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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킬러들의 도시 (In Bruges, 2008)



분위기가 너무 훈훈하게 흘러갈 때에는 아니 이게 왠 길바닥 버전의 <빌리 엘리어트>(2000)란 말인가 싶기도 했지만 역시나, 영화는 좀 더 셰익스피어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세 남자의 운명이 엇갈리게 되는 그 도시, 브뤼즈(Bruges)는 결국 죄 많은 자들과 죄로 인해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연옥이었던 것. 죄와 벌, 원칙과 오만, 희생과 구원의 이야기가 중세 풍의 자그마한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사후에 만들어진 <헤븐>(2002)과 <랑페르>(L'Enfer, 2005)에 이어 이 작품으로 천국/지옥/연옥의 3부작이 드디어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더니 정말 군더더기 없이 잘 짜여진 이야기다. 감동의 백마고지를 정복하지는 못하지만 내러티브의 영특함에 관해서는 인정을 해줄만 하다. 차라리 <덤 앤 더머>식의 노골적인 코미디였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이건 제가 관객으로서 너무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는 건가요? 만약 그랬더라면 그 죽을 죄로 인한 심리적인 무게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가 있었겠다.

그리하여 우중충하고 서글프기만 하던 분위기가 딱 중간 지점에 이르러 랄프 파인즈가 등장하면서 완전 얼차려 모드로 돌입. 원래 더블린 출신인 콜린 패럴의 아이리쉬 발음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는 또 다른 종류의 영어더군요. 브렌단 글리슨은 <제너럴>(1998)에서 주연하셨던 거 외에는 대체로 비슷비슷한 조연만 하시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 아주 근사한 연기를 선보이셨다. 소극장 연극으로도 어울릴 법한 소품이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