머지 길거리를 향해 달려 나간다. 자신이 청소부로 일한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들통남으로써 그의 가장으로서의 권위는 완전히 무너지고 만 것이다. 한편 영화는 메구미의 3시간 전 모습을 통해 그녀가 어떻게 해서 류헤이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뭔가 어설퍼 보이는 도둑의 협박으로 차를 처음으로 몰게 된 메구미는 우연히 류헤이를 만남으로써 그의 현실을 목격한다. 가정 안에서 위엄을 강조하며 군림하던 가장의 초라한 현실을 목격한 메구미는 가정 안에서 주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녀는 도둑과 함께 차를 몰아 해변가에 도착한 뒤 자신의 삶을 바꿔줄 존재를 찾기 위해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를 향해 무언가를 절실히 찾는 메구미의 모습과 미친듯이 거리를 달리면서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다고 갈구하는 류헤이의 모습은 새로운 삶을 절실하게 찾고 싶어하는 인간의 몸부림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사사키 가족은 자신의 새로운 삶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 메구미는 바다를 향해 무언가 자신의 삶을 뒤바꿀 존재를 갈구하지만 끝내 그녀에게 그 존재는 찾아오지 않는다. 류헤이 역시 거리를 향해 달려나가며 새로운 삶을 갈구하지만 거리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차는 그의 소망을 산산조각 낸다. 미군에 입대해 일본과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 싶어한 타카시는 메구미의 꿈을 통해 아들의 원대한 꿈이 허상에 불과했음을 드러내며 피아노를 치고 싶어했던 켄지는 집을 떠나 방황한 후 무임승차로 붙잡혀 범죄자로 전락 해버린다. 가족의 일원들이 방황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갈구하는 모습과 그 소망이 붕괴되어지는 과정은 공포스럽기 그지 없다.
그러나 영화는 각 인물들이 햇살이 비추는 아침에 깨어나 가정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통해 그들이 겪었던 삶의 좌절과 파멸이 마치 악몽이었다는 듯한 느낌을 주며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있음을 드러낸다. 파국적인 결말을 맞이했던 세 사람은 아침이 다가오자 마치 꿈을 꾼 것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가정으로 되돌아온다. 하나씩 가정으로 돌아온 그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로를 받아들인다. 먼저 가정에 돌아와 있던 켄지는 청소부 차림으로 되돌아온 류헤이를 보고 아버지 차림이 왜 이렇냐고 묻지만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통해 노동자로 추락한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미군에 입대했던 타카시는 편지를 통해 미국의 군대가 평화를 위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제 그 곳에 남아 사람들과 함께 평화를 위해 싸우겠다는 다짐을 한다.
영화는 켄지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가정의 극적인 봉합과 치유를 드러낸다. 켄지는 음대부중 실기 시험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며 그의 피아노 공부를 강렬하게 반대했던 아버지는 아내와 함께 자리에 앉아 눈물을 머금은체 아들의 피아노 연주를 바라본다. 아버지와 아들의 어색한 만남 후 자리를 떠나는 세 사람의 모습은 이질적인 면이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가정의 극적인 화합과 극복을 드러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